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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 아이가 절망의 시작처럼 느껴졌지만…”

“뱃속 아이가 절망의 시작처럼 느껴졌지만…”

  • 기자명 임재강 기자
  • 입력 2012.11.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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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서비스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최우수상 - 손영희씨

[서울시정일보 임재강기자] 사회서비스는 사회복지(보육, 아동·장애인·노인 보호), 보건의료(간병, 간호), 교육(방과 후 활동, 특수 교육), 문화(여행, 체험활동) 등을 포괄해 개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사회서비스는 복지서비스를 확대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다.
현재 복지부, 문화부, 여성부 등 7개 정부 부처에서 8조 9214억원 규모로 57개 사회서비스 사업을 실시중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사회서비스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을 통해 사회서비스 이용자와 종사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보자.(편집자주)

2012년 6월.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다. 아버지도 외면한 이 아이. 어려운 가정형편. 매일 무기력해져가는 시간들. 과연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저무는 해와 같이 나에게는 ‘절망’과 같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일찍부터 아픔이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엄마를 여의고, 집안 형편은 어려워졌다. 빨리 자라 성인이 되어 돈을 벌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성인이 되었고, 가족들을 뒤로한 채 독립을 하고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고, 우리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사랑하고 의지했던 남편은 외도를 했고, 폭력을 휘둘렀으며 나와 내 아이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날들. 다신 없을 것 같던 사랑을 만났으나 전 남편과의 아이로 인해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그후 알게 된 13년만의 임신. 나에게 있어 이 아이는 축복이 아닌 새로운 절망의 시작이었다.

[하루하루가 절망 같던 날들…우연히 알게 된 산모·신생아 도우미]

어쩔 수 없이 출산을 위해 보건소를 다니는 중에 우연히 산모 신생아 도우미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신청하는 절차도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었는데 그 때는 왜 그리 어렵게만 보였는지. 하루하루가 절망적인 나에게 이 모든 것이 귀찮기만 했다. 보건소 담당 선생님은 ‘산후 조리를 잘 받아야 다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끈질긴 설득을 하셨다. 결국 보건소 선생님의 설득으로 ‘산모·신생아 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하게 되었다. 보건소의 도움으로 업체를 선정하고 출산일을 기다렸다.

2012년 6월, 어느 날. 저무는 해와 같았던 아이가 태어났다. 보건소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연락을 해주셨고 퇴원 다음 날 집에서 산모 신생아 도우미를 기다렸다. 갑자기 나는 ‘불편해 하시면 어떡하지?’ ‘나와 잘 안 맞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하루 종일 어색하게 어떻게 지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이른 아침 걸려온 산모 도우미의 전화. “안녕하세요! 신청하신 산모 도우미입니다!” 전화기 속 목소리는 내 걱정을 사르르 녹이기 시작했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밝은 미소와 함께 들어온 산모 신생아 도우미 이모님. 오랜만에 보는 밝은 미소로 살얼음 같던 내 마음은 녹아들기 시작되었다. 이모님은 아침 일찍 오셨고, 우리는 늘 함께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출산으로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식사도 만들어주시고, 청소를 해주셨다. 또 아이를 능숙하게 돌봐주시면서 아이에 대해, 또 양육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우는 나의 등을 토닥여주시던 분…‘엄마가 살아계셨으면 이모님 같았을 것’]

이모님은 나에게 모유 수유를 권장하셨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모유 수유, 이모님의 도움으로 나는 모유 수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모님은 실패할 때마다 방법을 알아듣기 쉽게 알려주셨으며, 나는 차근차근 배워가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실수와 실패 끝에 젖을 힘차게 빠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절망뿐이었던 아이에게서 나에게 없을 것이라 여겼던 감정, 바로 ‘사랑’을 느낀 것이다. 나의 우는 모습을 보시고 등을 토닥여주시는 이모님.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마치 이모님 같았으리라.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 젖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모님은 젖몸살이라고 하시며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타인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괜찮다고 말하는 나를 마사지 해주셨다. 이모님 이마의 구슬땀을 보니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났다.

이모님은 평소에도 많은 말씀을 내게 해주셨다. 우울했던 내게 엄마와도 같은 이모님의 말씀. 때로는 잔소리도 하셨지만 그 잔소리에 나를 위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힘들었던 어릴 적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이모님과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보며 놀랍기만 했다.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에게 전화할 용기를 얻다]

조금씩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갈 즈음, 아이의 이름을 정하지 못한 내게 이모님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어릴 적 헤어진 가족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다시 아버지에게 연락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떨렸지만 이모님은 계속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이모님의 지지와 격려로 어렵게 전화기를 들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보세요” 하는 아버지의 음성에 나는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한 참이 지난 후 어렵게 꺼낸 한마디. “아빠…”

오랜만에 집이 시끌벅적하다. 집의 문이 ‘철컥’하며 열릴 때마다 그리웠던 얼굴들이 하나씩 방으로 들어왔다. 보고 싶었던 아버님. 콧물을 흘리던 남동생은 늠름하게 변해있었다. 어릴 적 함께 소꿉놀이를 했던 여동생의 손에는 알록달록 곱게 포장된 애기 옷이 들려있었다. 언제 만났었던가. 아버님은 ‘복덩이’로 인해 오랜만에 남매를 다 본다며 절망 같았던 아이를 ‘복덩이’이라 칭해주셨다. 아버님께 아이의 이름을 부탁드렸고, 아버님은 아이의 이름을 손수 지어주셨다. 이렇게 복덩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을 것]

사실 나에게는 ‘복덩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산모 신생아 도우미로 나를 도와주신 바로 우리 ‘이모님’이다. 단순히 도우미를 넘어서 나에게는 엄마 같은 분이셨다. 절망뿐이던 우리 가족을 희망으로 바꿔주신 분. 우리는 2주 후 헤어져야 했지만 이모님의 따듯한 관심과 사랑이 나에게도 전염이 되어 씩씩한 엄마로서, 또 자녀로서 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부끄러워 말씀드리지 못했던 말. ‘감사합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전하고 싶다. 또 사회서비스를 신청하도록 나를 설득하고 도와주신 보건소 선생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대부분 나처럼 어려운 이웃들이 사회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모님은 나같은 딸의 손을 잡아주며 ‘힘내라’라고 말씀하시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시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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