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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관 ‘속기공무원’ 들여다보기

21세기 사관 ‘속기공무원’ 들여다보기

  • 기자명 황인혜기자
  • 입력 2011.09.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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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초롱씨의 8년차 국회 공무원이 소개하는 속기의 세계

[서울시정일보 황인혜기자] 국회 본회의장이 또 시끌벅적해졌다. 정책을 두고 찬반양론 고성이 난무하는 자리. 이 한가운데 누군가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 그리고는 조용히 주위를 살피며 회의장의 이모저모를 기록한다. 바로 속기 공무원들이다.
이번 호에는 속기 공무원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오늘의 주인공은 속기공무원 권초롱씨이다.

“대학 졸업 즈음 TV 뉴스에서 국회 본회의장을 본 적이 있는데 영상으로 본 그곳은 아주 소란하더라고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가운데 조그만 구멍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거예요. 마치 태풍의 눈처럼 말이죠. 제가 국회속기사를 처음 알게 된 게 이 때였어요.” 국회사무처 의록기록과에서 근무 중인 8년차 속기사 권초롱씨는 그때부터 국회속기사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국회의 경우 모든 의사과정을 속기 방법으로 기록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속기사들은 기호(속기문자)를 사용해 회의나 좌담회 등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의사에 관한 발언을 기록한다.

속기공무원이 되려면 국가기술자격인 한글속기를 3급 이상 취득해야 한다. 특히, 국회속기사의 경우 필기시험도 치러야 한다. 자 이제 8년차 속기사 권초롱씨로부터 속기공무원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 속기공무원이란
= 흔히 속기사를 가르켜 ‘소리 없는 기록자’, ‘말의 사진사’, ‘기록의 마법사’, ‘회의장의 블랙박스’라는 말을 하다. 이중에서 공무원 신분인 속기사의 경우에는 ‘현대판 사관(史官)’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우리 민족은 기록이라는 분야에 위대한 힘을 가진 민족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그 방대한 양뿐 아니라 정확성과 진실성에서 보건대 세계(유네스코)가 인정할 만큼 뛰어난 기록문화유산이다. 모두 왜곡 없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 생을 바쳤던 위대한 사관들 덕분이다. 지금은 속기공무원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125명의 속기공무원들이 헌정 60년을 함께하면서 ‘역사의 이름’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정부수립 이전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 60년 이상이다.

- 주로 어떤 업무를 하는가 ?
= 대체로 속기사라고 하면 회의장에서 나오는 말들을 빨리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국회속기사는 의정사를 기록할 뿐 아니라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까지, 업무영역이 훨씬 복잡하다. 덕분에 국회의 속기공무원은 담당 업무에 따라 크게 회의장을 출입하는 실무 속기사, 경력이 오래된 편집 속기사, 보존부록을 담당하는 속기사, 전자회의록을 담당하는 속기사로 구분된다.

일례로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국회사무처 ‘의정기록과’에서 하는 일을 말하자면, 국회에서 이뤄지는 회의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의사에 관한 발언을 속기방법으로 기록한다. 그리고는 기록된 내용을 회의록 체제에 맞게 다시 한번 검토 및 교정한 후 ‘본호 회의록’을 작성한다. 검토보고소, 서면질문, 답변서 등과 같이 회의록에 게재하도록 규정된 보고서를 모아 별도로 ‘보존부록 회의록’을 작성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작성된 ‘본호회의록’과 ‘보존부록회의록’ 등을 책자로 발간하고, 발간된 모든 회의록을 ‘국회의록시스템’에 등록해 국민들에게 제공한다. 국회회의록시스템은 지난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회의록부터 모든 기록을 담고 있다.

-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 국회 속기공무원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가장 먼저 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국가기술자격인 ‘한글속기 3급’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속기는 숙련기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대개 열심히 해도 1년 이상 걸린다. 그러고 나서는 국회사무처 국가공무원임용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 과목은 필기시험(국어, 영어, 행정학개론, 행정학총론, 헌법)과 분당 320자 수준의 실기시험(연설체·논설체)이다. 이 과정을 모두 합격하면 면접시험을 통해 최종합격자가 결정된다. 일반 공무원 시험보다 경쟁률은 낮지만 보통 1년에 서너 명을 뽑고 정기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한 분야이다.

- 일과는 어떻게 되나
= 사실 국회에 들어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정시 퇴근은 고사하고, 회의가 끝나지 않으면 새벽 2시, 4시에도 퇴근할 수가 없다. 어떨 때는 동이 트는 것을 보며 퇴근하기도 한다. 특히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부터 12월까지는 보약을 챙겨 먹으며 일해야 할 정도이다. 정기국회 기간 중에서는 국정감사가 겹치기 때문에 지방출장도 많고 업무의 양도 엄청나다.

- 속기사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
= 속기사라고 해서 빨리 기록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잘 듣는 건 기본이고 회의장 전체 상황도 주시해야 한다. 정확한 기록이 생명이므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이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강도가 높다 보니 피로도가 높아 건강관리에도 늘 신경써야 한다. 잘 들으려면 귀가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정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제는 어떤지, 문화, 사회 이슈 등 다방면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다. 모두 회의 중에 언급이 되기 마련인데 못 알아들으면 손 움직임이 느려진다. 그럼 기록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내 경우에는 더 잘 듣기 위해 종종 발언자의 입을 보며 속기를 한다. 입 모양이 소리를 더욱 정확하게 들리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직 방송인 출신의 모 국회의원은 내가 계속 얼굴을 보니까 내가 당신을 좋아해서 보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나느 그저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 속기공무원으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 헌정 60년이 우리 손에 의해 그대로 기록되어 왔고, 이 기록은 앞으로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다. 얼마전 한 방송에서 속기록은 ‘국보(國寶)’라며 ‘우리나라 정치사의 산 보물’이라고 칭했다. 새삼 으쓱했다.

- 속기공무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속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힘들기도 하고 오랜 시간 연마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끼는 거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속기가 아주 활성화되어 있다. ‘인터스테노’라는 국제 속기사들의 모임 경쟁부분에서 우리나라 속기사가 2위를 차지할 정도이다. 물론 녹음기술이나 영상매체가 발달하면서 ‘속기’는 시대에 뒤쳐진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밥벌이 수단이 아닌 사명감과 긍지를 생명으로 하는 아날로그적 직업이 바로 국회속기사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역사의 중앙에서 역사를 기록하며 미래에 평가받는 사람들인 셈이다. 이 매력적인 직업에 후배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속기록에서 삭제는 없다고 한다. 부적절한 내용의 경우 의장의 결제에 따라 배부하는 회의록에는 빠지긴 하지만, 영구 보존되는 회의록에는 그대로 기록이 남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의 힘이고, 기록은 그 증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의 증거를 정확하게 남기기 위해 늘 노력하는 속기공무원들. 21세기 사관이라는 별칭이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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