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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1990년 YS ‘3당 합당’.. 명분 없는 정치의 시작-1부

[역사칼럼] 1990년 YS ‘3당 합당’.. 명분 없는 정치의 시작-1부

  • 기자명 황문권 기자
  • 입력 2017.11.29 00:31
  • 수정 2017.11.2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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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BC 방송 캡쳐
사진 : MBC 방송 캡쳐

1990년 1월 22일 지상파 방송을 통해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한 세 사람이 모여 대한민국 정치의 지형을 바꿀 충격적 소식을 전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정의당(노태우)’과 야당이던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의 합당 발표였다.

‘3당 합당’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 정치적 사건의 배경은 13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된다.

1988년 노태우 정부 하에서 치러진 13대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25석을 획득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화민주당이 호남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70석을 확보 원내 2당의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은 부산지역을 거의 석권하며 59석을 확보했으며,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은 충남 지역에서 선전하며 35석을 확보했다.

결국 13대 총선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상황이 연출되었고, 가뜩이나 5공화국 비리문제로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던 노태우 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한 정치적 이벤트가 바로 ‘3당 합당’이었다.

당시 보수와 군사정권 출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던 민주정의당과 신민주공화당의 합당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몸 바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합당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 사건이었다.

‘3당 합당’을 이해관계 관점으로 평가해볼 때 합당에 참가한 세 정당을 대표하는 세 명의 정치인 중 이를 통해 실리를 얻은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 한 명 뿐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실리는 있을지 몰라도 명분 없는 합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정확히 말해 당시 ‘3당 합당’은 실제로 명분 없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 13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선택은 ‘여소야대’였고 이를 정치공학적으로 뒤바꾼다는 것은 민의를 저버린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3당 합당’에 반대한 많은 정치인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며 그의 곁을 떠난다.

당시 합당 문제에 대한 회의장에서 “이게 회의입니까?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으면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라며 외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은 아직까지 남아 회자되고 있다.

사진 : MBC 방송 캡쳐
사진 : MBC 방송 캡쳐

노 전 대통령 이외에도 3당 합당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탈당한 의원들은 민주당을 창당하며 반대의사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결국 1990년 1월 22일 노태우·김종필 두 사람과 함께 손을 들어올리고 말았다.

(2부에서 계속)

서울시정일보 황문권 기자 hmk0697@msnews.co.kr

※ 본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 역사인식이 가미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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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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