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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뿌리를 찾아서] 부정청탁금지법

[정책의 뿌리를 찾아서] 부정청탁금지법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15.03.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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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공직자윤리법 이후 수차례 손질…청렴한 공직사회 만들기 진일보

 


[서울시정일보 편집국]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청탁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 효과가 과연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자는 정치권과 전 국민의 기대감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이번 부정청탁금지법이 큰 관심을 모으는 것은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에 대해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분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국회에서도 시행 전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부정청탁방지법의 등장을 계기로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노력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공직사회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들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현행 공직자윤리법과 부패방지법이다. 이런 법률들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내용을 갖추게 된 것일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스스로 자정 ‘공직자윤리법’ vs 부정부패 척결 ‘부패방지법’

현재 우리나라에 공직 윤리와 관련되는 법률은 크게 공직자윤리법과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부패방지법) 두 가지로 나뉜다. 공직자윤리법은 1981년에 제정됐고, 부패방지법은 2001년에 제정됐다.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가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는 법이고, 부패방지법은 공직자와 관련 기관들의 부정부패 척결을 목표로 하지만, 두 법 모두 공직자의 청렴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우리 사회에 ‘공직자 윤리의 중요성’을 심어준 계기는 1960년 4·19 혁명이었다. 민주당 정부가 수립되면서 자유당 정부 시절 만연했던 부정부패를 타파하고, 부정 축재를 방지하기 위해 ‘공무원 재산 등록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던 것이 그 첫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다만 1964년 7월 정일권 국무총리의 지시로 3급 이상 공무원 및 4급 행정기관장 1만3003명의 재산 신고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전두환 정부 들어 공직자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직자 윤리를 확립하기 위해 1981년 12월 31일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됐다. 그 내용은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선물 신고제도, 퇴직자 취업제한제도에 한정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을 보완하고 집행해나가는 걸 정책 목표로 삼았다. 공직자 재산 등록 의무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재산등록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취업제한제도의 실효성 확보, 선물 신고제의 철저한 이행 및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윗물 맑기 운동’ 추진 그리고 ‘주식 백지신탁제도’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윗물 맑기 운동’을 통해 고위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해 맑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 이틀 만에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공개했고, 그 뒤 고위직 인사들의 재산 공개가 잇따랐다. 대통령과 고위직 인사들의 파격적인 행보는 ‘재산 공개 파동’이라 불리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통령의 자진 재산 공개 이후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과 개혁 실천을 위해 1993년 6월 공직자윤리법을 전면 개정했고, 4급 이상 공무원의 재산 등록 의무화를 규정해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재산 공개에 이어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해 1993년 8월 12일 ‘금융 실명 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는 전직 고관 부인들의 옷로비 사건 등으로 고위직 관계자들의 부정 청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옷로비 사건’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한 사건으로 국회 청문회와 특별검사제까지 도입되며 정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옷로비 사건 이후 국무조정실에서는 ‘부정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정부 제2기 반부패 정책이 시도됐다.

 

2001년 1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는데, 그 배경에는 바로 ‘이용호 게이트’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불거진 이용호 게이트 사건은 이용호 ㈜G&G 회장의 주가 조작 사건에 검찰 고위층과 핵심 권력기관 인사 상당수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검찰청에 특별감찰본부라는 새로운 기관이 등장했을 정도로 물의를 빚은 사건이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국정 개혁의 일환으로 재산 등록의 투명성을 높이고 민관 유착을 근절하기 위해 재산 공개자의 주식투자 명세 신고를 의무화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식 백지신탁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공직자가 재임기간 동안 주식을 공직과 관계없는 수탁기관에 맡기고 신탁재산의 운용에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이는 고위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 있는 주식 보유와 이해충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2005년 5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2006년에는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등과 맞물려 다시 한 번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도마에 올랐고, 결국 2006년 12월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 재산 공개자에 대한 재산 형성 과정 소명 요구, 고지 거부 사전허가제 등을 도입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년 박연차 게이트 등으로 2009년 2월 3일 공직자윤리법 개정이 이뤄졌다. ‘박연차 게이트’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 사이의 세종증권 매각 사건을 조사하던 중 박연차 회장이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해온 것이 밝혀진 비리 사건이다.

 

이후 박근혜정부 들어 2013년 원전 비리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으면서 그해 12월 30일 공직자의 퇴직 후 취업 제한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업무 관련성과 취업 제한기관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공직 윤리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직자윤리법이 또 한 차례 개정됐다.

 

한국법제연구원 이유봉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공직자윤리법은 제정 이후 다양한 부패 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경험을 통해 점점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 국제적인 입법 동향에 맞게 공직자의 이해 충돌과 음성적인 로비 행위를 방지할 수 있도록 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틀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과 함께 청렴 확산 대가성 없어도 형사처분

이렇듯 우리나라는 1981년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된 이래 수차례 개정을 반복하며 공직사회 쇄신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에는 역부족인 부분이 있었다. 특히 1994년 성수대교 참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부패 척결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게 됐다.

두 사건 모두 설계와 시공, 유지관리에 걸친 전방위적 부정이 원인이 돼 발생한 대형 참사였기 때문이다. 이에 1995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부패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됐다. 이를 계기로 기존의 공직자윤리법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의 ‘부패방지법’이 등장하게 됐다.

 

부패방지법은 1996년 시민단체의 입법 청원 이후,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에서 법안을 처음 제출했다. 그리고 법 제정 논의 5년 만인 2001년 6월 28일 국회를 통과했고, 2002년 초 시행됐다.

부패방지법은 대통령 직속의 부패방지위원회 설치 및 내부 고발자 보호, 국민감사 청구제도 도입, 신고보상금 지급, 비위 면직자에 대한 취업 제한 등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해 2002년 1월 대통령 직속의 부패 방지 총괄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했다. 부패방지위원회는 공직자 및 공공기관과 관련된 부패 행위에 대한 신고를 접수해 조사가 필요할 경우 수사기관이나 감사원 등 조사기관에 이첩하고, 조사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재조사 요구권을 행사했다. 부패방지위원회는 2005년 7월 국가청렴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했고, 2008년 2월 29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와 통합되어 ‘국민권익위원회’로 새롭게 거듭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1년 6월 14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 방안’을 보고하고 관련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는 2010년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을 계기로 공직자의 구조적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강하게 일어난 데 따른 것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은 여러 차례 술 접대를 받은 검사들에 대해 대가성 접대임을 입증하지 못해 결국 처벌을 못 하고 징계로 그친 사건이다.

 

이에 따라 2012년 8월 22일 ‘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의 입법을 예고했고, 2013년 7월 29일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와 관련해서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분한다는 정부 조정안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보류가 계속됐다. 국회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동면하던 법안을 깨운 것은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었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세월호 침몰의 배후에는 해운사의 탐욕,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과 관련 부처의 미숙한 대처 등이 있었고, 결국 최악의 인재(人災) 사고로 기록됐다. 더불어 이런 부실 대처 이면에 민관 유착이 있었다는 문제까지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민관 유착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며 “이런 민관 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제출한 ‘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되길 바란다”고 촉구하면서 법안처리의 물꼬를 텄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법안은 같은 해 5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의에 들어갔고, 그 뒤 여야가 모두 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 법안은 2015년 1월 8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수정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재석의원 247명 중 찬성 226명, 반대 4명, 기권 17명이었다.

 

부정청탁금지법은 아직 추가 개정 논의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부패를 막고 사회의 투명성을 끌어올려 한국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법안으로 국민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위클리공감/도움말: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참고자료:‘공직윤리제도 개선을 위한 법제 분석’(한국법제연구원, 이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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