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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 태를 모신 곳

태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 태를 모신 곳

  • 기자명 주복식 기자
  • 입력 2022.08.29 00:23
  • 수정 2022.08.31 00:0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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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의 태령산 태실
묘자리와 함께 신성시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
충북 진천의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조선 왕실에서 신성시한 태실

김유신 장군 태실로 진천 태령산 정상이다. 남족에서 북쪽 방향
김유신 장군 태실로 진천 태령산 정상이다. 남족에서 북쪽 방향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있는 태령산 정상에 김유신 장군의 태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로 탄생지와 함께 사적41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태실은 태령산 정상에 자연석을 둥글게 쌓아 기단을 만들고 봉토를 마련하여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했다. 탄생지 주변에 당시 살았던 집을 복원하여 보여주고 있다. 

김유신 태실로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태령산 정상부분이다.
김유신 태실로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태령산 정상부분이다.

태령산 꼭대기가 태실이며 산 정상으로 오르는 초입에 화랑정이라는 활터인 국궁장이 있다. 활터를 지나면 당시에 식수로 먹었던 연보정이 지금도 있다. 석축으로 쌓아 직경이 1.8미터와 높이가 2.8미터이다. 물맛은 손으로 몇 번을 떠서 먹어봐도 깨끗하여 지금도 마실만 하다. 

김유신 장군이 어릴때 마셨던 우물인 연보정으로 석축으로 쌓아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고 나오고 물맛도 좋다.
김유신 장군이 어릴때 마셨던 우물인 연보정으로 석축으로 쌓아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고 나오고 물맛도 좋다.

진천은 김유신이 화랑으로 성장한 곳으로 화랑 태권도의 고장이라 군에서는 자랑한다. 옛 지도에도 태령산 태실이 표시되었고 고려시대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으며,  화랑무예태권도 성지라는 기념비를 세워 알려주고 있다.

화랑무예태권도 성지 기념비를 세워 화랑 김유신의 탄생지를 알려주고 있다.
화랑무예태권도 성지 기념비를 세워 화랑 김유신의 탄생지를 알려주고 있다.

 

김유신 장군 태실은 장군의 아버지가 만노군(현재 명칭은 진천군)태수로 근무하는 595년에 임신 20개월만에 태어나 태령산 정상에 묻고 성장하여 15세에 화랑이 되어 삼국통일의 주역이 됐다. 장군은 20개월 만에 2남 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여동생 문희를 김춘추에게 시집을 보내 신라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삼국사기 50권 중에 임금들의 기록보다 많은 3권에 걸쳐 자세하게 편찬되어 있다. 장군은 신라의 최고관직인 상대등을 지냈으며 태대각간과 흥무대왕으로 추존됐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태종무열왕 김춘추 아들인 문무왕이 두 권에 걸쳐 나와 있다. 

탄생지에 있는 기념비로 "흥무대왕 김유신 유허비"로 한자 초기 글자인 전서체로 쓰여 있다.
탄생지에 있는 기념비로 "흥무대왕 김유신 유허비"로 한자 초기 글자인 전서체로 쓰여 있다.

 

김유신의 유적은 설화와 함께 강원도 강릉 대관령 산신당에도 모셔져 있고, 경상도 월성군에도 신검으로 바위를 쳤더니 바위가 갈라졌다는 단석산이 있다. 삼국유사에도 설화적 내용들이 많이 전한다.

경상도 성주에 있는 조선 세종대왕 자녀들의 태실
경상도 성주에 있는 조선 세종대왕 자녀들의 태실

 

태실은 조선 왕실에서 정기가 흐른다는 전국의 명산에 많이 묻었다. 태봉이라는 명칭의 산이름들이 전국에 많이 있으며, 유명한 장소로는 세종대왕의 자녀들 태실을 모아둔 경상도 성주에 태실군이 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태실들의 땅을 이용하려고 1929년에 서삼릉으로 모아서 관리하고 있다.

창경궁에 있는 조선 성종의 태실로 왕이되면 난간석과 기념비를 세운다.
창경궁에 있는 조선 성종의 태실로 왕이되면 난간석과 기념비를 세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군으로 1929년에 전국에 있는 태실들을 옮겼다. 석물들은 원래자리에 두고 태항아리를 옮겼고, 지금은 서삼릉에 있는 태항아리를 발굴하여 고궁박물관에서 일부 전시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군으로 1929년에 전국에 있는 태실들을 옮겼다. 석물들은 원래자리에 두고 태항아리를 옮겼고, 지금은 서삼릉에 있는 태항아리를 발굴하여 고궁박물관에서 일부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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