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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소설] 수양대군의 밭전(田)자 이야기

[5분 소설] 수양대군의 밭전(田)자 이야기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23.01.3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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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수양대군이 계유정란(癸酉靖難)을 도모하려던 당시 한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판자술사로 홍무광(洪武光)이라는 맹인이 있었다.

그는 밥상넓이 정도의 나무판에 부드러운 흙을 담아 점을 보러온 손님이 마음내키는 대로 글자를 쓰면 손으로 더듬어 읽고 길흉을 예언하였다.

수양대군은 역모거사(擧事)전에 일의 성패를 알기위해 거리에서 판자술을 하고 있던 홍술사를 찾았다.

"점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오?"

"거기 앞에 흙판에다 아무 글자나

생각나는 대로 쓰십시오"

수양대군이 전(田)자를 썼다.

홍무광이 더듬더듬 손으로 글자를 읽고 나서, "전(田)자를 쓰셨군요. 쌍일이 병립(雙日竝立)-하늘에 태양두 개가 나란히 떴으니 역적지사(逆賊之事)로소이다"

수양대군은 짐짓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무엇때문에 점을 치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수양의 거사 계획을 미리 얘기하니 말이다.

수양은 시치미를 떼고,"에이,여보쇼,무슨 험한 말을 그리하는가?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으니 다시 한번 해봅시다"

수양대군은 전(田)자를 다시 한번 썼다.

"또 전(田)자를 쓰셨군요. 

사방이 개구(四方開口)이니, 여론이 두렵습니다"

전(田)은 입 구(口)가 넷이니,왕위를 찬탈하면

구설을 면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이다

그제서야 수양은 홍무광의 두 손을 꼭 붙잡고서,

"그래, 이 사람아 그러니 어떻게 하면 내가 성공시킬수 있겠나?"

"말 그대로이지요"

"말 그대로라니?"

"좌벌우벌(左伐右伐)-전(田)자에서 왼쪽과 오른쪽벽을 떼어내면 王자가 된다.

하면 왕이 되지를 않사옵니까?"

수양대군은 이말을 듣고 당시 영의정이던 황보인(黃甫仁)과 좌의정이던 김종서(金宗瑞)를 좌,우로 판단제거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거사당일 수양은 최후의 결심을 굳히기 위해 다시 한번 홍무광을 찾았다.

당시 홍무광은  평소 그가 손님을 받던 거리에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수양대군은 수소문하여 그의 집까지 찾아갔다.

대문앞에 쪼그리고 앉아 햇빛을 쬐며 무슨 생각인가를 골똘히하고 있던 그의 앞으로 다가간 수양대군은, "이 사람아 날세 ,일전에 밭전(田)자를 쓰고 묻던 사람인데 아무래도 앞일이 궁금해서 한번 더 물으러 왔네"

"예. 지금은 흙판도 없으니 마당에 아무 막대기나 주워 들고 이 앞에다 써 보시지요"

수양대군은 한일(一)자를 썼다.

글자를 더듬어 읽은 홍무광은, "흙 토(土)위에 ㅡ획을 그으면 임금 왕(王)이 되니, 필시 제왕이 되실 것입니다"

하면서 벌떡 일어나 수양대군에게 큰절을 하여 임금을 배례하는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수양대군은 만족했다.

집으로 돌아간 수양은 자신의 심복인 권람(權擥)을 불러서,

"자네는 지금 홍무광의 집으로 가게.

거기가면 대문 앞에 그가 앉아 있을 테니 점을 보러 왔다고 하고 한일(一)자를 하나 쓰게.

반드시 한 일(一)자여야 하네"

그리하여 권람은 수양대군이 시키는대로 홍무광에게 가 한일(一)자를 쓰며 자신의 운명을 물어 보았다.

"오늘은 한 일자를 쓰는 손님이 두 명째 오셨습니다"

"손님이 쓰신 일(一)자는 생자종획이요 사자시획

(生字終劃 死字始劃)-산다는 글자 生의 마지막 획이요, 죽는다는 글자 死의 첫획)이니 당신을 낳으신 분이 돌아가시겠습니다"

권람은 깜짝놀라 황급히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마침 세상을 하직한 후였다.

상(喪)을 치르느라 권람은 다음날의 거사(계유정란)에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왕조 5대 문종에게는 단 한 가지의 흠이 있었다.

몸이 지나치게 허약했던 것이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세자를 책봉하였으나, 자신의 유고가 있을 경우, 왕위를 이어받을 세자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는 점은 앞으로 찾아올 혼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결국 1452년 문종은 재위 2년 4개월 만에 서른아홉의 한창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단종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었다.

한편, 세종대를 거치며 닦아놓은 태평성대의 뒤안에는 불안이 내재해 있었다.

세종의 신임을 받으며 성장한 김종서, 황보인 등 문신 세력이 전체 정사를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어린 아들 단종을 염려하며 부탁한 문종의 유지를 받들었다는 명분은 있었다.

수양대군은 마침내 상대 세력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10월 10일아침,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홍달손등과 직접 활을 들고 일어나 집을 나서며 먼저 노린 것은 대신 중의 실세 김종서였다.

김종서는 당시 ‘큰 호랑이’라 불릴 정도의 실력자였기 때문에, 그를 먼저 없앨 수 있다면 거사에 큰 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며 집으로 찾아가 철퇴로 죽인 후, 수양대군은 궁궐로 향하여 입직승지(入直承旨) 최항(崔恒)을 불러 김종서가 반역을 일으키려 하여 사세가 급박하므로 임금에게 미처 아뢰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고 고하였다.

어린 단종이 겁에 질려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수양대군은 왕명으로 대신들을 부르도록 하여, 황보인, 조극관(趙克寬), 이양(李穰) 등을 궁문에서 제거하였다.

자신의 동생으로 정치적 라이벌인 안평대군마저 강화에 압송한 후, 결국 사사하였다.

그후 세조가 단종에게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자,이에 수차례 반발이 일어나게 되었고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음을 당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

왕위를 빼앗고 친 동생들과 조카까지 죽였다는 세조에 대한 비난은 그의 치세 내내 그를 따라다녔던 풀 수 없는 숙제와도 같았다.

그 스스로도 양심적 가책을 느꼈는지,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가 꿈에 나타나 자신의 자식을 죽이겠다 하여 놀라 꿈에서 깨니, 세자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세조가 말년에 지병으로 매우 고생하였는데, 친족들을 죽인 벌로 문둥병을 앓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있다.(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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