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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칼럼] 세월의 보초(步哨)

[김한규칼럼] 세월의 보초(步哨)

  • 기자명 김한규 기자
  • 입력 2023.09.03 23:24
  • 수정 2023.11.0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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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지켜나가는 초병이 있는 한 적군은 침범을 못 할 것이다.

김한규 칼럼니스트
김한규 칼럼니스트

[서울시정일보 총괄국장/대기자] 지킬 것이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목장 주인은 양떼를 지켜야 하고, 임금은 백성을 지켜야 하고, 사장(社長)은 회사를 지켜야 하고, 가장(家長)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 지휘관은 부하를 지켜야 한다. 그 지키는 말단의 사람을 파수꾼이라고도 하고 보초(步哨)라고도 한다. 주로 군대(軍隊)에서는 보초라 한다. 그 보초가 세월을 지킨다. 그래서 세월의 보초일까? ‘세월의 보초’라는 군가(軍歌)가 있다.

“그 누가 싸움을 좋아하련만, 불의 보고 피한다면 사내 아니다. 꽃다운 청춘을 나라에 바쳐, 이슬처럼 사라지는 원이 있으랴. 누구 하나 우리 마음 몰라주어도, 너와 나는 세월을 지켜가리라.”

이 군가를 부르노라면, 우직한 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추워도 춥다하지 않고, 더워도 덥다하지 않는다. 그게 군인이다. 군인은 변명을 하지 않는다. 장수는 명령을 번복하지 않는다. 말 한 마디에 모든 책임을 진다. 그 말이 옳던 그르던 간에......

최근에 해병대 1사단 채수근 상병의 익사 사고가 세간(世間)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누구의 잘 잘못은 간데 없고 항명(抗命)이니 수괴(首魁)를 운운하고 있다. 박정훈 대령이 수사를 원칙에 입각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단장을 포함하여 그 이하의 간부들 8명에게 잘못이 있다고 지적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휘계통을 통하여 장관에게까지 대면보고를 했다. 장관도 고생했다고 수사단장 박 대령을 격려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장관이 번복을 했다.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게 지휘계통이 아닌 참모계통으로 지시를 했다. 박 대령은 부정확한 지시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고 장관이 결재한 내용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박 대령은 항명(抗命)죄로 군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박 대령은 조사를 거부했다. 항명(抗命)이라는 죄에 수긍을 하지 않았다.

나는 박 대령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군인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장수가 또는 지휘관이 명령을 번복하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어쩌면 그것은 철칙과도 같다. 지휘관(자)이 명령을 바꾸면 부하들의 행동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 또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수의 명령은 비록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바꾸지 않는다. 바꿈으로써 더 큰 위계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령을 하달하기 전에는 심사숙고 해야하고 참모들의 판단을 기초로 지휘관이 의사결정을 하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하달하는 것이다. 일단 명령 된 것은 이행을 해야 한다. 지휘관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행동 때문에 ‘쏠까요 말까요’라는 말이 나왔고, ‘선조치 후보고’라는 말이 나온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그동안 군대 내에서 사건 사고 처리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군내 성폭력 범죄, 입대 전 범죄, 군인 등의 사망 사건이 된 범죄에 대해서는 2022년 7월 1일부터 수사와 재판이 민간으로 이관됐다. 따라서 이번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도 마찬가지로 민간으로 이첩되어야 했다. 박 대령은 이 법에 의해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는데, 최초 내용을 수정해서 이첩하라는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박 대령이 명령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 수정사항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박 대령의 판단이었으나, 대부분의 군인들(현역, 예비역 포함)은 “박 대령이 잘못했다.”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이다”라고 말한다. 백 번을 번복을 하고 수정을 해도 괜찮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군대 문화이고 정서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한마디로 군대는 병들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울뿐이다. 정의는 어디로 가고 불의와 타협하는 일에 익숙해졌는가? 국방부장관도 판단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군대는 당나라 군대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번복하고 수정할 것인가?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월의 보초’는 덤덤하게 나라를 지키고 부대를 지킬뿐이다. 장수가 말을 바꾸든, 지휘관이 말을 번복하든 초병(哨兵)은 누구 하나 마음 알아 주지 않아도 ‘세월의 보초’ 군가의 가사처럼 세월과 함께 굳건히 지켜 갈 것이다. 세월을 지켜나가는 초병이 있는 한 적군은 침범을 못 할 것이다. 박 대령과 같은 군인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군대는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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