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9일 열린 세번째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합의를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북한·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강조점도 달랐지만, 두 정상은 셔틀외교 복원을 본격화하기로 하는 등 관계 개선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오후 강원도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만난 두 정상은 12·28 합의에 대한 논의로 회담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보고서 발표 뒤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는 국가 대 국가의 합의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국제 원칙”이라며 “일본은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켜온 만큼 한국 정부도 약속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외교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결정은 지난 정부의 합의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들이 합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정부 간의 주고받기식의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계속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과거사와 미래의 실질 협력을 분리 접근하는 ‘투 트랙’ 원칙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앞서 “양국이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며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고도 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 역시 예고했던 대로 ‘일본의 입장’을 직접 문 대통령에게 전함으로써 양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두 정상이 이 부분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나눴다”거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전언에 비춰 보면, 어느 때보다 격론이 오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일 관계가 당분간 다시 냉랭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정상은 북한·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북한은 평창올림픽 기간 남북 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소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남북 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 공조를 흩뜨린다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가 결국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위기를 살려나갈 수 있도록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두 정상은 이날 1시간가량 진행된 회담에서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대한 필요성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국 정상은 지난해 양 정상이 합의했던 셔틀외교의 복원을 본격화하기로 했고,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내 일본에서 개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현안이 있을 때 양국 정상이 오가며 정상외교를 펼치는 셔틀외교 복원 문제는 지난해 7월 첫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바 있으나, 그간 진전을 보지 못한 상태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한이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으로 이어지면 셔틀외교가 복원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의 방한은 2015년 11월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서울시정일보 박찬정기자 ckswjd2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