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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골목길 접어들 때에'…불안한 시민들

[사회] '골목길 접어들 때에'…불안한 시민들

  • 기자명 신덕균
  • 입력 2016.06.0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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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길…낯선 인기척에도 '깜짝'

 


[서울시정일보 신덕균기자]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영원한 가객인 고(故) 김현식의 명곡 중 하나인 '골목길'의 첫 대목이다. 어두운 밤 '커튼이 드리워진' 사랑하는 연인의 방 창문을 바라보는 이의 설렘, 싱숭생숭한 마음을 잘 그려낸 곡이다. 그러나 최근 도심 골목길에 접어들 때 가슴이 쿵쿵, 두근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노래 처럼 사랑이 아닌 불안과 공포 때문이다.

 

◆ 어두컴컴한 골목…"밤길이 무서워요“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 신촌 거리는 밤늦은 시간에도 거리를 비추는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하지만 번화가 대로를 벗어나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인적이 뚝 끊긴다. 밝은 조명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시끌벅적한 대로변과는 대조적으로 골목길은 이곳이 신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둡고 조용하다.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맞은편 신수동 골목은 서강대생을 비롯해 가까운 연세대와 이화여대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하지만 서강대를 졸업한 박모(27‧여)씨는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섬뜩하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만이 비추는 골목길을 매일같이 지나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낯선 인기척이라도 느껴지면 황급히 걸음을 재촉하곤 했다"고 떠올렸다.

서강대에 재학 중인 박모(26‧여)씨는 "상당수의 여학생들이 그곳에서 자취하는 것을 꺼린다"고 했다. 거리에 가로등도 많이 없고, 특히 밤이 되면 인적도 끊기고 취객도 많이 돌아다녀 혼자 다니기 무섭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대앞 골목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수많은 유커(중국인 관광객)과 쇼핑객으로 북적이지만 자정이 가까워올수록 인적은 끊기고 빛은 사라진다.

이대를 졸업한 직장인 이모(27‧여)씨는 "예전에는 밤 시간에 유흥가를 중심으로 덩치 큰 남성들이 많이 돌아다녀 더욱 무서웠다"며 "지금은 주변에 재건축을 하는 곳이 있어 되려 범죄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골목 안전 사각지대'는 비단 대학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원룸촌 골목도 치안 공백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2가 한강성심병원 주변은 과거 소규모 공구상가와 부품공장들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인근 여의도와 영등포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의 수요가 생기면서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원룸과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이곳 원룸촌 초입에는 요금이 시간당 400원인 PC방이 있다. 이곳에는 평소에도 갈 곳 없는 노숙인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여인숙이나 찜질방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하루를 묵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PC방 손님들이 골목까지 나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소주잔을 기울인다.

직장인 최모(32‧여)씨는 "집에 가려면 이 골목을 지나야 되는데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지나갈 때마다 혹시나 저 사람들이 날 해코지할까봐 무섭다"고 했다.

이런 공포는 남성들도 느낀다. 마찬가지로 이곳 원룸촌에서 자취하는 정모(28)씨는 "골목도 어두운데다 밤이 되면 취객도 많이 돌아다닌다"며 "가끔씩 거리에서 자는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 골목…공(公)과 사(私) 사이의 사각지대

통계청에 수록된 2011~2014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체 강력범죄 중 골목을 비롯한 노상에서 발생한 경우는 전체 10만4090건 중 1만7911건이었다. 전체 강력범죄 중 17%가 골목에서 일어난다.

같은 기간 유흥업소 주변에서 일어난 강력범죄 수가 7814건인 점을 감안하면 1만건 이상의 강력범죄가 길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경훈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골목이라는 곳 자체가 사각지대이기 때문에 범죄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우범자의 경우 대로변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다음 골목길로 끌고 들어가 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골목의 범죄율이 높게 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골목이 범죄에 취약한 이유를 "골목은 공적인 공간도 아니고 사적인 공간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공적인 공간인 번화가는 유동인구도 많고 조명기구도 밝으며, 사적인 공간인 가정은 실내라는 점에서 안전성이 보장된다"면서 "하지만 골목은 공적도 사적도 아닌 어중간한 공간이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골목길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감시의 눈이 적다"며 "거기다가 공적인 공간도 아니기 때문에 조명을 밝게 한다든가 CC(폐쇄회로)TV를 늘리면 주민들이 불편해할 만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범자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시기능이 약할 때 범죄 발생 확률은 올라간다"며 "방범순찰대를 조직한다던가 외국처럼 이웃감시제도를 도입하면 골목 범죄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육교 입구 이전, 안전 귀가 도우미…골목길 치안 대책

이정분(59‧여)씨와 조정원(37‧여)씨는 신촌 일대 여성안심귀갓길을 지키는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다. 늦은 시간 어둡고 위험한 골목을 지나가야 하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집까지 동행해준다.

이들은 월요일은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화~금요일은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정분씨는 "이곳은 여성 혼자 사는 고시원과 원룸들이 많이 있고, 주변에 모텔촌과 같은 우범지대가 있어서 특별히 신경을 쓰는 지역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 주변은 2012년 신촌 대학생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정원씨는 "안심귀가 서비스를 신청하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며 "보통 순찰을 돌다가 혼자 귀가하는 여성이 있을 때 동행해줄지 여부를 물어본다"고 말했다.

조씨는 "예전에는 괜찮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많았지만 강남 여성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동행해주는 것을 반기는 경우가 늘어나 요새는 하루 평균 7명에서 10명 정도가 여성안심귀가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경부선 철길 위를 지나가는 육교의 입구 위치를 옮겼다. 

 

이전까지 경부선 철길 위를 지나 도림동과 문래동을 이어주는 육교의 문래동 방향 입구는 영등포 쪽방골목 방면으로 나있었다. 이곳은 과거부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출소자나 노숙인 등이 모여 살았던 이른바 '슬럼가'였다.

그래서 영등포구는 육교를 이용하는 보행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쪽방골목 반대방향으로 또 하나의 육교 입구를 만들었다.

매일 육교를 건너 출근을 하는 김모(28)씨는 "그전에는 남자인 나도 늦은 밤에는 쪽방골목에서 노숙하는 분들 때문에 육교 건너는 걸 꺼려했다"면서 "하지만 입구 방향이 바뀌면서 이제는 여성 주민들도 이전보다는 마음 놓고 육교를 건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 정문 옆 골목길도 과거에는 문 닫은 가게와 어두운 조명 때문에 저녁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최근 가로등이 LED 조명으로 바뀌면서 골목이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예전부터 이대 정문 골목이 어둡다는 민원이 자주 들어와서 올 3월 이곳의 가로등 조명을 LED로 모두 교체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강남 여성 살인사건'이 일어난 뒤 여성이 안전한 용산구를 만들기 위해 여성 범죄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순찰하는 '자전거 순찰대'를 조직했다.

김경원 용산경찰서장은 "직원들 자율적으로 비번을 활용해 경사로와 골목길을 중심으로 자전거 순찰을 하고 있다"며 "자전거를 이용해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시민과 더 가까워지고 다시 한 번 여성이 안전한 용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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