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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춘천교구청에 1억 원 기부한 서울 행당동 고물 할머니

[기부] 춘천교구청에 1억 원 기부한 서울 행당동 고물 할머니

  • 기자명 김한규 기자
  • 입력 2024.01.25 18:41
  • 수정 2024.01.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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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양성을 위해 써 달라.” 어머니의 마음 이해돼요.

고복자(가운데) 할머니가 춘천교구청에서 열린 기부금 전달식에서 김주영(맨 왼쪽) 주교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김춘석 씨 제공)
고복자(가운데) 할머니가 춘천교구청에서 열린 기부금 전달식에서 김주영(맨 왼쪽) 주교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김춘석 씨 제공)

[서울시정일보 김한규 기자] 아흔의 할머니가 “사제 양성을 위해 써달라”며 성금 1억 원을 춘천교구에 기부했다. 평생 삶을 나눔 자체로 살아온 고복자(마리아, 춘천교구 솔모루본당, 90) 할머니다.

할머니는 둘째 아들 김춘석(마르코)씨의 손을 잡고 지난해 12월 19일 춘천교구청을 방문했다. 자식들에게도 “이번이 마지막 기부일 수 있다”고 한 할머니는 13년 동안 자식들에게서 받은 용돈과 개인연금을 아끼고 아껴 모은 성금 1억 원을 교구장 김주영 주교에게 전하며, 연신 교회 미래인 신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청했다. 할머니는 “춘천교구가 우리 교구이기도 하지만, 제 고향인 함경남도 지역 복음화의 일꾼이 될 사제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복자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평생 나누는 삶을 살아왔다. 1986년 세례를 받으며 스스로 “여생을 봉사를 위해 살겠다”고 한 결심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식 키우고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폐지와 빈 병, 각종 고물을 주워 팔아 모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 돈은 고스란히 성모자애원, 프란치스코의 집 등 교회에 봉헌했다. 할머니는 “늘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는 오랜 봉사와 기부의 원동력에 대해 “신앙 덕분”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주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봉사와 기부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들 김춘석씨는 “건강도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돕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가족 모두 어머니의 봉사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부는 할머니에게 더욱 남다르다. 고향을 위한 사제 양성에 힘을 보태는 의미가 컸기 때문. 할머니는 “한국전쟁 중 홀로 피란 온 뒤 70년 동안 한 번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며 “심장박동기 시술을 받고, 양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서 더 기부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까 봐 불안했지만,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기부할 수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주영 주교는 “할머니께서 바라신 대로 침묵의 교회를 위해 일할 사제를 잘 양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할머니는 다시 다음 기부를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제 연금과 용돈이 제 수입의 전부이지만, 열심히 모아서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드는 데 돕고 싶다”면서 새 희망을 전했다.

1933년 함경남도 함주군 기곡면에서 태어난 고복자 씨는 한국전쟁 당시 함흥 흥남부두에서 가족을 두고 미군을 따라 홀로 월남했다. 1953년 속초에 와서 장남을 낳은 후에는 서울 천막집에 정착했다. 1986년 세례를 받은 뒤부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여생은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는 생각으로 평생 봉사를 실천해 왔다. 1990년부터 서울 행당동에서 고물을 주우며 ‘행당동 고물 할머니’로 불리기 시작한 그가 1996년까지 100㎏이 넘는 수레를 끌고 병원, 양로원, 환경미화원 등에 전액 기부한 돈은 3000만원에 달했다. 고질적인 심장질환과 디스크 등을 앓으면서도 1998년에 고물 줍기를 재개, 지난 2010년에는 경기 포천 모현의료센터에 성금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13년만에 다시 고액 기부를 위해 찾은 곳이 바로 춘천 효자동 춘천교구청이다. 고씨의 지론은 “사람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도와야 하며,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아프리카 마을에 우물을 기부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다시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고복자씨의 둘째 아들 김춘석 씨
       고복자씨의 둘째 아들 김춘석 씨

성금 전달을 하러 함께 춘천교구청을 찾은 차남 김춘석씨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어머니께서 하신데 대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저도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사회생활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건 모전자전인거 같습니다.” 하면서 고복자 할머니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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