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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칼럼] 과거의 법치주의자 한비자와 현대의 법치주의자 한동훈을 보며

[섬진강 칼럼] 과거의 법치주의자 한비자와 현대의 법치주의자 한동훈을 보며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4.01.0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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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이 가는 길이 국민과 함께하는 길이기를 바란다.
한동훈이 가는 길이 국민과 함께하는 길이기를 바란다.

[서울시정일보]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문구를 붉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새겨 비대위 회의실 배경으로 걸어놓은 비대위원장 한동훈의 사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법치주의자 한비자(韓非子,BC 280~BC 233년)가 말한 흙더미다.

2,257년 전 전국시대 법치(法治)를 완성하여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 국가로 만들게 하였던 법치주의자 한비자와 2,257년 후 문명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난국에 빠진 정치판을 법치로 바로 세워 국가와 국민을 새롭게 하려는 큰 뜻을 가지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법치주의자 한동훈의 차이가 무엇이고, 그 성공의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데, 전국시대의 법치주의자 한비자보다, 지금의 법치주의자 한동훈이 더 외롭고 어렵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법치주의를 완성한 철학자 한비자(韓非子)가 “태산에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더미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사로이는 개인과 기업이 망하고, 정치적으로는 왕조가 무너지고 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을 직시한 것으로, 세상을 사는 처세술임과 동시에 경영의 비법이고 국정의 통치술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정작 한비자 자신은 이 작은 흙더미에 넘어져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47세의 나이에 자신이 만든 작은 흙더미에 넘어져서 죽었는데, 정확히는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고, 자살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누구나 넘어진다. 사람이 작은 돌부리나 흙더미에 걸려 넘어지는 흔히 있는 일을, 한비자는 세상을 사는 처세와 통치술로 설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한비자가 말한 작은 흙더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며, 사람이 흙더미에 넘어지는 것이, 사람의 탓이냐, 흙더미 탓이냐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법철학을 완성하여, 진시황이 대륙을 하나의 통일 국가로 만들게 한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천재이며 철학가인 한비자가 자신이 만든 작은 흙더미에 넘어져서 47세에 생을 마감하는 자살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누구든 작은 흙더미에 넘어지는 것은, 흙더미의 탓이 아니고 사람이 부주의한 탓임에도, 한비자는 길에 흔하게 널려 있는 작은 돌부리나 흙더미 탓으로, 즉 남 탓으로 보았다는 것, 이것이 한비자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다. 한비자의 어리석음이고 자신이 세운 법치의 맹점을 보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일상에서 보면, 사람이 작은 흙더미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그렇다고 죽지는 않는다. 대부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가던 길을 간다. 혹 다쳤다 하여도 피부가 조금 찢어지는 가벼운 열상(裂傷)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자기의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경우 대부분 심각한 사고가 된다. (대다수가 자기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고다.)

특히 노약자들은 치명적인 부상과 사망으로 이어지는데, 한비자는 이것을 간과하고 보지 못했기에, 자기가 만든 흙더미에 넘어져서 자살을 당한 것이다.

동문수학하던 친한 벗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자살을 강요당한 한비자는 자기가 판 구덩이에 자기가 빠진 것으로, 자기가 세운 법치에 자기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한비자는 자신이 자랑하던 세 치 혀끝에 걸려 그 세 치 혀끝에서 넘어져 자살을 당해 죽었으니, 자기가 만든 흙더미에 자기가 넘어져 죽은 것이다.

말인즉슨 폭탄을 만든 사람은 언제든 그 폭탄에 자신이 죽을 수 있음을 알고 철저히 대비하는데, 한비자는 자신이 세운 법치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시대와 사람은 달라도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법치를 확립했던 과거의 법치주의자 한비자와 시대와 국민이 무너진 나라의 법치를 바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열망에 부응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자 한동훈이 외치는 법치는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은, 한비자는 절대군주인 진시황을 향하여 법치의 실현을 주장하여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 국가로 만들게 하였지만, 한동훈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 지금 바로 망설이지 말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머잖아 곧 한동훈이 넘어지는 흙더미가 될 것이다.)

한동훈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 한동훈이 시대와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여 지금의 난제를 극복하고 법치를 바로 하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로 거듭나는 방법 비책을 조언한다면, 죽은 한비자가 역설한 강력한 법치의 시행뿐이라는 것이다.

한비자가 역설한 강력한 법치주의는 부국강병을 위한 것이고, 부국강병은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필수 조건으로 제시하는 1, 백성과 2, 조정의 신하들 그리고 3, 군주의 일가친척들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법치가 답이다.

옛날과 지금을 비유하면,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먹고사는 일들이 다르고 관습과 문화도 다르므로, 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 또한 달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의 법치가 무너지는 것은, 조정의 신하들과 군주의 일가친척들이 벌이는 권력형 부정부패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수많은 역사의 기록들이 확인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의 법치를 바로 하는 일 또한, 조정의 신하들과 군주의 일가친척들이 벌이는 권력형 부정부패를 법으로 강력히 응징하여 벌하는 것이, 법치를 바로 하는 시작이고 완성이므로, 법치를 바로 하여 나라를 일신하는 방법으로는 이것만큼 효과가 강력하고 빠른 것은 세상에 없다. 

부정하고 부패한 패거리 정치의 폐단으로,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돼버린 무너진 나라의 법치를 바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과 시대의 절박한 요구를 달성하면서, 한동훈이 사는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정해져 있고 한동훈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한동훈의 의지와 용기가 문제일 뿐이다.

직설로 이야기하면, 한동훈이 지금 절박한 난제들을 풀고 자신이 주장하는 법치주의를 바로 하여 민심을 얻고 국가와 국민을 발전시키는 정치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드러난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 부인 김건희가 저지른 부정부패인 명품백 수수 범죄를 어설프고 어쭙잖은 말장난으로 얼버무리며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거듭 21세기 법치주의자 한동훈이 자신이 주장하는 법치를 바로 세우는 방법론에서 또는 정치적 난제를 해소하고 민심을 얻는 방법으로, 효과가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것은, 쌍특검과 분리해서 (거부권을 행사하고) 드러난 김건희의 금품수수를 법대로 하는 것뿐인데, 가장 먼저 명쾌하고 시원하게 결론을 지었어야 할 일을, 해를 넘기며 뭉개고 있는 한동훈이 안타깝기만 하다.

거두절미하고, 한동훈이 들고나온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말이, 체면과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김건희와 함께하는 것이 아닌, 한동훈 자신이기를 바라고, 한동훈이 가는 길이 국민과 함께하는 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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