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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나 역시 봄날이 재미가 없다

[섬진강칼럼] 나 역시 봄날이 재미가 없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3.3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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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며 웃는다 하면서 하는 말이 “잘 생긴 지 서방 얼굴 쳐다보며 사느라고 밥을 태우며 살았는데, 봄꽃들이 눈에 보였을 리가 없지.” 하면서 놀려대니, 그건 그랬다고 자랑처럼 시인하며 웃는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섬진강 강변 어느 마을이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들은 누구의 이야긴지 다 아는 인근 강변마을 사람들과 오고간 이야기라, 미주알고주알 밝힐 수는 없지만, 낮에 운동 겸 꽃구경을 삼아 강변길을 걷다가, 벚꽃들이 흐드러진 강변 정자에서 잠시 앉아 쉬면서 있었던 일이다.

오후 봄바람에 밭일로 지친 고단한 몸을 쉬는 탓에, 시골에서 흔히 보는 편한 옷차림이지만, 세월이 좋은 탓인지 그다지 늙어 보이지 않는 초로의 아주머니 둘이 앉아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눈앞에 보이는 강변에 만발한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혼잣말로, 세상에 허망한 것이 봄꽃들이라며, 한숨을 짓는다.

그래서 내가 짐짓 농을 삼아 물었다. 처음 젊어서 이 강으로 시집와서 본 봄날의 꽃들이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봄날의 꽃들이나, 다 같은 봄날이고 꽃들인데, 젊은 날에 보던 봄꽃들은 어쨌느냐고 물으니, “몰라 기억이 없어” 그러면서 붉어진 얼굴로 배시시 웃는다.

내 말은 시집와서 새댁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서방님과 보던 젊은 날의 봄꽃들은 좋았느냐고 묻는 것인데, 모르긴 뭘 모른다는 거냐며, 그 봄날이 설레지도 않았느냐고 묻는데, 얼굴은 왜 빨개지느냐고 짓궂게 되물었더니, 연신 기억이 없다면서 웃어댄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저놈의 각시가 늙어도 속은 있는지, 얼굴 빨개지며 웃는다 하면서 하는 말이 “잘 생긴 지 서방 얼굴 쳐다보며 사느라고 밥을 태우며 살았는데, 봄꽃들이 눈에 보였을 리가 없지.” 하면서 놀려대니, 그건 그랬다고 자랑처럼 시인하며 웃는다.

“젊은 날의 봄은 잘 생긴 서방님 얼굴만 쳐다보며 사느라고 잊고 살았으니 모른다하고, 그럼 이 아름다운 봄날의 꽃들이 허망하다는 것은, 지금 영감님이 산으로 가버리고 옆에 없다는 뜻인데, 그렇습니까?” 하고 물으니, 깜짝 놀라는 척 주름으로 처진 눈을 치켜뜨며, 오래전에 산으로 먼저 가버렸다며 한숨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이 봄날의 꽃들이 허망한 것이 아니고, 영감님이 옆에 없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허망한 것이다.”라고 했더니, 날 빤히 쳐다보며 학교에 사는 양반이 용하다고 하더니, 정말 용하다며 웃는다.

두 초로의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새삼 다시 느낀 것은, 근년에 보기 드문 풍경으로 만개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섬진강 봄날의 꽃들이 허망한 것은, 코로나19라는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의 창궐로, 자고나면 생목숨들이 죽어나가는 세상의 두려움이 아니고, 정작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그리워도 만날 수가 없는, 사랑하는 이가 옆에 없다는 가슴을 가진 사람만이 느끼는, 절절한 외로움이고 쓸쓸함이라는 생각에,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던, 수많은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는 아름다운 강변의 풍경들을 스마트폰에 담아서 멀리 있는 보고 싶은 이에게 보내며 돌아오는데, 카톡으로 돌아오는 답신은 꽃들이 예쁘다는 것과 사진을 참 잘 찍었다는 것뿐, 듣고 싶은 한마디가 없으니, 나 역시 봄날이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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