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스님과 함께 떠난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1)
<가난하게 맑은 여행, 그 속에 나를 보다.>
[서울시정일보=백암 박용신의 여행문학] 지금껏, 나는 나의 선각(先覺)의 연인(戀人)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다. 가느다란 하얀 손마디로 흙벽 칠판에 "가갸거겨"를 백묵으로 눌러 쓰시던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그랬고, 중학교 땐 노란 펜팔 싸인지를 수줍게 건네 주던 눈이 큰 소녀가 그랬다. 성장하며 사귀게 된 수필가 전혜린, 싸늘하게 거리에 버려져 죽어간 '나혜석'과 부안 땅에 잠든 '이매창', 그리고 바닷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간 이옥봉 시인이 그랬다. 특히, 감성이 예민한 입시생 시절, 단과학원에서 만난 순백 칼라 '모디스티 피스'가 잘 어울리던 수녀님은 분명, 아침,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 한 방울 먹고 사는 줄 알았다.
나는 지금 맑은 이슬 여행을 떠나고 있다. 지난 9월4일 7시30분,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로 떠나는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비구니(여스님) '영조'스님과 떠나는 여행길, 가슴 한 껸, 조심스럽게 알 수 없는 설레임이 자리한다. 합장 반 배로 마음을 다독이고 옷매무새를 추스른다. 스님의 가난한 맑음이 가득한 미소, 저 분도 이른 아침, 한끼 식사로 푸른 댓잎에 이슬 한 방울 들고 오셨겠다.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
아침 6시, 집을 나서 자랑스런 우리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전 10시15분 베트남 항공, 비행기로 13시 25분 호치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16시 20분, 비행기를 갈아 타고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17시30분 도착, 입국수속을 마치고 5성급 미라클 호텔에 여장을 푼다. 꼬박 하루를 비행기 안에서 보냈다.
<앙코르 와트, 거대한 하나의 돌>
9월5일, 호텔에서 조식을 간단히 하고 7시30분 '앙코르 와트'로 버스로 이동, 티켓팅(37$)을 하고 유적지로 향한다. 사원이 워낙 넓은 우림 분지에 조성되어 있어 솔 찮은 시간이 소요된다. 프랑스 박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가 1860년 초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캄보디아 밀림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는 앙코르 와트 사원, '앙코르 와트'라는 말은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며, 발견 당시 1천여명의 승려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사원은 동서 1,5km, 남북 1,3km의 직사각형 '□' 구조로 폭이 190m의 거대한 물길(해자라고 함) 못에 둘러 쌓여 있다. 겹, 겹, 하나 하나 정교하게 다듬어 쌓여진 돌탑 성곽들이 세월의 덧없는 시간 속에서 이끼와 그을음의 먹물 가사를 입고 끈끈하게 엉겨 거대한 하나의 돌로 굳어가고 있었다. 이 불가사의 건축물은 캄보디아가 '크메르 왕국' 전성 시절, 12~13세기 경, 왕, 수리아바르만 2세가 흰두교 브람마, 시바, 비슈뉴, 3신 중 생명을 관장하는 비슈누 신에게 바친 것으로, 37년 동안 약 2만5천명의 인력을 동원해 축조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다음에는 묘로 쓰여 왔다는 설.
정문에 속하는 서쪽 탑문을 지나면 제법 널은 일직선 돌길이 나오는데 이 길 끝에 주 사당, 왕궁이 있다. 누군가 사당은 3생(전생. 현생. 내생)을 거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겹겹 3겹으로 된 계단식 회랑, 미라미드 구조로 1층은 '미물계'를 상징하고, 2층은 '인간계'를 3층은 사각형 모퉁이에 4개의 보조탑이 서 있다. 중앙에는 '천상계'를 상징하는 65m의 중앙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으며, 제1회랑 벽면에는 4단 병풍식으로 융성했던 '크메르제국'의 신화와 역사가 세밀하고 정교하게 부조 되어 있었다.
부조에는 왕, 수리아바르만 2세가 코끼리를 타고 병사들 앞을 지나가는 장면과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을 표현한 장면도 있으며, 힌두교 서사시에 나오는 부족간의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역사기록이 부재한 캄보디아는 이 벽화가 역사교과서 같다고 자랑했다. 동서 남북 총 800m에 이르는 이 벽화를 둘러 보는데 만도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우리 일행을 인솔한 가이드 한국인 '남정만'은 이렇게 설명을 했다. 이 곳은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한 왕궁이라 했다. 3층 중앙탑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받드는 수미산(須彌山)을 나타내며, 일직선 조성된 돌길은 경건하게 마음을 가다듬어 왕궁에 이르라는 참배의 길이고, 주위를 에워싼 벽들은 히말라야산맥(우주의 벽)을, 연못 물길은 세계의 끝인 깊은 바다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는 수리아바르만 2세가 사후에라도 신(神)의 경지에 이르고자 했던 바램이 표출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사원 안 곳곳에는 비슈누에 관한 신화가 조각되어 있고, 간혹 회랑에 부처의 조각, 국왕들의 모습들과 코브라, 무희들의 모습들도 새겨져 있다.
높이 65m 경사도 70도나 되는 아찔하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 3층에 오르면 회랑과 정방형 모서리에는 4개의 탑이 서 있고, 신의 영역 수미산, 중앙탑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그 어떤 외세의 침략도 불허하는 천상의 왕궁, 고소 공포증으로 다리가 후들거려 아직도 안정이 안 되는데, 회랑 창문 밖으로 멀리 멀리 끝없는 평지 야자나무 밀림이 펼쳐져 들어온다. 군데 군데 군소, 피폐, 무너진 탑과 사원들도 시야에 들어오고.
<무너지고 있는 화려한 왕궁들>
사실, '앙코르' 제국을 이루고 있는 유적지를 하루에 다 둘러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곳에는 제일 규모가 큰 대표적 유적,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을 비롯, 그 안으로 바이욘사원, 피미아나카스사원, 옆으로 타푸롬사원, 코끼리테라스, 레프왕테라스 등이 엉켜 있는 형국으로 돌탑 조각, 무더기들이 거무디틱, 세월의 더께 속 모두 비슷비슷해서 아무리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해도 그게 그거 같아 처음 불가사의에 대한 감동이 무너지고 있었다.
<거대한 '앙코르 톰'과 사원들- 방치가 슬픈.>
앙코르와트 구경을 끝내고 툭툭이(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탈 것)를 타고 앙코르톰으로 간다. "앙코르 톰" 거대한 왕궁이라는 뜻의 유일한 불교 사원이랬다. 이 역시 '앙코르 와트'처럼 신(神)의 세계를 표방해 왕, 수리아바르만 2세의 후계자인 자야바르만 7세가 건설했다. 높이 8m, 한 변이 3km인 정방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폭 100m의 연못 물길(해자라고 함)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규모만 보면 '앙코르 와트'보다 몇 배, 훨씬 더 크다. 역사학자들 주변 사원에 규모 등을 볼 때, 아마도 100만 이상의 승려와 사람들이 살았다고 했다. 건축 당시 크메르 왕국의 전성기로 '자야바르만 7세'가 30년 동안 통치하며 '앙코르 톰'을 재건하고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었다고 한다.
"앙코르 톰" 중앙부에는 높이 43m의 바이욘사원(유일한 불교사원)이 있다. 바이욘사원에는 54기의 사면탑(四面塔)이 있는데, 사면이 부처 얼굴인 사면불안(四面佛顔) 관세음보살을 탑의 상부에 안치한, 세계에 유일 무일한 불교 건축의 유물이다. 스스로를 자신이 관세음보살이라 칭하며 사면불안을 만들었다는 자야바르만 7세,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부처의 얼굴은 서방정토(西方淨土), 아미타 세계를 상징하며, 바이욘사원은 왕의 권위가 온 세계에 미치며 세계의 중심임을 표출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앙코르 톰' 을 '얼굴의 숲'이라고 불렀다.
<타 프롬(Ta Prohm)사원>
가장 리얼하고 장관인 사원이다. "앙코르 톰" 동쪽에 있는 이 사원은 거대한 나무뿌리에 점령당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나무, 나무뿌리가 사원 돌 벽, 지붕을 타고 구부렁 뱀처럼 휘감겨 뻗어 가고 있어 공포감 마져 든다. 자연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하나, 이 사원 또한 자야바르만 7세가 폐비로 억울하게 죽어간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어머니의 극락왕생 발원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들어가 울었다는 "통곡의 방", 일명 보석의 방이라고도 하는데, 4,500개의 루비, 다이아몬드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도굴 당하고 보석이 박혀있던 구멍만 남아 있었다. 폐비 어머니의 저주로 나무가 사원을 점령하고 있다고 마을인들은 얘기했다.
이 '타푸롬' 사원은 안젤리나 졸리의 '툼레이더(2001)' 영화로 더 유명해 졌지만, 이 영화를 찍으며, 크메르 왕국 역사 매력에 빠진 '안젤리나 졸리'는 '매덕스'라는 현지 캄보디아인을 아들로 입양하게 되고 크메르 제국의 역사물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석조 건축술>
어떻게 그들은 이렇게 놀라운 석조 건축 사원들을 만들었을까? 물론 필자가 다녀온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이나 '쁘람바난 사원'에 비하면 그 규모나 축조기술이 그에 못 미치지 않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 평원 밀림지대에 어떻게 저 많은 돌들을 운반하고 깎고 다듬어 사원들을 축조 했을까? 한 동안 미스테리로 남았었으나, 최근 일본학자들이 항공 촬영 등을 통해 연구한 결과, 인근 쿨렌산 기슭에 50여개의 채석장이 발견되었고 여기서 채굴된 돌들을 운하를 통해 운반하여 깎고 다듬어 축조했다고 결론을 얘기했었다.
어쨌거나, 거기에도 하층 계급 범부(노예)들이 수만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물론, 그들은 절대한 종교의 힘으로 희생이 오히려 행복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1편 終>
캄보디아, 크메르 왕국의 화려한 건축 문화유산을 참 쉽게 둘러 보았다. 가이드를 따라 돌다 보면, 처음엔 감동을 하다가도 그게 그거 같아 규모를 가늠 하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세월 속 무너져 내리고 있는 석벽, 유적들, 물론 최근 일본 자금이 투입되어 복원, 보수 작업들이 곳곳 이루어 지고 있었지만, 일인 입장권이 37$(≒40,000원)이나 되는데, 그 수입 대부분을 베트남이 가져간다고 한다. 그 또한 전쟁에 진 약소국의 설움, 캄보디아의 발전이 더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캄보디아 '천상의 요정 압살라 춤'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저녁엔 대형식당에서 압살라 춤 공연을 관람했다.
<2편, 왓보사원의 기도와 킬링필드 왓트마이>
(서울시정일보 앙코르 와트 = 박용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