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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논설위원/개그맨서인석의 유머칼럼]... 우린 언제 문화선진국이 될 것인가? [1부]

[서울시정일보논설위원/개그맨서인석의 유머칼럼]... 우린 언제 문화선진국이 될 것인가? [1부]

  • 기자명 서인석
  • 입력 2017.02.08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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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 문화선진국이 될 것인가? [1부]

[서울시정일보논설위원/개그맨서인석의 유머칼럼]

 

우린 언제 문화선진국이 될 것인가? [1]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마가렛 조..그 녀는 미국 뉴욕의 유명한 코미디클럽 "고담"의 스탠딩코미디언 이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틱시티 같은 유흥 도시에선 매일 밤 스탠딩 코미디 쇼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조크를 들어도 별로 와 닿지 않는데, 청중들은 발을 구르며 웃는다.

 

유명한 미국 코미디언 중에 마가릿 조라는 한국() 여성이 있다. 그녀의 조크를 들으면 한국 가정에서 자란 2세들의 생활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한국계라니까 믿지 못하더군요. 왜냐하면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모르거든요라는 그녀의 조크가 기억난다. 그 말 자체는 우습지 않지만 한국 부모는 무조건 아이들에게 음악교육을 시킨다는 미국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통념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는 조크다.

 

혹 미국 갈일이 있으시면 뉴욕의 고담코미디클럽 그리고 허리우드 스트리트에 자리한 래핑팩토리코미디 클럽을 들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가릿 조가 무명시절 출연했던 뉴욕을 대표하는 코미디클럽 고담바보들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코미디클럽"고담"은 바보들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1988년 가을 뉴욕의 코미디 클럽 "고담"30대 초반의 한국인 두 청년이 들어섰다. 한사람은 뚱뚱하고 덩치가 큰 사람 이였고 또 한사람은 왜소한 청년 이였다.

 

둘은 고담코미디클럽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눈을 반짝이며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이어 시작되는 스탠딩 코미디 쇼를 관람하는 청중들의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더니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곤 무대 위 스탠딩코미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 코미디클럽의 창시자이자 지금은 고인이 된 정치코미디의 일인자 김형곤과 성인스탠딩 코미디의 일인자 서인석 이다.

      


故 김형곤과 서인석

 

이듬해 1989김형곤은 신사동 사거리에 위치한 50평쯤의 지하에 코미디 클럽을 오픈한다.

마치 창고 같은 초라한 인테리어였지만 출연진은 화려했다. 김형곤을 필두로 하여 서인석 ,전유성, 심형래, 엄용수, 김한국, 오재미, 한상우, 이영자등의 국내 최정상급의 입담꾼들과 이미테이션 가수인 너훈아 조영필 패튀김,마술사 이은결등을 발굴하여 대한민국을 웃음바다로 들썩이며 오픈하자마자 만원사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김형곤씨의 국회의원 출마선언으로 코미디클럽은 선장을 잃어 방황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출연진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전유성씨는 가수 진미령씨와 결혼하면서 그동안 기획했던 코미디창작저술에 집중하게 되어 무대를 떠났고 (지금은 경북청도에 코미디창작촌을 만들어 촌장으로 재직중이다) 심형래씨는 영화제작에 몰빵하여 스티븐스필버그와 맞장을 뜨기 시작했다. 그 작품이 "디워" 이다. 서인석은 아들의 유학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하나 둘...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떠나기 시작했다.

 

그 후 코미디클럽은 몇 번의 진통을 격은 후에 2007년 즈음 문을 닫고 만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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