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은 건강식으로 인기를 끄는 이 나물이 조선시대에는 가난한 백성이 끼니를 때우는 구황식품이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가운데 가장 태평성대였다는 세종 때인 1444년 4월 23일 자 세종실록을 보면 병조 판서 정연(鄭淵)이 임금께 보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곧 청안(淸安, 현재 충북 괴산 부근) 지방에 갔을 때 남녀 30여 명이 모두 나물을 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나물만 먹은 얼굴빛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나물을 캐는 백성이 들판을 덮고 있었다며 백성들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내용이지요.
“다북쑥을 캐네 / 다북쑥을 캐네 /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 양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를 넘어가네 / 푸른 치마 붉은 머리 허리 굽혀 쑥을 캐네 / 다북쑥을 캐어 무얼 하나 눈물만 쏟아지네” 다산 정약용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쑥을 캐어 죽을 쑤어 먹는 백성들을 보고 쓴 <다북쑥>이란 시입니다. 죽도 곡식과 함께 쑤어야 죽다운 맛이 나는데 쑥만으로 죽을 쑤었으니 오죽했을까요? 요즈음 우리들이 먹는 나물은 갖은 양념으로 밥맛을 돋구는 음식이니 예전 구황식물로 먹던 나물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