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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슈] 1월의 시작에는...그대에게 조금 더 다가 서는 것

[문학 이슈] 1월의 시작에는...그대에게 조금 더 다가 서는 것

  • 기자명 박용신 기자
  • 입력 2023.01.02 07:59
  • 수정 2023.01.02 09:19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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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망이 있음을_ 그리고 올 한해 그대에게 조금 더 다가 서는 것_

[서울시정일보]1월의 시작에는/  백암 박용신

새벽 창가로 눈이 내린다.

싸라기눈이 사그락 살그락 내리더니

금새 솜사탕 같은 함박눈이 먼 산에도 지붕 위에도

그리고 장독대에도,

 

선잠 깬 가난한 농부 어깨 위에도

소복소복 푸짐하게 쌓여 갑자기 부자처럼

넉넉함으로 가슴이 따스해 온다.

 

스르르 목탄난로 주전자에 물 끓어 오르는 소리_

일찍 먹이를 찾아 처마밑으로 날아든

콩새의 작은 입부빔,

 

문풍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소리_

철교를 힘겹게 건너는 화물열차의 볼멘 기적_

낮은 하늘로 묻어온 하느님의 기척소리_ 

 

정갈하게 냉수 한 사발 받쳐들고 장독대로 가 

두 손 모아 안녕을 기원 드리는

어머니의 나직한 주술 소리 까지_

 

이렇듯 1월의 새벽은 작은 소리들에게서도

감사를 느끼며

 

잔잔한 행복 한 단을 흑단젓가락으로도

건져 올릴 것 같은 흡족함으로 기쁨이 일순,

눈 위에 햇살처럼 반짝인다.

 

아직도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무작정

그대와 나눈 약속의 말들을 기억하고

그 곳으로 달려가 두세 시간쯤 혹여,

그대가 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로

서성거리는 순진함, 머리가 희끗한 지금,

 

그대 아닌 다른 그에게서 휴대폰

문자 메세지를 받고 더듬거리며

"알았어! 그음_방 갈_께."

간신히 답신을 찍는_  

 

내 그러한 솔직하고 어수룩함이 좋다는  당신의 말,

그 나지막한 토로가 고마웠던_

이제는 그대가 그 때의 당신인 것을_

 

따스함이 고마워

모처럼 귀한 손님에게나 대접했던 우롱차를

조심스럽게 우리는 지금,

알싸한 배냇향이 번지는 작은 나의 토방_

일월은 가장 신선한 침묵의 언어로

그대에게 모두에게 고마워해야함을 일깨우고_

 

꼭두신년 해마다 두어 오던 <다짐>,

다시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리라던(늘 작심삼일)_

내내 다락장에 처박아 두었던 겨울 등산장비를 챙겨 태백산 천제단에서 올라 새삼 또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_

태초의 모진 칼바람 견디며 제단을 지켜 온 늙은 주목에게서 적당한 체념과 나유타 기다림도 배우며, 멀리 동해 떠오르는 붉은 태양_

 

 

아직 희망이 있음을_ 그리고 올 한해 그대에게 조금 더 다가 서는 것_

 

하여, 그대 심장소리를 폐부로 느끼며 나뭇가지 상고대에 부딛는 맑은 햇살 한 줌 부싯돌 삼아 사그러 드는 사랑의 심지를 돋워 불꽃을 다시 지피고, 고단한 삶의 타래들을 수월하게 풀어 한 해 잘 살아 내려는_

 

 

그러한 바램들을 소원하며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는_태백산 정상의 새벽.

가장 추운 계절, 일월이어서 더욱 따듯할 수 있다는 역설은 탕아처럼 방황하던 시절 늑골이 시리도록 저자에서 찬비를 맞던 아픈 기억과,

목탄난로 참나무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지금의 내 작은 서재,

 

안락의자의 편안함이 이렇듯 상반되어 남극

빙하 얼음조각보다 더 차가웠던 그대를

최상의 그리움으로 이름지어 부르며_

아끼던 우롱차를 우리는 아부는 내가 살아 가야할, 내가 살아 남아야할, 중년의 최후 보루쯤으로 해 두면 좋겠지.

오랜 진공 앰프 LP판에서  박하 향내 그윽한 신년 음악회 선율이 울려 퍼지는 아침,

손때 진한 귀알 찻잔에 모처럼 접시받침을 하는 여유로, 무광택 순은 악세사리 음색의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다.

스스로가 아니라 이제는 어쩔 수없이 머무는 지혜를 깨달았기에 내 1월의 시작에는 저 눈밭을 건너는 아기사슴의 작은 발자욱 같은_신새벽의 설레임과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는 유년의 사랑이 한 번 쯤 스쳐 가기를_

 

2023년 신 새벽에 - 주필 /백암 박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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