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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춘궁기-하얀 찔레꽃의 기억.

그 옛날 춘궁기-하얀 찔레꽃의 기억.

  • 기자명 박용신
  • 입력 2018.06.11 07:24
  • 수정 2018.06.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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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았지.

그 옛날 춘궁기-하얀 찔레꽃의 기억.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정치색에 찌든 당신에게 잠시 쉼표를!>

[백암 박용신의 여행문학 = 풀잎편지] "얘 오늘은 핵교 파하는 대로 빨리 와라, 오늘 모내는데 일찍 와서 모찜 좀 져라." 책보를 둘러메고 학교 가는 나를 불러 세우신 어머니께서 당부하시는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훗풋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누런 보리밭을 가로 질러 등성이를 넘고 개울을 건너 학교에 갔다. 학교 수업 내내 머리에서는 갈등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집에 일찍 가면 모처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지만, 대신, 혹독한 육체 노동이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중학생이였지만, 유난히 키가 작았던 나는, 소쿠리 얹은 발목이 땅에 질질 끌리는 지게에다 한 웅큼씩 쪄서 짚으로 묶은 모를 간신히 일어날 만큼 잔뜩 짊어지고 서레질이 끝난 논에 적당히 모내기 좋도록 분배해 놓는 일을 해야 되는데, 가레질로 반질반질하게 잘 다듬어 놓은 논두렁을 물이 줄줄 흐르는 지게를 지고 아슬아슬 외줄 타듯, 곡예를 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던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이다.

그래도 아니다 싶어,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혹시나 어머니가 가마솥에 쌀밥이라도 한 그릇 남겨 놓으시지 않았을까 싶어 솥뚜겅을 열어 보았더니 죽어도 먹기 싫었던 누런 보리밥에 주먹만한 감자가 얹혀진 사발 밥, 한 그릇, 나는 가마솥 뚜껑을 닫고 뒷 곁으로 돌아가 앵두나무에서 설익은 앵두 한 웅큼 훑어 잠뱅이 바지에 넣고 몇 알을 우물 거리며 봉당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누이동생을 데리고 뒷동산으로 갔다.

야트막한 안산(安山), 내 뒷동산은 언제나 멧새 박새가 조잘 대고 꾀꼬리가 "닐릴릴리" 울어 대는, 손만 뻗으면 까만 버찌를, 또 연하디 연한 찔레 순과 달착지근하여 맛이 좋은 하얀 찔레꽃을 배부르게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는 나만의 숨겨 둔 비밀 공간, 나는 오늘이 모내는 날이라는 것도 잊고 누이동생과 배가 터지도록 버찌, 찔레순, 질레꽃을 따 먹으며 놀았다.

간혹, 심심해지면 깝쭉, 깝쭉, 꼬리를 까불어 대는 할미새에 둥지를 헐어 새알을 꺼내 먹고 "꼬공 꼬공" 꼬공대는 까투리를 잡겠다고 웅크려 쫓아 다니다 찔레나무가지에 걸려 정수리를 찢겨 피가 나고, "어! 오빠, 피나! 내가 호, 해 줄께."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쑥 잎을 따서 고사리 손으로 비벼 붙여 주던,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노는 사이, 갑자기 동생이 배를 웅켜 쥐고 "떼굴 떼굴" 배가 아프다고 난리를 쳐서 동생을 들쳐 업고 집으로 와, 딴엔 배도 쓸어 주고 소다도 먹이고 온갖 간호를 했는데도 낫지 않아서 결국 모내시는 어른들께 알렸고, 어머니가 바늘로 손도 따고, 발도 따고, 읍내 보건소에서 양호사가 나와 일단락 되었는데, 고것이 내가 안보는 사이, 고 고운 찔레꽃, 하얀  꽃 이파리를 하나 둘 자꾸 따먹다 너무 많이 따 먹어서 곽란(癨亂)이 나고 모내기 도우랬더니 동생 큰일 낼 뻔 했다고 심하게 꾸중을 듣던 그 옛날.

찔레꽃이 온 동네 야단이다. 먹을게 없어  모질던 시절 내 허기를 메워 주던 고맙고 고맙던 그 하얀 찔레꽃. 머리가 히끗해 진 지금, 옛날에 그렇게 맛도 좋았던 그 하얀 찔레꽃은 지금은 그 맛이 아니더라.

 

(서울시정일보 백암 박용신의 여행문학. 2018.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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