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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화 ‘남영동 1985’와 故김근태 의원 이야기

[칼럼] 영화 ‘남영동 1985’와 故김근태 의원 이야기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18.02.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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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영화 1985 영상 캡쳐
사진 : 극중 이두한이 김종태를 고문하는 모습 / 이미지 : 영화 1985 영상 캡쳐

“용서해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이 대사는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말미에 고문경감 역을 맡은 이두한(이경영 분)이 김종태(박원상 분)에게 사과하며 전한 말이다. 영화에서 김종태는 용서를 상징하는 손을 이두한의 어깨를 향해 움직이다 멈추고 돌아서는 길에 김종태의 귀에는 고문을 받던 당시 이두한이 불던 휘파람 환청이 들려온다.

영화 ‘남영동 1985’는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몸바친 故김근태 의원이 1985년 ‘서울대 민추위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일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서울대 민주화 추진위(이하 민추위)는 1980년대 초 서울대 학생운동권이 만든 단체이다. 5공화국은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 벌어지자 민추위를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 의장을 맡고 있던 김근태 의원을 체포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불법 고문을 자행한다.

고문휴유증으로 지금은 타계한 김근태 의원이 법정에서 남긴 당시 정황은 이러하다. “본인은 1985년 9월 한 달 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 정도 당했습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가했습니다”

김근태 의원은 이렇게 이어진 고문 휴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었으며, 이 당시 생긴 PTSD로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지난 2011년 12월 30일 향년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반면 모진 고문으로 숱한 사람들에게 평생의 고통을 안긴 이근안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고문행각에 대한 제보가 잇따르면서 도주해 10년간을 도망 다니다 2000년 자수했고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았다. 이후 이근안은 지난 2006년 만기출소해 정식목사가 되고 일부 언론 인터뷰에 나서 자신의 행각을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는 망언을 남기는 등 활동에 나서 세간에 충격을 줬다.

이근안의 소식이 마지막으로 전해진 것은 지난 달 9일 노컷뉴스의 단독보도를 통해서이다. 당시 이근안은 “지금 30여 년 전 얘기요. 본인 기억도 잘 안나고 관련된 사람들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 봐야 나만 미친놈 돼. 살거 다 살고 나와서 지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남기고 인터뷰를 거절했다.(노컷뉴스 발췌)

사진 : 극중 이두한이 김종태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 / 출처 : 영화 1985 영상 캡쳐
사진 : 극중 이두한이 김종태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 / 출처 : 영화 1985 영상 캡쳐

“용서는 무작정 잊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이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잊을 수 있는 상처’를 남겼을 때 가능하다. 만일 지금도 과거의 비인륜적 범죄에 대해 ‘용서’를 꿈꾸는 가해자가 있다면 자신이 과연 피해자에게 ‘잊을 수 있는 상처’를 남겼는지 되새겨보길 바라는 필자의 마음이다.

서울시정일보 황문권 기자 hmk0697@m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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