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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들국화, 꽃 마중 가자.

이 가을! 들국화, 꽃 마중 가자.

  • 기자명 박용신 논설위원장
  • 입력 2017.10.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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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한 가을의 힐링.

[서울시정일보=박용신 논설위원장]

새득한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서둘러야 겠다. 그 산, 들녘, 언저리 여름이 머물던 자리마다 마냥 늦장을 부리던 '들국화'들이 서둘러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 꽃 마중을 떠나 보자.

▲휴식의 겨울 앞에서 홀연히 피어나 살아 있는 것들의 쉼표를 준비케 하는 가을 꽃, 쑥부쟁이, 구절초.
▲휴식의 겨울 앞에서 홀연히 피어나 살아 있는 것들의 쉼표를 준비케 하는 가을 꽃, 쑥부쟁이, 구절초.

골골 산 길가 초입, 틈새 양지녘으론 노오란 산국(山菊)들이 올망졸망 꽃망울 터트리며 사방 팔방으로 고혹한 향기를 날리고, 서늘함이 깊어 지는 저녁으로 초승달이 뜨면, 조붓한 산 그늘 둠벙 가, 관목의 소꿉 터 여백마다 저네 끼리 어깨동무하고 보라색 꽃을 피워 청초하게 자태를 뽐내는 쑥부쟁이, 가을의 초입, 찬 이슬 지나 무서리 질 때까지, 화려한 꽃들이 떠난 자리로 이제 우리 밖에 안 남았다고 서둘러 야트막한 산자락 꼭대기까지 고고하게 바투 고개를 들고 피어 점잖음 빼는 구절초까지 이 땅에 들국화라 불리는 꽃들이 제대로 피어 계절, 마지막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려 한다. 서둘러 저들이 기다리는 산으로 들로 떠나야 겠다.

▲ 촌티가 나지만,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무장된 산국, 우리네 민초들의 꽃.
▲ 촌티가 나지만,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무장된 산국, 우리네 민초들의 꽃.

<촌티 나는 산국(山菊)>
산 두리, 조촐, 자잘하게 저희들끼리 가지를 올망졸망 어깨동무로 의지해 노랑빛깔로 촌티 나게 촘촘히, 얼굴 비비며 듬성듬성, 툭툭, 멀리서 보면 노랑덩어리 같기도 하게 피어 스산한 가을날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바튼 고개를 흔들며 어서 오라 유혹하는 꽃말이 '순수한 사랑,인 산국(山菊).

 

▲ 짙은 향기가 사방 팔방, 금방 취하겠다. 그대! 또 산으로 들로 저 꽃잎 따러 떠나겠지.
▲ 짙은 향기가 사방 팔방, 금방 취하겠다. 그대! 또 산으로 들로 저 꽃잎 따러 떠나겠지.

언제부터인가, 새득한 갈바람 불면, 아내가 머리에 손수건 질끈 동이고 산자락 헤매 따다가 말려서 베개속을 채우기도 하고, 눈 내리는 겨울날 화로불가에서 하얀 찻잔에 마른 산국 몇 송이 동동 띄워 노란 물 우러나면 후후 불며 마시던, 이 꽃은, 양지 바른 곳을 택하긴 했지만, 대개가 토양이 질박해 모두가 버려 둔, 모퉁이 고샅길 가, 맨땅을 비집고 살아,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고 땀 뻘뻘 흘리며 끈질기게 여름을 나다 겨우, 찬 서리 사이에서 피어나 꽃들의 계절을 마감하는 저 위대한 생명력. 꼭, 끈질기게 살아 남아야만 하는 우리네 민초를 닮은 꽃.

▲ 산, 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쑥부쟁이, 굳이 편을 가르자면 가새쑥부쟁이
▲ 산, 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쑥부쟁이, 굳이 편을 가르자면 가새쑥부쟁이

 

▲ 가꾸지 않아도 예쁨이 제법이어서 시선을 끄는 내 누이 같은 까실 쑥부쟁이
▲ 가꾸지 않아도 예쁨이 제법이어서 시선을 끄는 내 누이 같은 까실 쑥부쟁이

<순박하고 청초한 쑥부쟁이>
들국화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 꽃은 들판, 논 뚝, 산자락, 어디에서건 순박하고 청초하게 보라색으로 피어, 은근 슬쩍 너무 흔하고 친숙해서 곁에 있어도 잊고 사는,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마는, 봉당 댓돌 귀뚜라미 소리와 더불어 이 땅에 소슬한 가을이 벌써 와 있음을 얘기해 주는 이 꽃, 비슷비슷한 근친이 많아서 쑥부쟁이라는 이름 앞에 00이 붙는, 가새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심지어 귀화식물 미국쑥부쟁이까지 있다. 지근에 살면서 몇 마디 잔소리 하곤 그게  맘에 걸려 군것질 챙겨 주고, 툭 던지는 심한 말에도 상처받지 않는, 천박해 보이나 천박하지 않은, 가을 깊은 개울가 빨랫터에서 시린 손 얼얼 대도 사는 게 즐거운가, 콧노래 나는, 추수 끝난 들판에 허수아비랑 늦게까지 피어 길게 가을을 이어 앓이를 하는, 꽃말이 그리움, 기다림인 그대! 친하고 싶은 쑥부쟁이. 꼭, 내 누이를 닮아서 더욱 아름다워라.

▲ 고고하게 야생에서 더 멋진 구절초
▲ 고고하게 야생에서 더 멋진 구절초

 

▲ 단아한 자태에서 제법 부티가 난다. 대갓집 규수처럼.
▲ 단아한 자태에서 제법 부티가 난다. 대갓집 규수처럼.

<부티가 흐르는 구절초>
하양 비단결, 옅은 보라색으로 조붓 말쑥하고 도톰한 꽃잎에서 부티가 넘친다. 산문에 초입부터 어찌 올랐을까? 나무들 잎새 떨구고 서늘한 바람이는 꼭대기까지 고개를 바투 쳐들고 산들바람에 치마자락 추스르는 대갓집 규수처럼, 조숙하게 고고하게 고개 갸웃, 까닥, 결국 허락할 꺼 면서도 부탁을 하면 몇 번 거절하다 자리를 내어 주는, 이 꽃도 이름이 여럿, 산에 산다고 해서 산구절초, 백두산 쯤, 고산지대 바위틈에 붙어 산다고 해서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도 있다. 꼭 각기 이름을 구별해서 불러줄 필요는 없겠지, 같은 동족이니까 그냥 구절초로 알아두고 예뻐 해 주면 그만,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세종시 영평사에 가면 둘레 장군산 전체에 구절초를 심어 고상한 꽃길도 만날 수 있다.
▲세종시 영평사에 가면 둘레 장군산 전체에 구절초를 심어 고상한 꽃길도 만날 수 있다.

이 시월에 세종시 영평사에 가면 구절초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주지 환성스님이 사찰 주변 동산까지 이 꽃들을 많이 심어 응용 먹거리와 고혹한 차(茶)향을 즐길 수 있으며, 구절초 축제, 다양한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다.

<終>
파랗고 높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흐르고, 상큼한 공기가 싱그러운 이 좋은 아침, 이 가을에 벌판, 들로 산으로 어디든 떠나 보자. 산국(山菊), 감국(甘菊), 쑥부쟁이, 구절초, 따지지 말고 저들을 통칭 우리 "들국화"라 하자. 얼마나 부르고 싶어지는 이름인가. 하지만, 안도현 시인처럼 이런 우매 때문에 친구와 애인과 이별되어 지는 일은 우리 없게 하자.

 

▲바보같이 5월부터 조경 화훼로 화단에 피는 벌개미취를 들국화라고 하다니.
▲바보같이 5월부터 조경 화훼로 화단에 피는 벌개미취를 들국화라고 하다니.

 

▲쑥부쟁이, 한 대에서 가지를 쳐 여러송이 꽃이 핀다.
▲쑥부쟁이, 한 대에서 가지를 쳐 여러송이 꽃이 핀다.

 

▲구절초 대부분 한 대에 꽃대에서 한 송이 꽃이 핀다. 식물원, 사찰 등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다.
▲구절초 대부분 한 대에 꽃대에서 한 송이 꽃이 핀다. 식물원, 사찰 등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무식한 놈>

숙부쟁이의 꽃잎은 가늘고, 구절초의 꽃잎은 뭉툭하며, 쑥부쟁이는 대부분 보라색 꽃이 피고, 구절초는 하얀색 꽃이 핀다. 쑥부쟁이는 한 꽃대에 가지를 쳐 여러 송이 꽃이 피고, 구절초는 대개 한 꽃대에 한 두 송이 꽃이 핀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꽃 이름을 부르지는 말자. 꽃도 사랑을 주어야 내게로 온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꽃 이름을 부르지는 말자. 꽃도 사랑을 주어야 내게로 온다.

물론, 누구나 그 꽃들을 소소하게 구별하여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름을 불러 준다고 다 나의 꽃이 되는 건 아니다. 하, 수상한 시절, 무언가 답답하고 속상한 일 많은 세상, 훌훌 한 번쯤 속세의 때 벗어 던지고 피정(避靜)에 들듯, 안거(安居)에 들듯, 저기 들판, 산마루 땀 흘리고 올라 가을이 다 가기 전, 꽃들과 이야기하며 향기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저 꽃들이 내게로 와 사랑하지 않겠나.

(서울시정일보 박용신 논설위원장 bag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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