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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승만 서거일’, 전 기무사령관 허평환의 끌탕 “대한민국 국민, 이래도 되는겁니까

[오피니언] 이승만 서거일’, 전 기무사령관 허평환의 끌탕 “대한민국 국민, 이래도 되는겁니까

  • 기자명 김삼종 기자
  • 입력 2022.07.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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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평환 전 기무사령관.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서울시정일보]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지난 19일은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신 국부 이승만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57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공화당은 오늘도 예년에 이어 조원진 당 대표와 함께 100여 명의 당원 동지들이 현충원 이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이승만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현충원 묘소에는 우리공화당을 제외한 어느 정당도 조화하나 보내지 않았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김일성 죽은 날에는 우리 언론들이 ‘김정은이가 참석했느니, 안했는니’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이 대통령 서거일에는 한 줄 보도도 없다. 이승만기념사업회 묘소 앞 추모행사도 50여 명이 모여서 초라하게 하고 있었다.

이러고도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자격이있을까?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 자유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실로 우리민족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불세출의 위인이고 위대한 지도자며 영웅이셨다. 조선말기 입헌군주제를 해야 나라를 보존할 수 있고 일반 백성이 잘 살 수 있게된다는 신념으로 덕수궁앞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 고종황제를 폐위시키려다 발각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한성감옥에서 5년7개월 간 옥고를 치루었다.

옥중에서 장티푸스가 창궐하여 죄수들이 죽어 나가자 병든 죄수들의 피고름을 닦으면서 간호를 했다. 특별사면으로 출옥 후 외교관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웠다.

미국생활 내내 미국 국적 취득을 거부하여 취업을 할 수 없었고 생활이 무척 어려웠다. 그 어러움 속에서도 강연을 다니면서 연명을 했고, 기금을 모아 상해 등 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보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바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했다. 하나밖에 없던 외아들을 자신이 키울 수 없어 고아원에 맡겨놓고 주말에나 잠시 가서 보다가 병에 걸려 죽었다.

그 외아들은 자금도 필라델피아 공동묘지에 쓸쓸히 잠들어 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에 추대하여 상해로 가야하는데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어두어 갈 수가 없었다.

중국 노동자 중 죽은 사람들을 본국에 보내는 시신운반선 관속에 들어가 상해로 갔다. 해방이되어 귀국했는데 당시 대다수 양심있는 깨어난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힘없는 일반백성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국민의 75%가 남노당에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 박사는 공산주의로는 절대로 잘살 수 없고, 힘없는 백성들이 인간다운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없다는 신념으로 자유대한민국 건국에 팔을 걷고 나섰다

당신의 신념과 권위와 노력으로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자유대한민국 건국 후에 토지개혁을하여 지주들이 독점하고 있던 농토를 유상몰수하여 경작자들에게 싼가격으로 유상분배를 해 주었다.

인류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토지개혁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신이 미국생활 특히 하바드 프린스턴 대학 학맥을 동원하여 유엔을 3일만에 소집하고 미군참전을 조기에 이루어내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

북진통일를 고집하고 반공포로를 석방하여 미국이 기피하던 한미동맹을 기어이 이루어 내었다

미군장비로 24개 사단을 창설하여 국군을 현대군대로 재무장했다. 휴전선 경계를 미군이 맡도록하여 공산군의 재침에 쐬기를 박았다.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전국민 교육에 나섰고 1.4%이던 취학율을 96프로까지 올려 문맹을 퇴치했다.

국비유학제도를 도입하여 2만 명을 미국에 유학시켰다. 이들이 5.16 군사혁명 이후 경제개발과 현대국가건설의 주역이 되어 오늘의 부강한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역군이 되었다.

식목일을 제정하여 오늘의 푸른산하를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여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오늘의 우리 의료보험체계의 주춧돌을 놓았다.

원자력발전소도 이승만 대통령 의지로 최초로 시작하였다.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어느 허름한 요양원에서 피를 수 없이 토하면서 운명하셨다.

이승만 대통령 시신을 염 하려온 장의사가 울부짓으며 “나는 안다. 나는 안다. 너가 얼마나 너의 조국을 사랑했고 너의 조국을 위해 수고했는지, 나는 안다고” 울부짓으며 염을 하였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상해로 건너갈 때 관에 넣어 보내준 중국인 장의사였다.

아! 위대하고 고마우신 민족의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님이시어!

부디 하늘나라 별이되어 이 민족을 지켜주소서 !

자유통일을 이루어 온 민족이 자유 평등 정의 풍요를 누리며 사람답게 사는 민족이 되게하여 주소서 !

2022년 이승만 대통령 57주기에 전 국군기무사령관 예비역 육군중장 허평환 삼가 올립니다.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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