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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날에는 산사(월정사)에 간다.

눈 내린 날에는 산사(월정사)에 간다.

  • 기자명 박용신 논설위원장
  • 입력 2018.02.05 14:45
  • 수정 2018.02.0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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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 그 천진(天眞)한 위로.

 

푸짐한 눈을 밟으며 일주문을 지나 1km 남짓, 오래된 전나무 숲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하얗게 백치가 된다.
푸짐한 눈을 밟으며 일주문을 지나 1km 남짓, 오래된 전나무 숲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하얗게 백치가 된다.

[서울시정일보=박용신 기자] 그대 외로운가? 산사(山寺)에 가자!. 간밤에 푸짐하게 내린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일주문을 지나 1km 남짓, 오래된 전나무 숲길에 들면, 밤새 하늘로 하늘로 꼿꼿하게 자존심의 키를 키우던 나무들이 기척에 놀라 훼를 치고, 가지에 사뿐이 내려 앉아 쉬고 있던 눈, 육각형 그 고운 미세 은빛 입자들이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안개처럼 허공에 번져 알싸하게 어깨위로 내리면, 겨우내 움추러 들었던 나태한 육신의 신경들이 생경하게 깨어나 기분이 좋아진다.

고운 미세 은빛 입자들이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안개처럼  날리고_
고운 미세 은빛 입자들이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안개처럼 날리고_

두 팔을 벌려 크게 숨 호흡을 하고, 천천히 느리게 걷는 길, 겨울 나무의 질 좋은 피톤치드가 사방, 팔방, 십방으로 번지는 길 위에는 어머니같은 포근함이 있고, 아버지 같은 넉넉함이 있고, 누이같은 은근함과 설레임이 있다.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자연으로부터의 천진(天眞)한 위로, 얼마나 감사한가.

바람은 가지위에 눈들을 모두 날려 버리고 신선한 나무의 피톤치드를 공짜로 만끽한다.
바람은 가지위에 눈들을 모두 날려 버리고 신선한 나무의 피톤치드를 공짜로 만끽한다.
꼿꼿하게 자존심의 키를 키우던 나무들의 기개가 하늘 까지 닿았다.
꼿꼿하게 자존심의 키를 키우던 나무들의 기개가 하늘 까지 닿았다.

곧음과 푸름, 그리고 흰 빛의 기개를 품고, 1,400여년 전, 신라시대 창건조(創建祖) 자장율사와 근세의 월정사를 중창하신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 까지, 이 숲길을 오가며 도(道)를 위해 정진하던 선승들의 의연한 결기(決起)를 몸소 체험하며, 마음을 추스려 조용히 합장을 하고 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선다.

한암, 탄허, 선승들의 부도탑, 유구한 역사의 증인이 되어 전나무숲을 지키고 있다. 23기가 봉안 되어 있다. 결국 인생,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그 것이 문제이다.
한암, 탄허, 선승들의 부도탑, 유구한 역사의 증인이 되어 전나무숲을 지키고 있다. 23기가 봉안 되어 있다. 결국 인생,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그 것이 문제이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는 636년경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가서 그 곳, 문수사에서 기도 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너희 나라에도 내가 상주하니 그 곳에서 나를 다시 친견하라"는 게송(偈頌)을 듣고 신라로 돌아와 문수보살이 나투실 만한 오대산에 초가를 짓고 친견을 고대하며 기도 정진 하였으나,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 정암사에서 입적하게 되고, 이로부터 월정사는 오대산 맑은 물, 계곡 터에 자리하고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지금의 불교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적광전과 팔각구층석탑과 석조 보살좌상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적광전(대웅전)과 팔각구층석탑과 석조 보살좌상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경내에 들어서니 "와락" 다가서는 풍경 하나, 바로 적광전(다른 사찰에는 대웅전이 자리하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이라 함.) 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탑 하나,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 높이15.2m)이 누우런 세월의 색채를 띄고 장엄하게 버티고 서 있다. 화강암으로 고려시대 축조된 이 탑은 당대 최고의 탑으로 꼽히며, 국내 팔각석탑 중 가장 큰 것이기도 하고, 층 위에 장식된 금동장식이 탑의 기품을 더하고, 기단은 아래층 각 면에 연꽃 장식을 각인하였고, 고임돌을 놓아 위층 기단을 정성스레 받들어 기단 전체가 마치 부처의 연꽃 방석처럼 장식 되어 있다.

이끼와 누우런 색체가 세월의 역사를 말해주는 팔각구층석탑.
이끼와 누우런 색체가 세월의 역사를 말해주는 팔각구층석탑.

탑 앞으로는 석조보살좌상(보물제139호.높이1.8m)이 입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공양을 올리는 듯 자리해 있는데, 이 보살상은 모조품으로, 진품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월정사에서 이 석조보살좌상을 꼭 보고 오라고 권하고 싶다. 보살상을 가까이에 가서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면 가슴속으로부터 무언가 찡하게 울려오는 느낌이 있어 저도 모르게 경건해 진다.

석조보살 좌상(보물 제139호) 진품과 보조품.
석조보살 좌상(보물 제139호) 진품과 보조품.

적광전(寂光殿)에서 그냥, 불자가 아니어도 부처님께 합장 삼배 올리고 신년(新年)이니 있는 복, 없는 복 다 달라고 떼도 써보고 마당을 돌아 용금루, 종고루, 대법륜전, 삼성각 등을 돌아보고 마음에 평안(平安)이 자리할 즈음 청류다원 차실에서 꽁꽁 언 손 호호불며 마시는 녹차 한 잔, 얼마나 호사인가. 겨울, 눈 덮인 산사를 찾아 속세의 찌든 욕심의 색채를 하얗게 하얗게 지워, 비워 내는 것, 하여 내가 가난해 지는 것, 가진 것 없으니 세상에 부끄러울 것도 없겠다. 동하여 하루쯤 묵고 싶어지면 선방에 찾아 들어 도량석이 울 때까지 번뇌 놓고 뒤척이다 늦잠에 빠져도 부처님께 죽비로 할(喝), 맞는 일은 면하겠다.

종고루 범종, 목어 운판, 법고 등의 불전사물을 봉안하여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때 사용된다.종고루 범종, 목어 운판, 법고 등의 불전사물을 봉안하여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때 사용된다.
종고루 범종, 목어 운판, 법고 등의 불전사물을 봉안하여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때 사용된다.
용금루, 월정사성보박물관 특별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누마루형식의 건축으로 하단 계단을 통과하면 바로 적광전 앞이다.
용금루, 월정사성보박물관 특별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누마루형식의 건축으로 하단 계단을 통과하면 바로 적광전 앞이다.
겨우내 내리는 눈, 월정사는 눈천지다. 대법륜전.
겨우내 내리는 눈, 월정사는 눈천지다. 대법륜전.
보장각,성보박물관의 추녀, 고드름이 아래로 아래로 키를 키운다.
보장각,성보박물관의 추녀, 고드름이 아래로 아래로 키를 키운다.
찻집, 청류다원, 왠지 누군가가 찾아와 몇 날, 몇 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찻집, 청류다원, 왠지 누군가가 찾아와 몇 날, 몇 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스해 오는 장작 난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스해 오는 장작 난로.
산사에서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호사와 즐거움 중에 으뜸이다.
산사에서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호사와 즐거움 중에 으뜸이다.
섶다리를 지나 오대산 정상까지  가보면 더 좋겠다.
섶다리를 지나 오대산 정상까지 가보면 더 좋겠다.

나는 가끔, 눈 내리는 날엔 월정사에 간다. 거기가서 전나무 숲길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고요가 깊은 안한자적(安閑自適)을 즐긴다. 펑 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입 속에서 녹이며, 하늘을 우러러 고래 고래 소리쳐 첫사랑이었을 그 "순이"를 목청껏 불러 본다. 아!, 나는 나 혼자 즐기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엉엉 눈물 흘려도 한 참은 좋겠다.

푸짐하게 내린 눈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것같이 마음이 넉넉해진다
푸짐하게 내린 눈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것같이 마음이 넉넉해진다

평창 올림픽을 보고 월정사에 가기를 추천한다.

<월정사 가는 길>
      승용차   :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빠져나와 진고개 방면 6번 국도에서
                      4킬로 정도 직진, 삼거리에서 좌회전.
      대중교통 :  동서울종합터미널→진부행 버스가 06:32~ 20:05, 약 40분 간격으로

                      운행. 2시간 20분 소요. 진부시외버스터미널(033-335-6963)에서

                      월정사행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먹을 곳>
                     오대산식당(033-332-6888) 부일식당(진부시내 033-335-7232)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잠자리>
                    켄싱턴플로라호텔(033-330-5000),
                    콘도형산장(033-332-6589)

(박용신 논설위원장 bag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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