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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암자에서의 짧은 안거(安居), 시간을 잊다.

아름다운 암자에서의 짧은 안거(安居), 시간을 잊다.

  • 기자명 박용신
  • 입력 2017.08.30 12:51
  • 수정 2017.09.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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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일여(心境一如), 다도삼매(茶道三昧), "나"를 돌아보다.

 

 

▲ 지리산 화엄사 뒤, 작은 암자 구층암, 구층탑은 보이지 않고 6.25 상흔이 남은 아픈 석탑을 본다.

 

 

[서울시정일보, 지리산 = 박용신 기자]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언제나 장중함에 제압 당하고 알 수 없는 신성함으로 접근이 망설여 지는, 하여, 지리산 노고단 자락 아래 구층암(九層庵)을 찾는 일은 거듭 몇 번의 마음 추스름이 필요했고, 나름의 천왕봉을 향한 합장 의식 후 비로소 산문(山門)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도돌이표 맑은 물소리, 청랑함에 절로 흥이나고 보폭이 가볍다.

 

화엄사 뒤란을 끼고 오르는 대갓집 여인의 가르마처럼, 조붓 말쑥한 대숲에 소로, 모처럼 비 그쳐 들어난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내딛는 보폭마다 살가운 계곡의 도도리표 맑은 물소리가 황홀하다. 댓잎 비껴 쏟아진 햇살 한 줌, 돌 틈 물살에 비추면 거기 작은 포말(泡沫) 알갱이들이 분수처럼 모여 이내 눈부신 옥양목이 된다. 속세에 찌든 마음 한 자락 기꺼이 꺼내 휘휘 헹구면 저토록 하얘질까?

▲어느 구도자의 배려일까? 징검다리를 건넌다.

우중에 팔월, 계곡을 지나 암자로 가는 길은 물 속처럼 잠잠하다. 잠잠하여 고요하다. 정밀한 고요에 휩 쌓인 빗물 젖어 생생한 초목들이 불청객 발자국 소리에 바짝 긴장을 한다. 긴장은 이내 와전되어 마음 한구석 음산함이 자리하고 조금은 으스스한 기분으로 몇 분(分)의 오르막, 조릿대 숲 사이로 듬성듬성 자리한 키 낮은 야생차 나무들이 계절도 잊었는지 새순을 돋궈 웃자란 연미색 잎이 청록과 대비되어 신선하게 생경하다. 맞닥트린 개울하나, 어느 선사(禪師), 구도자의 배려 였을까, 겨우 발하나 의지할 돌멩이 대여섯 개 징검다리를 안단테, 안단테, 안다티노, 조심스럽게 건너 마침내 다다른 곳, 구층암.

 

 

▲ 차향사류 다실 전각 뒷면, 아픈 석탑이 서 있다.

다실 차향사류(茶香四流), 모과나무 기둥이 이채롭다. 오른쪽 전각은 천불전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선원, 강원, 결사도량으로 화엄사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한 작은 암자. 대섶을 헤치고 들어선 작은 마당 한 켠으로 차향사류(茶香四流) 다실로 쓰고 있는 요사체가 시골집 사랑채처럼 들어서 있고 빗물 받는 댓돌 가에 목발을 짚은 듯,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삼층 석탑하나, 6.25 전란의 상흔으로 아픔이 깊다. 선방으로 쓰였을 일자형 요사체를 양 옆에 거느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지리산에 자생하고 있었을 한 아름도 넘는 모과나무를 문지기 삼아 구르는 듯, 모난 대여섯 돌계단을 오르면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푸른빛 도는 조촐하고 단아한 전각 하나, 천불전이 있다. 요사체 기둥은 울퉁불퉁 고목의 모과나무를 생긴 그대로 사용하였고, 오밀조밀 배치된 화단에 경계석 하나, 화초 한 포기 조차도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없다. 뒤 곁, 텃밭에는 울타리 지지대를 타고 오이, 호박, 더덕이 자라고 덕제스님이 정성스레 가꾼 도라지들이 보랏빛, 혹은 흰, 꽃을 피워 산속 앵벌들이 분주하다.

▲ 세월을 몰랐다. 도라지 피는 이 시절을..청초한 도라지꽃에 마음이 흔들렸다.

<죽로야생차(竹露野生茶)>
"차 맛이 독특하고 향이 참 좋군요." 구층암 운영 소임을 맡고 계신 덕제스님과 마주한 차담(茶談),이 곳 구층암을 중심으로 저 밑 화엄사 탑전과 각황전 뒷 편, 봉천암과 옥류봉, 차일봉에 이르기까지 야생차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오시며 보셨다시피 차나무가 대나무숲에서 자라고 있지요. 대나무 잎에 내린 이슬을 먹고 자란 차나무, 넓게는 건너편 연기암까지 군데 군데 분포 되어 있으나, 차를 만드는 공정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다보니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경내의 수행자나 사중스님들만 끽다 했었는데, 이제 그 죽로야생차(竹露野生茶)의 오묘한 맛을 여러 대중들과 함께 하려 차 만들기 체험장을 4월중순부터 6월말까지 금요일에 입소하는 2박3일의 일정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오셔서 기도도 하고 이 차향사류(茶香四流) 다실에서 차 맛을 즐기며 다도삼매(茶道三昧)에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 차의 신선. 초의선사는 차의 맛은 물 맛이 좌우한다고 했던가? 알싸한 물 맛이 참 좋았다.

▲ 소쩍새 우는 봄날부터 찻잎을 따, 죽로야생차를 만든 덕제 스님.

전통과 정성을 다한 떢음의 비밀 이였을까? 코끝으로 혀속으로 그리고, 가슴속으로 배냇향이 스몄다. 멱 감긴 갓난 아기의 살갗에서 나는 그 향, 은근하고 그윽함에 매료 되어 한동안 혼미에 빠졌다. 배릿한 향, 일명 차의 호사가들은 이것을 다신(茶神)의 왕림으로 해석하며 삶의 구경을 얘기 하기도 했다.마음을 비워 낸 텅빈 공간에 어리는 향기로운 모태 즉, 공즉시색(空卽是色). 그 모태 속에 어려있는 텅 빈 것, 색즉시공(色卽是空). 우주의 생명력 안에서 진리와 순응을 가르쳐 주는, 하여,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정성을 다해 차를 우려 대접하며 담소하는 일은 스쳐 가는 인생 여정의 아름다운 구경일 수 있는 것이다.

 

▲ 해우소에서 편하게 근심을 풀다.

차담을 뒤로 돌아 오는 길, 비가 내린다. 가는 실비가... 비단실 오래기같은 은은한 는개비 속으로 탁,탁,탁 목탁이 산자락까지 울려 퍼진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 아름다운 암자에서의 짧은 안거(安居), 나는 또 그렇게 도시에서의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보충했고, 은근한 목탁소리는 오래도록 귓전에 남아 마음 구석 방부를 들였다.

▲ 차향사류 다실 창문으로 활짝 웃는 능소화가 들어왔다.

 

<終>

지치도록 무덥던 여름이 문을 닫으려 한다. 가을의 시작, 잠시 지친 심신을 조용한 암자를 찾아 나를 돌아 보며 하루 쉬었다 오는 것도 좋겠다. 두런 두런 좋은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사는 얘기, 푸념도 하며, 산새소리, 개울물 소리, 별들을 보는 여유, 열심히 살아온 그대! 또, 내일을 살아 낼 용기가 생기겠지.

 

※구층암 가는길 : 지리산 화엄사 뒤란으로 길이 나 있다.(네비이용)

 

서울시정일보 /논설위원장

팸투어/여행문학작가

백암 박용신의 "풀잎편지"

(Photo Healing Essay)

기사등재. 2017.8.30

 

(박용신 기자 bagam@hanmail.net)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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