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일보 강촌= 박용신 논설위원장]
언제나 그렇듯,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떠난다는 것은 그 하나의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공연히 설레임을 주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기차(汽車)라는 매개(媒介)는 내 시대의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통키타 메고 무작정 집을 나와 대성리, 강촌역으로 "배낭여행"이라는 허울로 무임승차를 하곤 했었는데, 그러한 짜릿한 추억이 아직도 낭만으로 자리해서 그런가 싶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주말에 떠나는 가을 날의 사색(思索), 딱 하루면 족한 단풍과의 이별을 위한 법석(法席), 나는 강촌역으로 간다.
용산에서 "itx청춘열차"를 타고 강촌역에 내린다. 그 곳 음식점들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픽업 행위가 좀 불쾌하긴 했지만, 어차피 예까지 와서 그 유명한 닭갈비 맛을 안보고 가면 섭섭할 것 같아 이따 하산하면 그 곳으로 가리다 약속을 하고 의암땜 매표소까지 음식점에서 제공한 봉고차를 이용한다. 늘 반복된 일과가 대수롭지 않은 듯, 안내 기사는 좁은 차창으로 스치는 의암호에 비친 단풍든 산들의 비색(緋色)을 감상할 겨를도 안주고 "우리집 닭갈비 맛이 최고"라는 둥 너스레 치며 운전을 하는 바람에 기우뚱, 갸우뚱, 중심잡기가 힘이 들었지만 날쌘 10여분 금새 삼악산(656m) 입구 매표소 앞에 나와 일행을 내려 놓았다.
입장료 1,800원, 잠시 비싸다는 생각을 지우고 산문(山門) 입구 고개를 들어 코앞으로 다가선 경사가 심한 협로, "삼악에 산신(山神)이시여! 오늘, 그대 품으로 안겨 저 꼭대기 상투 잡는 일을 용서 하소서!" 간단한 주문으로 산천(山川)의 주인 천주에게 신고를 마치고 발을 내딛는다. 여름내 드나든 사람들의 발길 따라 채이고 밟힌, 돌과 나무들의 뿌리가 앙상하게 들어난 뼈대 길, 나 또한 그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원이 됨을 미안해 하며 일행과 뒤쳐지지 안으려 안간힘으로 발을 재게 놀린다. 시작 이십여분의 사투, 내겐 그 말이 딱 어울렸다.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숨이 가빠 온다. 잠시 길을 비켜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신다. 그제야 비로소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래, 의암호수에 갇힌 산그리메 안개의 발묵(潑墨)으로 점증적 경계를 흐려 몽환을 유도하고 건너 강변으로 난 흐리게 하얀 길, 고독한 나그네가 륙색하나 걸머메고 터덜 터덜 가야만 할 길 같아 꼭 거길 걸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구릉 계곡, 졸졸 흐르는 개울, 요리조리 앞길 막는 돌, 바위, 툭 하니 나무들의 걸림, 잘도 돌아 아래로 아래로만 흘러 먼길, 드디어 강에 닿는다. 바로 파란 하늘 가, 단애(斷崖)의 끝, 매달린 아기 단풍나무에 햇살 비낀 붉은 빛깔이 참 곱다. 얼그러진 다래나무 군락, 벌써 잎들이 지고 듬성 듬성 몇 닢, 바람에 나부끼는 덤불 사이 도토리 문 다람쥐 한 마리 손을 부비며 입을 쪼물댄다. 서둘러 다시 10여분, 상원사다.
부처가 계신 대웅전을 향해 합장 반 배 올리고 공짜 커피를 얻어 마신다. 기분이 좋아졌다. 산에 중턱, 가을 산사에 청랑(淸浪)한 기운이 내게 달려든다. 욕심도 내려 놓고 성냄도 내려 놓고 산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시는 법문 한 자락, 헛개나무 차를 한잔 더 청해 마시고 어차피 올라야 할 정상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매달려 기다싶이 오르는 산, 악산(惡山)이라는 이름을 왜 붙였는지 제대로 느끼며 절에 뒷 곁, 깔닥 고개를 오른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정상으로에 오름, 바위 틈새를 겨우 움켜잡고 용을 쓰며 한키 넘는 낭벽, 쇠줄, 밧줄을 잡고, 겨우겨우 암릉 구간을 통과한다.
낙오 된 줄 알고 왜 안 오느냐 전화가 오고 난리다. 나의 산행법이란 게 휘-익 잽싸게 정상에 올라 표지석 앞에서 셀카 한장 찍고 휘리릭 내려와 배터지게 막걸리 마시고 집에 눈치 보며 들어가는 그런게 아니라, 조근 조근 산길에서 나무들에게 꽃들에게 그리고 돌과 흙, 하늘, 바람에게 내 고단한 삶에 얘기들을 들려 주고, 친구가 되는 느리고 천천한 행보, 급할 것도 바쁠 것도 없는 행자승의 포행(布行), 어쨋거나 2시간여 드디어 삼악산 정상에 섰다.
나도 똑같이 기다려 준 동료들과 "삼악산 용화봉 해발 654m"라 씌여 있는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 몇 컷, 안내 말뚝 따라 등선폭포 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가파른 내림의 시작, 바로 지루한 333개의 돌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조성한 계단, 그 옆으로 누구일까? 그 옛날 화산이 만들어 낸 돌무지에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돌탑, 무의식적 합장 예의를 보낸다. 20여분, 단풍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큰, 작은 초원"이라는 팻말이 붙은 분지에서 가부좌 휴식을 취한다. 호기있게 시작한 산행이 고난의 시대를 지나 습(習)이 되니 다리는 조금 아팠지만 상쾌함이 위에 선다. 갈바람에 땀이 잦아들고 다시 걸음, 흥국사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사찰이 다 그런 모양새이지만 국보 등, 보물 하나없이 내세울 것 하나없는 사찰은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 흥해야할 흥국사에서 아픈 석탑과 마주한다. 탑은 사찰에서 무슨 의미일까? 석가모니 다비(茶毘)에서 사리봉안 돌탑으로 조성되어 오늘날에 이르러 불교의 상징물이 된 탑이 대웅전 옆에서 간신히 버티고 서서 안스럽게 오늘 낼 한다. 어떻게 좀 해봐. 마음은 그렇다. 넘어지려는 쪽에 버팀 목이라도 되고 싶은. 그 옛날 맥국이라는 부족국가 시절부터 명맥이 이어져 왔다는 흥국사, 오래된 고찰에서 잠시 머리 조아려 수행(修行)에 든다. 텃밭에 스님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한 고추, 방울토마토가 갈무리를 기다리고 겨울을 위한 김장배추가 싱그럽다.
다시 하산, 고도가 낮아질 수록 단풍에 색깔이 붉고 곱다. 나무들이 준비한 계절 마지막 정점에서 기여, 붉게 붉게 활활 타오르다, "지심 귀명례(至心歸命禮)" 결국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점정(點睛), 그리고 다비(茶毘), 그 찰나의 한 철을 위하여 소쩍새 우는 봄부터 태양이 작열 하는 여름날을 용케도 살아 내게 오기까지 나무들의 노고가 참으로 가상하다.
아, 저기, 물소리가 들린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귀를 열고 가슴을 열어 소리를 듣는다. 쏴아아! 폭포다. 여섯개의 폭포 군(群), 기묘한 암벽사이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 강으로 가다가 바다로 가다가 어쩔 수 없이 절벽을 만나 뛰어 내려야 하는 절박(切迫), 흰 포말(泡沫)들, 부서지며 둥글게 둥글게 번지는 수면위로 천연의 혼합 육중주(六重奏) 세레나데가 울린다. 득음(得音)을 위하여 독공수련(獨功修鍊)했던 명창들이 거쳐 간 자리에서 스틱을 북채 삼아 창(唱), 한 소절 목소리 뽑아 본다. 퉁소에 나팔 속 같은 동공으로 소리 절절하게 흐르다 낙하한 소(沼)에 표면으로 낙엽이 진다. 번뇌 놓은 잎들이 위에 또 위에 쌓여 본향(本鄕)으로에 "귀의(歸依)" 안식(安息)에 든다.
준비한 것 다 비워 낸 나무들, 편하게 면벽(面壁)을 하고 동안거(冬安居) 한 철, 참선(參禪)에 들겠지. 나무들에 앙상한 가지 새로 찬바람이 지난다. 멀리 흥국사 풍경(風磬)이 울고 갈걷이 못한 노승의 애꿎은 죽비, 법당 허공을 난다.
※등선폭포 : 지금부터 약 5억7천만년전에서 25억년전까지 퇴적된 모래 암석들이 높은 압력과 온도를 받아 굳어진 것으로 이 규암층에 지각운동이 일어나 규암의 절리(암석에 나란한 결)들이갈라져 만들어진 것이 등선폭포 협곡이다. 규암은 특성상 잘 풍화 되지 않는 관계로 절리에 따라 덩어리채 떨어져 나가 가파르고 날선 협곡과 낭떨어지 폭포가 만들어 졌다.<안내판 인용>
<終>
강촌 삼악산(三岳山)은 꼭 가을에 다녀 오라 권하겠다. 육폭과 어우러진 단풍이 소금강 못지 않으니 굳이 단풍놀이 멀리 길을 잡아 고생을 하랴. 하루면 족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 씽씽 잘도 달리는 itx청춘 열차를 타고 강촌역에 내려 세네 시간 여 흠뻑 땀을 흘리고 그리고 맛보는 닭갈비와 막국수,이 또한, 저물어 가는 가을날에 그럴싸한 사색(思索)이 아니겠는가.
<서울시정일보 박용신 논설위원장 baga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