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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책방] 위작의 미술사

[지식인의 책방] 위작의 미술사

  • 기자명 손수영 기자
  • 입력 2017.12.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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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욱 저 l 매경출판)
(최연욱 저 l 매경출판)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현대까지 가짜 그림으로 미술사를 꿰뚫다! 커튼 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위작 이야기

“서양미술, 원작의 그림자에서 싹트다!”

위작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을 비롯해 여전히 진행 중인 위작 이슈들. 원작 화가는 왜 자기 그림을 알아보지 못할까. 그리고 왜 우리는 가짜 그림으로 미술사를 이해해야 할까.

"마리아 카타리나는 교황 오노리오 4세를 배출 한 로마의 명문 사벨리 집안 며느리였다. 미노 다 피에솔레(1429~1484년)가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한 살이었다. 아무리 천재 거장 조각가인들 한 살에 기저귀를 차고 대리석을 깎았을 리도 없고, 라틴어를 구사하지도 못한다. 헬렌 클레이 프릭도, 독일의 큐레이터 레오 플라니삭도 위작을 보고 피식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Part3 미국 미술관들의 ‘명품 중세 조각’ 사랑' 중에서)"

"'베일을 쓴 마돈나'는 작품 중간 중간에 벌레가 나무를 파먹어 서 뚫린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엑스선으로 찍어보니 반듯한 일자 형태의 구멍이었다. 벌레는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다니므로 구멍이 곧게 뚫릴 수 없는데 말이다. 결국 누군가 인위적으로 못을 박아 구멍을 냈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한참 더 지나 1994년에는 학자들이 작품의 재료를 분석하는 기술인 EDX로 이 작품을 샅샅이 분석했다. 그 결과 짙은 코발트블루, 노란색에 가까운 징크 크로메이트 , 크롬 옥사이드 그린 등의 염료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Part4 벌레 먹은 자국까지 위조하다!' 중에서)"

"원래 고야가 살았던 시절에는 1층 집이었다고 한다. 고야가 손자 마리아노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1830년 서류에는 1층 건물로 등록돼 있다. 즉 2층 은 고야가 죽고 나서 증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층의 7점은 누가 그린 것일까? 2층이 완공되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리진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가 고야의 스타일로 2층의 7점을 그렸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 많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서류가 잘못 기록됐을 수도 있다. 집을 유산으로 물려줬을 때는 고야는 이미 정신병이 심해서 2층을 1층으로 표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퀸타 델 소르도는 워낙 외지에 있어 서 기록 역시 충분하지 않아 누구 하나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Part6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2층 벽화, 누가 그렸을까?' 중에서)"

"폴 조던 스미스의 복수 방식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해졌다. 우선 자신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연구했다. 당시 선진 미술이라는 유럽 미술을 보니 그림을 잘 그릴 필요도 없었다. 그 시기 유럽 미술은 추상미술이 주를 이뤘다. 전반적인 미술계의 상황을 파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한 폴 조던 스미스는 가짜 이름을 하나 만들었다. 그의 필명은 러시아 출신 화가 파벨 제르다노비치. 그리고 그는 그림 한 점을 그렸다. 제목은 'Yes, we have no bananas'였다. 폴 고갱의 스타일로 그렸는데, 너무 허접한 작품이었다. 말 그대로 초등학생이 그려도 그것보다 잘 그렸을 정도였다.(본문 중에서)"

서울시정일보 손수영 기자 hmk06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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