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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오순영.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주의적 발상...산자와 죽은 자의 의무

[이슈] 오순영.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주의적 발상...산자와 죽은 자의 의무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23.03.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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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양식 있는 지도자들이 자국의 부를 일개 회사에 헌납하고 자국민의 생사여탈권 까지 맡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시정일보 황문권 기자] 지금을 공곰히 생각해보면 비정상이 정상으로 자리잡았다.

이 혼돈의 광풍은 언제 끝날까?

우한폐렴의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죽음을 몰고 오고 국민은 생사의 고통에서 살다가 수없이 죽었다. 살려고 맞은 백신은 전 세계의 의료를 빙자한 빅텍에 죽음을 맞이하고 시대적 선구자는 이들 불합리한 정책에 반기와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오순영 의사는 의사의 직분에 진실에 사람을 살리고자 불합리한 정책에 수많은 제언을 하고 있다.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주의적 발상 1

집단면역이라는 말이 처음 당국에서 나왔을 때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집단” 이 주는 어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단이 들어간 말치고 좋은 말이 없다. 집단구타, 집단학대, 집단이기심, 집단행동, 집단따돌림, 집단체조, 집단사고 등. 집단은 늘 개인과 대립하는 강자고, 개인은 집단에 예속되어 소외되고 희생되는 약자였다.

역사에 기록된 인류가 저지른 악행들은 전부 집단, 패거리, 민족우월주의, 전체주의로부터 나왔으니, 집단의 권력이야말로 인류의 적이라 할 것이다.

전체주의는 공동체, 국가, 이념을 개인보다도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을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 대중의 열의를 쉬운 개념으로 묶어서 간단하게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도 표어화하여 대중을 동원한다.

  둘째, 스스로의 집단이 유일하며, 특수한 역사적 사명감을 지녔으며, 대중이 '커다란 사건'에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셋째, 생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유능한 비밀경찰을 운영한다.

  넷째, 대중이 주도하는 폭력적 사고와 직접 행위가 일상적인 것으로 되며, 정부가 이것을 장려한다.

한나 그랜트가 열거한 전체주의 특징에서 간단한 해결책, 표어화를 “집단면역”으로, 커다란 사건을 ‘코로나 범유행’으로, 비밀경찰을 확진자를 추적 감시하고 격리하여 모든 부분의 통제가 가능한 “질병관리청”으로, 대중이 주도하는 폭력적 사고를 방역방침을 어긴 사람을 대중이 사진 찍어 고발하거나, 백신 미접자를 차별하고 이를 정부가 장려하는 것으로 대치해보면 한국은 영락없는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결코 꿰어 맞추기가 아니다. 어느새 우리 국민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민주적인 주체가 아니라, 거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지는 도구가 되었으며, 스스로 이러한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히 개인의 타고난 신체적 특성 예를 들면 면역체계, 과민성, 기저질환 유무와 정서적인 특성, 견해, 그리고 각자 처한 상태가 무시될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 이미 항체가 생겨 맞을 필요가 없는 사람, 자신도 모르는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맞아서는 안 될 사람, 불가피한 사정으로 접종을 못할 사람까지 집단면역을 위해 백신을 맞아야 하며, 맞지 않으면 집단면역이라는 전체의 목적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접종 후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하여도 당국이 계획한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해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면역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집단면역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관료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 의학계의 저항을 받을 것으로 예상 했었다. 왜냐면 단기간에 수십억 바이알의 백신을 불량품 없이 똑같은 품질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백신이고 간에 항체가 생기지 않는 무 반응자가 10-15% 정도 있고, 바이러스가 인체의 면역을 회피하는 쪽으로 변이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신을 만드는 초거대 제약회사가 백신 생산을 독점하기 때문에, 각국의 양식 있는 지도자들이 자국의 부를 일개 회사에 헌납하고 자국민의 생사여탈권 까지 맡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면역이 양심 있는 학자와 관료에 의해 제지되거나, 국민의 참여가 저조 할 줄 알았다.

' 이글은 21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잊기 때문에 다시한번 상기하자는 차원에서 올려 보았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

인간의 뇌가 놀라울 정도로 복잡성을 보이는 이유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에 등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관찰이 항상 이론의 영향을 받고, 이론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해타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진실이나 객관적 사실은 전부 상대적이라고 상대주의자들이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 능력을 무시하는 자들은 인간을 단지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노예나, 거대 자본가의 놀음에 돈을 갖다 바치는 ‘봉’, 음흉한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속아 표를 갖다 바치는 ‘봉’ 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자들의 가장 치명적 약점이다. 그들은 정치와 이념에 물들지 않은 깨끗하고 정직한 영혼을 가진 훌륭한 시민들이 이 땅에 적지 않음을 알지 못한다.

언젠가 밝혀질 진실을 위해 사람들이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여 남길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한 시대에 나타나 인구를 다소 감축하고 오명만을 남기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모든 인류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공통적인 전통은 산자가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고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죽음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것을 밝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한다.

죽음을 밝힌 다고해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음을 밝혀야 하는 것은 그래야 산자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밝히지 않으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죽음을 밝힘으로서 생명의 존엄함과, 정의, 양심과 죄책감, 삶의 의지가 생기고 이것이 인류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도덕 윤리가 되는 것이다.

평생 처음 겪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무거운 짐은 죽음의 증거를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것, 죽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죽음을 밝히는 것, 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하는 것, 그리고 죄지은 자를 벌하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21.11,12. Dr.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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