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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책방] 음식잡학사전

[지식인의 책방] 음식잡학사전

  • 기자명 손수영 기자
  • 입력 2017.10.0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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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음식 속에 담긴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

'음식잡학사전'은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분명 음식에 관한 책이지만 그 흔한 레시피도, 탐스러운 음식 컬러사진도 없다. 대신에 역사, 인물, 유래, 재미있는 자투리 상식까지 음식의 모든 것을 다채롭게 풀어내고 있다. 수많은 상식과 지식 중에서 특히 음식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그야말로 '음식잡학사전'이다.

이 책은 총 70여 개의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그 음식들과 관련된 문화사를 함께 전해준다. 각각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사람들이 즐겨 먹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등을 추적하면서 음식에 얽힌 유래와 에피소드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테마별로 음식에 얽힌 유래를 소개하고 있어, 음식 한 그릇에 담긴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1장은 각 음식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로 활용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아본다. 2장은 음식의 원조와 어원을 짚어보고, 3장은 천하제일의 미인이라 불렸던 양귀비부터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까지 그들이 먹었던 음식들을 추적한다. 4장은 전쟁과 도박으로 개발된 음식들을 살펴보고, 5장은 특권층만 먹던 음식들을 소개한다. 6장은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의 유래와 의미를 돌아본다.

저자 윤덕노 | 북로드
저자 윤덕노 | 북로드

"토마토가 ‘독이 든 열매’에서 ‘최음제’가 된 이유는 통역상의 오류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여행중이던 한 프랑스인이 처음으로 토마토를 먹게 됐는데 아주 맛있었다. 그래서 요리를 만들었던 이탈리아 주방장에게 어떤 음식이냐고 물었고, 이 주방장이 불어로 ‘무어인의 사과Pomme de Moors(Apple of the Moors)’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프랑스인이 이를 ‘사랑의 사과Pomme d’Amore(Apple of Love)로 잘못 알아들었고, 최음제로 여겨 그 다음부터 기피 식품이 됐다는 것이다.(p.26)"

"베트남 사람들은 원래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벼농사를 짓는 베트남에서 소는 농민들한테 생산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육류로 만든 음식은 주로 돼지고기나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을 뿐이었다. 185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베트남을 침공한 이후 1884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자 식민지 지배자였던 프랑스 사람들은 하인인 베트남 주방장에게 쇠고기를 얹어 쌀국수를 만들도록 요구했다. 즉 현재 먹는 베트남 쌀국수는 전통적인 현지 음식이라기보다 프랑스풍의 음식으로 변질되면서 발전한 것이다.(p.53)"

"카사노바는 굴이야말로 정력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었던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의 매일 50개씩의 생굴을 먹었다고 한다. 굴을 먹는 방식도 독특해 일종의 의식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인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두었다. 그러면 벌거벗은 여자가 몸을 담그고, 다음에 카사노바가 욕조로 들어갔다. 이때 하인이 접시에 50개의 생굴을 담아오면 옷을 벗은 애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굴을 먹고 그 다음에 따뜻한 욕조에서 ‘해장 섹스’를 즐겼다.(p.144)"

"사실 ‘빵의 역사’는 오랜 기간 동안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빵의 색깔과 종류를 놓고 신분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구분됐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농부는 딱딱한 검은 빵만 먹을 수 있었고, 흰색의 부드러운 빵은 귀족과 시민 계층의 몫이었다. 시저Caesar 시절에는 죄수들에게 검은 빵이 제공됐다. 검은 빵은 톱밥이나 진흙, 도토리, 나무껍질 등을 몰래 집어넣어 만들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았고, 심지어 독을 집어넣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다.(p.191)"

"캐비아가 유럽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보편화된 것은 13세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로마시대에도 캐비아를 먹었고, 귀한 음식이었던 만큼 특등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캐비아가 식탁에 오를 때는 그 의식이 요란스러웠다고 한다. 그냥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꽃으로 장식한 접시에 모셨으며, 식탁에 오르는 순간에는 악대가 팡파르를 울려 영광을 기렸다고 한다.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조의 루이 13세는 유독 캐비아를 즐겼다. 최상급 캐비아를 먹기 위해 주산지인 카스피해 연안으로 직접 시종을 보내 캐비아를 날라오도록 했다. 만약 중간에 캐비아를 빼돌린 사람이 있으면 목을 쳐 죽이는 참수형을 내렸다고 한다.(p.240)"

서울시정일보 손수영 기자 hmk06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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