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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소리] 사나이 배짱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기부는 기부로 끝

[국민의 소리] 사나이 배짱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기부는 기부로 끝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4.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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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식물에서 봉황을 닮은 새로운 서상촬영 박영한 논설위원
원주에서 식물에서 봉황을 닮은 새로운 서상촬영 박영한 논설위원

[서울시정일보] 삶은 경험적 진실을 말한다. 무시무종의 시간에 생로병사하고 희로애락으로 춤추는 삐에로의 희망의 눈물처럼.

삶의 역경과 풍파를 넘어 일어 선 대한국인의 배짱이 여기에 있다.

받은 은혜는 기억하라 세상엔 아직 그의 감동적인 발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2000년 ‘전 재산 사회환원이란 뜻을 밝히고 이듬해  맨손으로 일군 반도체 기업마저 전문 경영인에게 넘긴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주 말이다.

나이 62세. 경영자로는 경륜이 한창 무르익을 때다. 

이를 두고 언론은 아름다운 퇴진이라고 반겼지만 정작 그는 “얼른 줘버리고 남은 여생을 편히 살겠다”라며 인터뷰 요청조차 손사래를 쳤다.

“물러난 사람이 나서는 건 노추”라 했고 여기저기 얼굴 내미는 일은 노욕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 벤처 기업가들의 롤모델이었고 ‘대부’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1983년 세운 미래산업은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로 출발했다.

때마침 전 세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 반도체 설비업체 중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할 때이다.

국내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될 만큼 성장세를 타던 시기에 은퇴를 결행한 것도 주위를 놀라게 한 점이다.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직원들에게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건 재산 기부이다. 

2001년 300억원이란 거금을 KAIST에 기부해 큰 화제를 부르더니 3년 후 다시 215억원의 재산을 같은 곳에 내놓아 정문술의 이미지를 굳혔다.

개인이 한 기부로는 역대 최고액이었지만 그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 “기부용도 외에는 쓰지 말 것.”  단 얼마라도 용도를 바꿔 사용하면 즉각 회수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했다.

KAIST는 뜻에 따라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의 융합학문과 미래학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정문술빌딩과 부인 이름의 양분순빌딩을 짓고 국내 처음으로 미래전략대학원을 만들어 연구 요람으로 삼았다,

그는 또 거액의 기부금 집행을 KAIST 이광형 교수가 주도해줄 것을 학교에 요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큰돈을 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이렇게 설명한다.

“내게 베푼 은혜가 있다. 

연구개발이 뜻대로 안 돼 사업 부진으로 경영에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다. 

특별한 인연도 없는 이 교수가 날 찾아와 우리 회사에 첨단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으니 내가 일생 동안 잊을수 없었다고 했다. 

때가 되면 어떻게 하든 이 은혜를 갚겠다고 늘 마음에 새겨왔다고 배경을설명했다

사람들이 궁금증을 풀자 또 다른 궁금함이 들었다. 

이번에는 이광형교수를 찾아가 물었다. 

“무슨 연유로 그 회사를 찾아가 그 수준높은 기술을 조건없이 전수해주었는가?”

그러자 이 교수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전 국가 장학금으로 선진국 유학을 했다. 

국가가 저를 과학기술인으로 만들어 준 셈이죠. 

제가 은혜를 입었으니 국가 발전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문술 회장,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가 삼각 고리가 되어 설립한 정문술빌딩은 첨단의 IT+BT 융합기술 개발을 통해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연구 메카로 자리를 잡는다.

정문술은 오랜 공직생활 중 쫓겨나 43세에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고 와신상담 끝에 다시 도전하여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무수한 난관과 시련이 잇따랐지만 굴하지 않았다.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고 밀고 나가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했다.

사업가로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니, 이제 내가 설 자리가 어딘지를 살핀 것이다. 

하차할 타이밍과 서야할 자리를 찾은 것이다.

많은 사람이 기부를 하지만, 정문술의 기부가 눈길을 

끄는 건 ‘기부는 기부로 끝’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학교 행사 초청은 물론 정문술빌딩 준공식에 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국민을 먹여 살릴만한 연구 성과가 나올 때까지 부르지 말라”고 버티던 그가 빌딩 준공 6년 만에 학교로 연구 현장을 처음 찾았다. 

연구팀의 괄목할 연구 성과 소식을 듣고서야..

말은 쉬워도 사실 받은 만큼 베푼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아무리 성실하게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쌓은 부의 절반만 내놓으면 훌륭한 사회 환원일 것이다.

그런데 백 가지 은혜를 입고 그 이상 몇십 몇백 배로 세상에 갚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빛나고 살맛 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이 글에 딱 어울리는 촌철살인의 명문장을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남겼다.

'남에게 베푼 것은 잊고,받은 은혜는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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