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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논설-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며, 어디로 갈것인가?

생명논설-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며, 어디로 갈것인가?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13.02.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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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황문권기자] 人生(인생)으로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의문점 중에 하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다.
어디서?
어디서?
어디서?
곰곰이 생각건대 필자는 태양에서 왔다는 결론이 나온다.

태양은 태양계 만물의 아버지이다. 그 수많은 변화 속에 태양계를 만들고 지구 어머니를 만들었다. 태양의 빛이 없다면 모든 생명은 죽는다.
최근 유튜브를 보면 외계생명체들이 태양과 활화산 속으로 왔다 나가면 장면들이 포착된다.
인간의 물리적 대상적 고정관념이 문제다.
자기들이 인식하는 만큼만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고정관념들이다.

영혼은 ‘영혼-욕구[Soul-desire]’ 또는 ‘영혼-의지[Soul-will]’에 의해 중심 잡혀있다. 씨앗 속에 들어 있는 욕구는, 빛을 분리시켜 신의 육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그 욕구를 표현해 내려는 ‘씨앗 속 의지력의 세기[will-power current in the seed]’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태양에서 온 나의 영혼은 수천 년 아니면 수만 년의 기다림 속에 나의 영혼은 아름다운 지구별을 보고 반해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한 창조의 우주에서 意志(의지) 의념으로 기다려 왔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 때가 무르익어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경험적 生死(생사)의 거듭 속에 오늘의 현실을 맞고 있다.
이는 수많은 臨死(임사) 체험에서도 확인이 된다.

다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다.
삶의 목표랄까?
그냥 왔다 가면 그만이지! 하면 너무나 무의미하다.
인간의 심장 박동은 우주의 심장박동과 연결되어 움직인다.
모든 우주의 생명은 우리! 즉 하나다.
이 하나에서 분리되어 우주는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다 인간은 창조의 에너지 가운데 ‘모든 힘의 근원[the Source of all power]’인 ‘마음-욕구[Mind-desire]’에 의해 중심을 잡고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
피닉스저널에는 삶의 차원을 8단계로 구분하였다.
I. 기본적인 삶 II. 이성적인 삶 III. 총명한 삶 IV. 실제적인 삶 V. 창의적인 삶 VI. 영적인 삶 VII. 창조의 삶.
당신은 어느 단계에서 춤추고 있는가?

다음은 어디로 가는가? 이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여기에서 물론 죽는다. 라는 명제가 나온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왔다간 인류는 약 1070억 명이라는 학설이 있다.
죽은 이들은 어디에 있나?
그냥 사라지고 없나?
아니다!
아니다!
영혼은 존재한다. 영혼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나 가혹하다.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무정부 같은 사회다. 악인이 판을 치고 권력을 잡는다. 그리곤 양심위에 군림한다.
물론 죽은 다음에는 더 낮은 丑生(축생)의 생명계로 가겠지만.
이 우주의 생명의 바다는 수많은 차원 間(간)으로 형성되어있다.

그동안 인류는 여러 가지의 생명론을 말해왔다.
비유하기를 생명의 바다에서 한 컵의 바닷물이 陸地(육지)로 나오면 이는 生(생)이요 이 生(생)이 목숨을 다해 死(사)죽으면 다시 바닷물 속으로 간다. 한 컵의 바닷물은 그냥 생명의 바다에 한 몸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비유를 해보자.

般若心經(반야심경)의 한 구절이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물질적 현상이 그 본질인 공과 다르지 않고, 공 또한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적 현상이 곧 본질인 공이며, 공이 곧 물질적 현상이라. 감각작용, 지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도 다 공이로다.

햇볕이 내려 쬐는 어느 날 아침, 당신의 정원 담장 위에 물을 한 잔 올려놓아보자. 당신이 오후에 이를 확인하러 가 봤을 때, 물은 거기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물이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물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물이 사라졌는지도, 또 물이 어디에 있는지도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은 물이 가진 ‘잠재력’이, 응축된 보이는 상태에서, 확장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변화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 하나 현대에 이르러 하나의 비유를 든다면 방송국과 TV의 예를 들어볼 수 있다.
방송국은 영혼의 고향인 태양으로 비유를 하자. 또 영혼이 있는 TV로 비유를 하자. 방송국에서 전파를 발사하면 영혼이 있는 TV는 온갖 喜怒哀樂(희로애락)을 연출한다. 고장인 난다면 수리를 하던가? 폐기처분한다. 폐기처분된 TV는 어디에 있나? 재활용센터에서 수리를 하던가? 아님 영구히 폐기처분한다. 폐기처분된 TV는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다 다시 TV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모양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인류는 지구어머니와 손잡고 걸어가는 아름다움이다.
결국은 이러한 장대한 생명의 드라마에서 당신이 주인공이다.
스스로가 각색하고 연출하면서 희로애락으로 한바탕 춤을 추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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