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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이름으로 병원 100개 기증이 꿈”

“한민족 이름으로 병원 100개 기증이 꿈”

  • 기자명 전송이 기자
  • 입력 2011.06.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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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평화의료재단 만든 조기성 전 대사

조기성 전 대사가 병원 건립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붉은 점은 이미 건립된 병원, 연두색 점은 건립 예정 병원이다.
38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조기성 전 대사는 퇴직 후 평화의료재단을 설립, 가난한 나라에 작은 병원을 지어 주는 일에 나섰다. 그가 지금까지 지은 병원은 모두 14개. 병원 이름에는 ‘한민족이 인류를 위해 세운 병원’이라는 의미에서 ‘한’이나 ‘코리아’를 붙인다.

1958년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을지로6가에 들어선 메디컬센터(지금의 국립의료원)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나라들의 지원으로 세워진 메디컬센터는 군대 막사식으로 지어진 단출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아직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 거리에서 메디컬센터는 하나의 경이였다. 메디컬센터 구내에 들어선 양식점 스칸디나비아클럽은 장안의 명소였다. 젊은이는 생각했다.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시설을 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다.”

젊은이의 이름은 조기성(曺基成),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3학년에 다니고 있던 대학생이었다. 이후 청년은 외교관이 됐다. 스페인어 전공자답게 그는 38년의 외교관 생활 대부분을 중남미에서 보냈다.

그가 젊은 날의 꿈을 되살린 것은 1988년 주(駐)과테말라 대사로 부임해서였다. 30여 년 전 한국을 연상케 하는 가난한 나라에서 근무하면서 조 대사는 우리 정부에 건의했다. 과테말라에 병원을 지어 주자고. 하지만 그의 제안은 메아리를 얻지 못했다.

4년 후 그는 주페루 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페루는 당시 좌익게릴라들과의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다시 병원 건립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번에는 그의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1993년, 페루의 시골 마을 카야오에 페루-한국의료센터가 설립됐다. 한국 정부가 해외에 건립한 최초의 병원이었다.

이듬해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방한(訪韓)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선물’을 하기 위한 예산이 내려왔다. 조 대사는 친구처럼 지내던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병원을 하나 더 짓자고. 정부에서 내려온 돈에 민간모금이 더해졌다. 이듬해 반정부게릴라 가족들의 집단거주지였던 코마스에 로드리게스-덕실의료센터가 들어섰다.

과테말라에 병원 지을 때는 직접 벽돌 날라

이후 조 전 대사는 주아르헨티나 대사를 거쳐 1999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를 끝으로 퇴임했다.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조지타운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법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다. 하지만 주과테말라 대사 시절 병원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못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는 과테말라로 건너갔다. 페루에 병원을 지을 때는 우리 정부의 지원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몸으로 때웠다. 비용은 그가 개인적으로 마련했다. 과테말라 정부에서 내놓은 땅은 원시림 한가운데였다. 여기서 그는 6개월 동안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과 시멘트 갤 물을 날랐다. 과테말라 치멜코의 메르세데스-덕실의료센터는 이렇게 세워졌다. 조 전 대사의 회고다.

“2002년 병원이 문을 열던 날, 원주민 여성들이 울던 기억이 납니다. 무의촌 지역으로 임신부 중 30퍼센트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으니 안도감의 눈물이었지요.”

과테말라에서 돌아온 후 조기성 전 대사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아 평화의료재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조 전 대사가 설립한 병원은 라틴아메리카에 4개, 아시아에 5개, 아프리카에 5개 등 모두 14개다. 페루에 지은 두 개의 병원을 제외한 12개는 그가 개인돈으로, 혹은 후원금을 모아 지은 것이다. 가장 최근에 세운 병원은 지난 4월 준공된 아프리카 가나 반도-한의료센터다. 오는 7월에는 부룬디 부줌부라에 부룬디-한의료센터가 세워질 예정이다.

“병원 이름을 지을 때에는 병원이 세워지는 나라나 지역 이름 뒤에 ‘한’을 붙입니다. 현지 언어로 ‘한’을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병원 이름에 ‘코리아’를 붙이죠. ‘한민족이 인류를 위해 세운 병원’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한달 후원금 1만원이면 1년에 벽돌 4백장 구입

평화의료재단은 병원 설립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우리나라에 메디컬센터를 세울 때 사용했던 방법을 원용하고 있다.
현지 정부는 3천제곱미터의 땅을 제공하고 전기·수도를 연결시켜 주며 병원 담장을 설치해 줘야 한다. 그러면 평화의료재단에서는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해 병실 12개짜리 병원이나 병실 20개짜리 병원을 지어 주고 수술대 등 12가지 기본 의료장비와 책상·약품보관용 냉장고 등 집기류를 제공해 준다. 병원 하나를 짓고 의료기기와 집기까지 비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만2천 달러 정도. 의사·간호사·고용원들을 확보하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현지 정부의 책임이다.
지금까지 평화의료재단은 10억원 가량을 모금했다. 정회원 회비는 월 1만원이다.

“돈 1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아세요? 그 돈이면 벽돌 30장을 살 수 있습니다. 1년이면 4백장 가까운 벽돌을 살 수 있어요.”

병동(9.9제곱미터, 병실 3개) 1개를 지을 돈을 희사하는 회원들도 있다. 1개 동 이상을 건립한 회원만 20명이 넘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19개 동, 정철도 삼부토건 전무는 6개 동, 최원철 스페인교민회장은 5개 동을 건립했다.
파라과이와 필리핀에 병원을 지을 때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도움을 줬고, 동티모르와 스와질란드에 병원을 지을 때에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의료기기 구입을 지원해 줬다. 유한양행 등 제약회사, 제약협회 등에서는 의약품을 기증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태극제약에서 2억원어치의 약품을 기증했다.
가족들도 동참하고 있다. 조 전 대사의 부인은 친구들과 자원봉사를 하고, 아들은 병원 7개 동을 지을 돈을 내놓았다.

조기성 전 대사는 “후원금이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마포동 한신빌딩에 있는 사무실은 지인들이 돈을 모아 차려 준 것이다. 용지는 이면지를 사용하고, 봉투도 한 번 썼던 것에 종이를 붙여 다시 사용하고 있다.

조 전 대사의 목표는 세계 곳곳에 1백개의 병원을 짓는 것이다.

“외국에 의사를 파견하거나 의약품을 지원해 주는 재단은 많이 있어도, 가난한 나라에 병원을 지어 주는 재단은 우리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업은 저 개인적으로는 젊은 날의 꿈을 실천하는 것이지만, 우리 민족과 나라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입니다. 우리가 가진 경제력을 인류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태는 마음으로 많은 분이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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