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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우리 옛그림 감상법- 혜원 신윤복의 <月下情人> 읽기”

“왕초보의 우리 옛그림 감상법- 혜원 신윤복의 <月下情人> 읽기”

  • 기자명 정은경
  • 입력 2014.12.27 12:36
  • 수정 201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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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정은경 논설위원] “왕초보의 우리 옛그림 감상법- 혜원 신윤복의 <月下情人> 읽기”

 

들어가는 글

 

갤러리스트인 내가 만나는 관객분들의 대다수는 그림을 모르기 때문에 그림을 보러오기도, 사기도 쉽지 않다고 푸념하신다.

그림을 보는 공부(미술사학와 미학)를 반드시 해야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셨으면 좋겠다.

미술작품도 문학작품처럼 보는 사람에 의해서 얼마든지 새롭고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시처럼 그림도 자유롭게 감상하면 된다. 그러나 학구적으로 접근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본적인 감상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1단계: 1차적 정보(작가명, 제목, 크기, 재료, 제작년도, 소장처)를 파악하라

먼저 객관적인 눈으로 작품을 들여다보자.

 

전시장의 그림을 보면 항상 옆에 캡션이 붙어있다. 이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작가는 혜원 신윤복이며 제목은 <月下情人월하정인> 이고 28.2cm x 35.6cm, 종이에 채색, 제작년도는 1793년,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이다.대다수의 혜원의 그림들과 같이 이 작품도 원래는 미상이었다. 그런데 최근 과학적으로 연대에 대한 추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1793년(정조17년)이라는 딱 맞아떨어지는 연도는 크게 의미가 없고 정조 때 그림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정조 연간은 조선의 르네상스(인문주의의 팽배)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진경산수’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시험에 많이 나왔던 이름이다. ‘실사구시’도 생각나는가? 유교로 억눌렸던 사회분위기가 인문주의적 에너지에 의해 폭발하는 시기라고 느끼라. 그래서 “춘향전”을 비롯한 판소리들이 나오고 신윤복의 이런 에로틱한 그림이 허용되는 사회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랏님은 이런 백성들의 에로틱한 에너지를 누르려고 갖은 방법으로 규제를 하셨다.

 

예를들면 가체금지, 기생집 출입자중, 청화백자를 비롯한 수입품 강력규제 등이 있었다.한국 화가들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라고 한다.

단원은 모든 장르에 능했던 조선조 최고의 천재화가이며 혜원은 조선조 최고의 풍속화가이자 인물화가이다.



조선시대에는 두 종류의 화가들이 존재했다. 정부소속 기관인 도화서에서 일했던 직업화가들인 화원과 취미삼아 그렸던 사대부 양반들인 문인화가가 있었다.

 

장안에서 그림 좀 그린다는 사람들은 시험을 봐서 어렵게 도화서에 들어갔는데 신원이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중인계급이었다. 단원과 혜원도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었고 단원이 혜원의 스승이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단원은 어진화사이기도 했고 벼슬을 했던 기록도 전하는데 비해 혜원에 대한 언급은 매우 미미하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에게 혜원의 그림은 매우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왜 그럴까? 누가 봐도 어여쁜 여인들이 등장하며 관음증적인 에로틱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니 그렇다. 즉 그림의 주제와 형식이라는 두 가지 측면 모두 대중적인 요구를 만족시켜주니 그렇다. 서양에 라파엘이 성모이미지로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의 전형적인 미인상을 그려냈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혜원이 그려낸 우미한 동양 미인상이 존재한다. 혜원의 미인도는 춘화(포르노그라피)에 가까운 야한 그림이 많은데 이 그림은 혜원 그림 중에서 가장 얌전한 쪽에 속한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나 영화 “미인도”가 있기 때문에 화풍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혜원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절제된 선이 그려내는 에로티시즘’이라고 할 수 있다.

 

2단계: 작품 속 漢詩의 의미와 그림과의 관계 파악하기

 

화면은 정중앙으로 접혀져 있고 이 부분이 색깔이 좀 진하다. 국보 135호 <<혜원풍속화첩>>이라는 화첩에 있는 그림인데 그림이 양쪽으로 나뉘어 접혀서 그렇다. 화면 왼쪽엔 집이 한 채가 있고 오른쪽 담벽에 두 정인이 열린 공간속에 서 있다. 우리 눈에 익숙한 서양화와 비교해 볼 때 원근도 무시되어 있고 상당히 평면적인 화면이다. 왼쪽 담벼락에 혜원은 이렇게 썼다. “月沈沈夜三更 월침침야삼경 兩人心事兩人知 양인심사양인지”



해석하면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이 안다" 가 된다.그럼 화가는 굳이 왜 이 시를 이렇게도 잘 보이는 곳에다 떡 하니 쓴 것일까? 그만큼 화가가 뭔가 전달할 메시지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관객도 이 시의 의미에 집중해야 된다.

 

이 시는 김명원(1534-1602)의 칠언절구 한시인 “창외삼경세우시 양인심사양인지 환정미흡천장효 경파라삼문후기” 중에서 “양인심사양지”를 따와서 앞에다 “월침침야삼경”을 혜원이 지어 붙인 것이다.

 

글과 그림으로 미루어 보아 이 그림이 두 남녀의 달빛 데이트라고 이해하면 된다. 때는 삼경(밤 11시-새벽 1시)이고 두 남녀의 의복을 미루어 보아 여인은 어염집 여인 즉, 안방마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정네는 선비인 듯 보인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황진이”의 이미지를 기억한다면 이 여인의 복장으로 미루어 기생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옆의 남자는 한량쯤 되겠다.

 

선초부터 통행금지가 있었다. 그래서 이 두 남녀가 이렇게 동구 밖으로까지 나와서 밀회를 나누고 있는 중일 것이다.이들의 발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보면 여인은 남자를 향하고 있고 남자는 열린 공간 속으로 틀고 있어서 이 두 사람은 곧 화면 오른쪽으로 걸어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달은 초승달인데 너무 낮게 떠있어서 금방이라도 수풀사이로 떨어질 것 같이 보인다. 마치 이 두 정인들의 다음 장면을 암시라도 하듯이 말이다. 여기까지가 이 그림의 내러티브이다.

 

3단계: 화가의 마음으로 작품읽기

 

이제 화가의 마음으로 이 그림을 바라보자. 여러분같으면 이 화제(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때, 달의 모양을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만월? 상현이나 하현? 초승달?수태를 소망하는 아낙네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면 화가는 만월을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혜원은 매우 에로틱한 분위기를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혜원은 초승달을 선택했다. 왜 그럴까? 초승달의 모양새는 여인의 눈썹을 연상시키는 모티브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생식기와 닮아있어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올 수 있는 이중적인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혜원은 달빛아래 두 정인의 데이트를 은근히 에로릭한 모드로 만들어 놓는데 성공하였다.

 

4단계: 내 마음대로 상상해서 그림을 완성하기 4단계는 1-3단계를 굳이 거치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니, 사실상 4단계-1단계-2단계-3단계를 거쳐 다시 4단계를 완성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감상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림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들 앞에서 유식해 보이는 데는 좋을지 몰라도 작품을 날것으로 보고 자유롭게 감상하는 데는 방해를 받게 된다.

 

우리의 큐레이터나 갤러리스트, 또 작가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그림을 날것으로 보는 능력이다. 누가 써놓은 글에 의지해서 그림을 보려고 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그러니 초야에 묻힌 무명화가들의 그림은 거들떠도 안 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고르는 안목은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나오는 글

 

필자가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시절, 전 문화재청장님이신 유홍준 교수님한테 조선회화사라는 과목을 수강했는데 혜원의 미인도들을 설명하시면서 치맛자락에 주목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그분 표현을 빌리자면 혜원의 여성 이미지들은 “미친년 널뛰듯이 치마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착 감겨 멈춰있다.”

 

그래서 절제된 선의 미학으로 혜원의 그림을 평가하는 것이다. 에로틱하나 전혀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잡아주니 그렇다.

예술과 외설은 결국 한끗 차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명작이란 이 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작품이다. 버선코, 옷주름, 인물들의 윤곽선 등을 따라가 보라. 혜원의 붓끝에서 실타래처럼 풀어나가는 아름다운 선의 향연들을 말이다. 정말 기가 막힌 그림 아닌가! 이렇듯 아름다운 우리 옛그림을 계속 외면하고 싶은가?  

*작품 캡션-혜원 신윤복 <月下情人> 28.2cm x 35.6cm, 종이에 채색, 1793년,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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