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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마르셀 에메의 '생존시간카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나

[문학칼럼] 마르셀 에메의 '생존시간카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나

  • 기자명 서울시정일보
  • 입력 2023.05.23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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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시간 카드를 부여받는다면, 얼마의 시간을 받을 수 있을까
원시 시대의 공룡처럼 치열한 생존의 싸움 끝에 강자만 살아남아

민병식 칼럼니스트
민병식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민병식 논설위원] 마르셀 에메(1902~1967)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단편 소설의 거장으로 1926년 장편소설 '브륄부아'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29년 '허기진 자들을 위한 식탁'으로 르노드 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왕복', '이름 없는 거리', '초록빛 암말, '아름다운 이미지', '트라블랭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뱀' 등이 있다.

작품의 배경은 1940년대의 프랑스이다. 이때의 프랑스는 1929년부터 대공황으로 경제적으로도 불황의 늪에 시달리고,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 후 독일에게 패한 상태였다. 이러한 경제적 피폐함과 전쟁의 후유증 하에서 나라는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은 굶주리고 궁핍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의 인권에 대한 요구는 꺼낼 엄두도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작가인 '쥘 플래그몽'은 새로운 배급제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는데 이는 유용성을 따져서 쓸모없는 사람의 생존시간을 줄여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에 맞게 살 수 있는 일수를 정해 살게 하는 것인데 완전히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필요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부류로 노인, 퇴직한 사람, 실업자 등 비생산적인 소비자인데 여기에 작가라는 직업이 포함된다. 이를테면 7일이라는 시간을 부여받은 사람은 한 달에 7일간의 생명을 부여받고 7일을 살면 그날 자정부터 죽은 상태와 비슷한 그러나 실제 죽는 것은 아닌 비존재의 시간을 가졌다가 그다음 달 1일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는 사람의 육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음 달 1일에 죽은 장소로 되돌아와 살아나는 죽은 기간 동안의 시간은 전혀 알지 못한다.

플래그몽은 ‘완전 생존 자격 보유자’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고 ‘생존 시간 카드’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관청에 편지를 보내 24시간 연장을 허가받은 끝에 16일의 생존 기간을 확보한다. 예전보다 글도 열심히 쓰고 암시장에서 하루 두 끼씩 푸짐한 식사를 하고 쾌락 추구에도 열을 올린다. 정부에서는 생존시간 카드를 받은 사람들이 비존재가 되면 암시장이 불황이 되고 암거래 물가도 내려가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암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부자는 더 살기 위해 돈을 내고 시간을 사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족부양 등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파는 또 다른 암시장이 형성된다. 바로 여기에서 불평등이 일어나는데 생존카드 배급표가 다 떨어지면 비존재의 시간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단과 비존재의 시간을 갖지 않고도 완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집단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자는 6월 30일 사이에서 7월 1일 사이에 1967일의 의 생존 시간카드를 산다. 어떤 여배우는 팬들에게 배급표를 22장을 받아 한 달에 36일을 살게 되는 등 생존시간 카드를 사서 삶을 연장하는 사람들은 보통 한 달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살 수 있게도 되고 날이 갈수록 생존 배급카드의 가격이 폭등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난다. 결국 이 국가 정책은 실패하고 3월 1일 시작된 정책은 7월 6일에 폐지된다.

작품의 내용대로 생존시간 카드를 부여받는다면 나는 얼마의 시간을 받을 수 있을까. 돈으로 생명의 연장과도 같은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마르셀 에메의 아이디어가 기발하기도 하지만 생산성이 부족하거나 늘고 병든 사람, 힘없는 약자는 그냥 일찍 죽어도 된다는 말과 별반 다름없다는 데서 능력없고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죽으라는 것과 같은 비인간적인 모습을 본다. 결국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 속에서 뒤처지지 않고 당장 살아남는 언젠가 그 능력이 떨어지면 도태되어 죽음에 이르는 부속품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인공지능의 파고에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즈음, 인간마저도 모든 것을 쓸모와 유용성, 이용가치로만 생각하는 세상을 당연시 한다면 결국 우리는 세대와 남녀의 갈등, 빈부의 격차, 강자와 약자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상대를 잡아먹어야 내가 살아남는 원시 시대의 공룡처럼 결국은 치열한 생존의 싸움 끝에 강자만 살아남다가 결국은 공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연대와 협력 없이 평생 늙지 않고 혼자 강한 힘으로 남아 존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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