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최종편집:2024-03-28 20:01 (목)

본문영역

텅빈 고랭지 배추밭에서의 명상

텅빈 고랭지 배추밭에서의 명상

  • 기자명 박용신 논설위원장
  • 입력 2017.11.23 08:29
  • 수정 2017.11.23 08:33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백 매봉산, 쓸쓸해서 좋은 고요.

<텅빈 고랭지 배추밭에서의 명상>

# 매봉산 1,300고지, 배추가 사라진  텅빈 땅에서 푸짐한 흙 냄새가 몰려왔다. 훗훗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 매봉산 1,300고지, 배추가 사라진 텅빈 땅에서 푸짐한 흙 냄새가 몰려왔다. 훗훗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서울시정일보 태백 매봉산=박용신 논설위원장] 잔치는 끝났는가? 그 뜨겁던 여름, 연두로 푸른 것, 소란스럽던 사람들과 배추들이 다 떠난 텅 빈 자리로 쓸쓸하고 적막한 고요가 나래를 편다. 멈춰 선 자리에 안거(安居) 한철 찾아 들고, 급습한 피정(避靜)의 순간에서 절대한 그대의 얼굴마저 지워졌다. 바람 조차 숨을 멈춘 매봉산 1,300고지 "바람의 언덕", 속절없이 무너지는 속세의 찌든 것들, 욕심, 허황된 꿈, 사랑도 아닌 것을 너에 대한 집착, 훌훌, 굴멍 너머 산, 산, 그리고 멀리 해 오르는 동해까지, 겹겹의 안개, 운무에 바다로 떠나 보내고, 혼자만의 자유가 유배된 형벌의 땅에서 그리운 사람에게 몰래 쓰는 연서처럼, 홀로라는 애틋한 홋홋함이 슬퍼져서 눈물 몇 방울 떨구는 편안(便安). 키운 것, 다 내어 준 빈 땅에서 푸근한 흙의 냄새, 고마운 침묵을 듣는다. 찰나라도 숨 멈춰 누려야할 정적(靜寂)의 명상(瞑想), 도(道)의 깨달음이 참 쉽다.

# 바람도 멈추어 선  정지된 침묵의 풍경, 산것들의 소리마저 떠난  쓸쓸하고 적막한 고요가  깊게 흐른다.
# 바람도 멈추어 선 정지된 침묵의 풍경, 산것들의 소리마저 떠난 쓸쓸하고 적막한 고요가 깊게 흐른다.

여름내 수고한 132만㎡(40만평)의 고랭지 배추밭, 농로 따라 걸으려다 멈춰 선다. 쓸데없이 미안한 마음, 주인도 없는 빈집에 불쑥 찾아 든 객이 주체(主體)같아 면구스럽다. 파란 하늘에 획을 그으며 날아간 제트기에 꽁지 구름이 풍력발전기 프로펠라에 걸렸다.  맑은 쾌(快), 동쪽에서 서쪽까지 하얀 몽실 선을 눈동자가 따라 간다. 지금껏 내 인생 외줄 선상(線上)에서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걸어온 날보다 걸어갈 날이 더 적은, 아직은 저녁이라 말하고 싶지 않지만, 시선(視線) 끝에 노을이 붉다.

# 풍력발전기 프로펠라가 푸른 하늘에 걸리고 제트기에 꽁지 줄구름이 인생에 시작과 끝을 얘기해 주었다.
# 풍력발전기 프로펠라가 푸른 하늘에 걸리고 제트기에 꽁지 줄구름이 인생에 시작과 끝을 얘기해 주었다.

문득, 엉뚱한 생각, 참 나도 주책이다. 여기 배추농사 지으신 농군님들은 돈 많이 버셨을까?  여름 한철 메뚜기 장사로 얼마나 재미를 보셨을까? 별개 다 궁금 하군. 워낙 이 곳이 유명하게 알려져서 참 많기도 한 대한민국 너나 나나 사진쟁이들 구경꾼들이, 다녀 갔을... 수익에 보탬이나 되셨을까? 여름날, 나도 사진 한 컷 건지러 들어서다 너무 차량과 사람들이 몰려 되돌아 간 안 좋은 기억, 내게 지금에 이 호젓한 행복을 주려 했음인가. 어쨋든, 고맙다는 생각, 이 오지(奧地), 산등성이를 개간하여 내 시야(視野)에 호사를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발 밑으로 꼬므락 거리는 것,  흙을 비집고 풍뎅이 하나 바지가랭이를 타고 오르려 한다. 시절도 모르고 아직 돌아가지 못한 연유가 궁금타. 이제 곧 찬바람 불고 눈 내리는 겨울로 가겠지. 어련히 알아서 돌아갈까. 내 유년의 시절,  가출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낀 내가 곤충 하나에도 안스러워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한 건지도.

# "바람의 언덕"에 바람이 멈추었다. 정적이 깨질까 깨끔 발로 살금 살금, 카메라의 셧터소리가 천둥 같다.
# "바람의 언덕"에 바람이 멈추었다. 정적이 깨질까 깨끔 발로 살금 살금, 카메라의 셧터소리가 천둥 같다.

얼마의 시간, 정지된 풍경 안에서 "밀레의 만종"를 그려 넣다가 그대가 부재한 자리, 공허가 커서 뒷 춤, 주머니에 휴대폰 꺼내 전화를 건다. "지금은 전화를 받지 않으니 잠시 후 다시 걸어주세요. 뚜뚜뚜-" 뭔 목욕탕엘 갔나?...별의 별, 머리를 스치는_ 자네 만약 이사 갈 때, 이삿짐 차 꼭 조수석에 먼저 앉아 있게. 그게 좋을 꺼야. ?!?? 엊그제 친구놈의 조언, 마음이 다급해지고 별안간 집이 그립다.

그 때, 빵 빠-앙,경적을 울리며 달려드는 승용차 하나, 맨땅 농로에 뽀얀 먼지가 심하게 인다. 저, 저, 저- 런, 뭔, 예까지 승용차를 타고 와서...막말이 튀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그래도 기왕 나선 길, 마음을 추스려 이 너른 평원의 땅, 한 뙤기에 땅심 정기라도 더 가슴에 받으려 발을 옮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대열에서 낙오되기도 한다. 인간의 삶처럼. 귀퉁이에 남아 있는 배추.
▲가끔은 아주 가끔은 대열에서 낙오되기도 한다. 인간의 삶처럼. 귀퉁이에 남아 있는 배추.

이 곳 태백, 매봉산에서 참으로 천천히 느리게 란 말이 참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을 하며, 배추밭 중간으로 난 길을 횡단, "바람의 언덕" 그리고 정상에 선다.  갑자기 풍력발전기가 윙윙대며 돌아간다. 침묵하던 능선 잡목들이 아우성치고 일순 즐기던 고요가 무너졌다. 그 고요 안에서 명상(瞑想)에 들어 도(道)를 깨우쳤던 순간들이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 따라 사라졌다. 집으로 가야겠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무심하게 자리를 뜬다. 돌아가면 일상(日常)의 무게도 바람처럼 가벼워 졌을 것이다.

# 텅빈 것 실컷보고 내려 오는 길, 안 보이던 자작나무 숲이 보였다.  빽빽한 채움,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 텅빈 것 실컷보고 내려 오는 길, 안 보이던 자작나무 숲이 보였다. 빽빽한 채움,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終>
여행이란 내가 찾아가 머무는 그 곳, 거기에서 모든 것 다 내려 놓고, 자연의 순리 따라 자연과 동화 되어, 좋은 기운을 받아 세파(世波)에서 거칠었던 숨결들을 고르게 조율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내일을 살아 가는 것, 하여 삶이 건강해 지도록 애쓰는 것. 나는 또 다시 카메라를 챙겨 길을 나선다.

◆ 어떻게 가나.
    ○ 승용차 : 영동고속도로 (원주방향)  → 남원주ic  → 중앙고속도로(제천방향) → 제천ic→  월방향 38번국도 → 석항검문소 → 31번국도 → 태백  → 구와우마을 → 매봉산풍력발전단지입구
    ○ 대중교통 : 기차나 버스타고 태백에서 택시로 20분 정도. 요금 5,000원 내외

 ◆ 둘러볼 곳
금대봉으로 부터 삼수령까지.  만항재와 함백산 , 정암사
   
◆ 먹을 곳
    ○ 구와우마을 순두부집(033-552-7124), 초막고갈두 (고등어,갈치,두부)집(033-553-7388)
◆ 묵을 곳
  ○ 태백 민박촌(033-553-7440),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50-2849),장산콘도(033-378-5550)
        스카이호텔(033-552-9977), 호텔메르디앙(033-553-1266).

 

(서울시정일보 박용신 논설위원장 bagam@hanmail.net)
                     

저작권자 © 서울시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