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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한민족의 독립의 영웅 "청사 조성환과 보통리 고택을 찾아서"...일제의 사형선고에서 애국애족의 빛나는 별이되어

[탐사보도] 한민족의 독립의 영웅 "청사 조성환과 보통리 고택을 찾아서"...일제의 사형선고에서 애국애족의 빛나는 별이되어

  • 기자명 김동길 대기자
  • 입력 2023.09.20 21:36
  • 수정 2023.09.2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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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 조성환 선생
청사 조성환 선생

[서울시정일보 김동길 대기자] 한민족 유구한 1만 2천여 역사의 강에 한민족의 독립의 영웅 "청사 조성환과 보통리 고택을 찾아서" 를 게재한다.

태초의 지금에 시간의 굴곡을 넘어 일정시대를 넘어  2023년 9월 20일은 경기도 여주다.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조성환 선생의 생가와 엄항섭 선생의 생가터를 방문하여 우리 고장의 역사를 기억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중에 닥달비 내리는 날 여주박물관에 도착했다.

"청사 조성환과 보통리 고택
"청사 조성환과 보통리 고택

여주 출신 독립운동가인 청사 조성환 선생과 선생의 생가이자 국가민속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는 보통리 고택과의 역사적 시간이다.

청사 조성환은 대한제국 무관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및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대부터 독립운동을 전개한 조성환은 만주, 연해주, 중국 관내에서 반평생 이상을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이러한 조성환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보통리 고택’은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 소재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여주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국권회복을 위해 일어난 의병전쟁의 거점이었고, 대표적인 경기도 3.1운동의 중심지였다.

1945년 중국 충칭에서 저술하신 중국어 사전 『화음자휘(華音字彙)』
1945년 중국 충칭에서 저술하신 중국어 사전 『화음자휘(華音字彙)』

또한 여주사람들의 독립운동 정신은 국외로도 전파되어 여주출신 독립운동가인 조성환, 엄항섭, 엄홍섭, 이규학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국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태동과 수립, 독립전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이와 같이 여주의 독립운동 역사는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 역사의 중심에 여전히 살아서 맥동하는 자유의 불길이다.

그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은 역사적 사실에 무상으로 조성환 선생의 유물을 기증했다.

기증된 유물은 총 82건 160점으로 크게 조성환 선생 장례 관련 유물과 조성환 선생 생활사 및 독립운동 관련 유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국보급 보물들인 장례 관련 유물 중에는 임시정부 요인 및 독립운동가들이 글을 남긴 ‘방명록’, 백범 김구의 제문(祭文), 심산 김창숙의 제문(祭文), 단주 유림의 제문(祭文) 등이 주요 유물이다. 장례 관련 유물은 환국 후 임시정부 요인의 장례와 관련한 몇 안 되는 사례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된다.

1962년 정부로부터 수여된 건국공로훈장
1962년 정부로부터 수여된 건국공로훈장

생활사 및 독립운동 관련 유물 중 주요 유물은 조성환 선생이 중국에서 집필한 중국어 사전인 ‘화음자휘(華音字彙)’, 1962년 정부로부터 수여받은 ‘건국공로훈장’, 독립운동 당시 사용한 ‘인장(印章)’ 30여개와 ‘나침판’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청사 조성환 선생의 독립운동을 구체적인 유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은혜를 모르면 축생이다.

2023년 자유 대한민국의 지금은 선혈들의 자유의 피흘린 아픔에 서 있다.

조성환 애국지사는 (曺成煥, 1875년 7월 9일~1948년 10월 7일)은 대한제국 시대의 육군 장교 등을 지낸 군인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이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의 국무위원 등을 지내기도 했다. 호(號)는 청사(晴蓑). 하여 결국, 그의 가명은, 성과 호를 모두 붙여 사용한 조청사(曺晴蓑)였다.

조성환은 1875년 한성부(지금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낙원동에서 출생했다.

만25세인 1900년에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01년 졸업 직후의 당시 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무관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일제와 결탁하여 군부를 부패시키는 모습에 격분한 조성환은 그들을 처치하려다 발각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3년 후(1904년)에 특별사면되어 참위로 복귀하였으나 이듬해 1905년 음력 정월 즈음에 곧 군대를 그만두었다.

이후 1907년 9월에 양기탁, 전덕기,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 조직에 가담하였다. 신민회에서 이동휘, 이갑, 유동열, 노백린 등과 무장투쟁을 강조한 계열로 활동하였다.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12년 만주에 온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가 1년 후 석방되었다.

또한 미래 후학을 위한청소년 교육을 위한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918년 길림(吉林)에서 대한독립선언(大韓獨立宣言)을 발표할 때 39명의 대표 중 1인으로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그의 애국애족에 빛나는 길에 1935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군무 총장 등을 지내며 광복군 창설에 힘을 쏟았다. 1940년 9월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한 뒤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에 선출되었고, 9월 한국 광복군 창설에 참석하였다.

조성환 선생 장례에 참석한 백범 김구, 조성환 선생 장지인 효창원에서 이숙진 여사
조성환 선생 장례에 참석한 백범 김구, 조성환 선생 장지인 효창원에서 이숙진 여사

이후 우국노인회 총재 등을 지내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아 애닯다.

후대는 그 애환의 역사를 기억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후손들
역사를 기억하는 후손들
자랑스러운 후손들
자랑스러운 후손들

"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에 청사 조성환선생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여주(양평)으로 갔다.

◇주관:국가보훈부(제20대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보훈부로 승격 )

◇주최 : (사)청사조성환선생기념사업회

◇후원 : 여주시

●출발:9월20일(수)  08시 00분

(교대역 28인 승리무진 버스출발)

●장소: 여주 박물관 보통리 고택

(사)청사조성환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조소현

사무총장 조우현(010.5308.6404)의 애국 열사 탐방이었다.

본지 김동길 회장과 참석자들
본지 김동길 회장과 참석자들

한편 사단법인 청사조성환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 후원은 보훈처 장관 박민식 장관.

●후원 경기도 여주 이충우 시장은 여주 햅쌀과 태양초 고추가루 참석자 49명에게 기증을 하였다.

또 기념사업회에 여주시 부시장 조정아 부시장은 여주 도자기 선물을 하였다.

이심전심 애국애족의 열사들이다.

참석자 중 본지 김동길 회장. 논설위원 강만희. 세계청소년연맹 한국 대표 심재환. 국민의힘  강북구  홍성남 위원장 참석하였다.

멸공이다. 지금의 좌파 빨갱이들의 불의한 악의 소리에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기사 일부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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