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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11.02.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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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의 자손에게 똑같은 유언을 하여 내가 남긴 돈을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하라.” 이 말은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위하여 싸우다 옥고로 순국한 남자현(1872. 12. 7~1933. 8. 22) 여사의 유언입니다.

의병운동에 뛰어들었던 남편 김영주가 왜군과 전투 중 죽고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3월 중국 요녕성 통화현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 가입, 1925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죽이려고 국내에 잠입한 적 있으며, 많은 애국지사 옥바라지를 했고,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 항상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려고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흰천에다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쓴 뒤 잘린 손가락 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하여 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킨 일화도 있습니다.

여사는 20~30년대 만주 항일무장운동 진영의 유일한 여성대원으로 꼽힙니다. 의열활동, 사분오열된 만주지역 무장단체의 통합, 군자금 조달, 여성들의 계몽을 위한 여성단체 조직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하지요. 옥중에서 원수의 밥은 사절이라며 끝까지 항거하여 기력이 다해 숨진 남자현 여사. 이제 3·1만세운동 92돌을 맞아 여자 안중근이라 불리는 남자현 여사의 민족정신을 새겨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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