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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길을 묻다

나무에게 길을 묻다

  • 기자명 박용신
  • 입력 2017.08.14 13:15
  • 수정 2017.09.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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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에서의 하루

 

[서울시정일보 영동 박용신 기자]

숨차게 달려온 신록이 천년을 산 나무의 품안에 푸름으로 멈추어 섰다. 고추냉이같은 알싸한 풋내가 짙게 풍겨 오는 그의 곁, 남의 말에 매달려 살면서 침묵이 필요한 시간, 달려온 산사(山寺)에는 가을로 가는 팔월의 막바지 햇살이 따갑고, 바람도 멈추어 선 고요한 경내 정중(鄭重)안으로 힘겨운 노승의 목탁소리만 깊게 침잠 한다. 깨달음이 먼 중생이 넉넉하게 내어 준 나무의 곁에 서서 그 동안 참아 왔던 "내 귀는 당나귀 귀", "내 귀는 당나귀 귀"를 힘차게 외치고 있다.

 

#영국사 대웅전과 삼층석탑(보물533호), 깨끗하게 잘 정돈된 경내는 주석 스님들의 올곧은 성품을 본듯하다.

 

#영국사 뒷뜰을 돌아 백여미터 오르면 부도탑들과 원각국사비가 나타난다.

영동 영국사에 왔다. 절 집은 그리 크지 않다. 법주사의 말사인 영국사는 신라 법흥왕(527년) 또는 문무왕(668년) 때 원각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문종 때는 국청사(國淸寺)로 칭하여오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곳에 와서 기도를 하여 난이 진압되었다 하여 후에 영국사(寧國寺)로 불리어 지금에 이르렀다. 암자의 규모를 조금 벗어난 이 사찰은 여느 절이나 마찬가지로 머리를 조아리고 통과해야 하는 누각, 만세루(萬歲樓)가 자리하고 만세루를 지나면 아담한 대웅전과 왼편으로 극락보전이 서있다. 그 중간을 조금 올라 산신각이 초라하게 서 있고 내세울 만한 유물로는 보물 제533호인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보물 제534호 원각국사비와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천살쯤 된 은행나무가 있다.

# 천연기념물 223호인 영국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31m, 몸통둘레가 11m이며 동서 방향으로가지가 25m나 뻗어 있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에 큰 어려운 일이 닥치면 크게 운다고 한다.

내가 이 절을 찾아온 것은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버금가는 수령과 크기를 자랑하는 이 나무는 절로 들어서기 전 주차장으로 쓰는 공터 밑, 계곡 옆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다. 길게 뻗은 가지들이 늘어져 버팀목을 대어 주었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과 근세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한, 한 나무의 일생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압도 당하는 위용, 나무는 말이 없다. 나이의 켜를 키우며 세월을 인고한 기다림의 시간들이 거룩하게 표피로 두껍게 남아 있다. 나무에게서 묵언(默言)으로 설법하는 부처의 말씀을 기억한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결국 내가 온 곳이 없으니 갈 곳도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무 곁에서 사색(思索)의 시간이 깊다. 공양간으로가 황송한 절밥으로 점심을 때운다. 바람 한 자락 풍경(風磬)을 울려 고요한 산사의 적막을 깨고, 환청으로 들리는 "내 귀는 당나귀 귀", "내 귀는 당나귀 귀".

 

# 영국사를 들러 나오는 길, 음기가 서린 옥계폭포를 만났다. 가뭄으로 물이 조금 흐르는 것이 아쉽다.

영국사를 나와 옥계폭포(玉溪瀑布)로 향한다. 영동 월이산 자락에 위치한 이 폭포는 여자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여자를 뜻하는 옥(玉)자와 시내 계(溪)자를 써 옥계폭포라 불린다. 가뭄이 심해 떨어지는 물이 적다. 3대 악성 박연선생이 이 곳에 와 피리를 불다가 바위 틈에 피어난 난초에 매료되어 호를 난초의 난(蘭), 시내 계(溪)를 써 난계라 하였다. 이 폭포는 음기(陰氣)가 센 여자 폭포로 물이 떨어지는 웅덩이에 남성 성기를 닮은 양바위가 있었다 한다. 사람들이 경관을 해친다 하여 이를 멀리 치워 버렸는데, 이후 마을 사람들이 객사하는 등, 변고가 잇달아 다시 바위를 제자리에 갔다 놓자 거짓말같이 마을은 다시 평온해 졌다는 전설이 있다. 안내표지판에 "여러분! 불임(不姙)이신 분들은 영동 옥계폭포에 오셔서 음기(陰氣)를 듬뿍 받아 소원을 이루시기 바랍니다."라고 씌여 있다.

 

# 영동 원촌마을에서 바라본 월류봉과 월류정. 초강천(한천) 시내에서 올갱이 잡는 아낙, 빼어난 산수 앞에 갑자기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어디서 본듯한 풍경,제1봉인 옥류봉을 기점으로 제5봉까지 눈에 들어 온다.

월류봉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와 보기를 기대하는 사계절 경관이 빼어난 명소로 유명하다. 유유히 흐르는 맑은 초강천 강물 건너 절벽 위 능선, 월류봉을 기점으로 우뚝 솟은 다섯개의 봉우리,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원류봉이 바라다 보이는 원촌리는 조선조 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며 강학했던 곳으로 '우암송시열선생유허비'가 남아 있고, 월류정을 휘돌아 흐르는 초강천은 물이 너무 차고 맑다하여 한천(寒川)으로 불리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이 곳에 빼어난 경관을 "한천팔경"으로 정해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는데, 1경 월류봉, 화헌악, 용연동, 산양벽, 청학굴, 법존암, 사군봉, 8경 냉천정을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한천8경의 제1경인 월류봉이 단연 으뜸이다. 2경인 화헌악은 월류봉의 다른 표현으로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움을 얘기한다. 3경인 용연동(또는 용연대)은 월류봉 아래 정자인 월류정 앞 깊은 소(沼)를 일컫으며, 그 외에도 산양벽, 청학굴 등이 모두 월류봉과 관계가 있으며, 한반도 지형이 있는 법존암까지 '한천8경' 대부분이 월류봉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누군가 초강천에서 올갱이를 잡고 있었다. 오봉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자리를 뜬다. 시간을 내, 종일 한천팔경을 구경하는 행복한 하루를 그리며...

 

#영동역 광장에서 선녀같은 무희의 춤공연을 보았다. 도듬발 들어 하늘 높이, 손마디 끝에서 학이 날아 오른다.

오후 3시 일정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영동역으로 왔다. 마침 역광장에서는 풍물패 노름마치 예술단의 공연이 신명나게 펼쳐지고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모티브로 춤과 사물이 어울어진 무대로 초여름의 열기가 광장에 뜨겁다. 장날에 장을 보던 사람들도 구경오고 역앞을 지나던 자동차들도 갈길을 멈추고 구경을 한다. 곱게 한복을 갈아입은 무희가 버선발 돋워 날아 올라 손사위 칠 때, 조가비같은 흰 손 끝에서 학들이 날아 춤을 춘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열두 발 상모꾼과 나팔수 그리고 소리꾼,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멋진 무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코레일 '역광장 문화'에 박수를 보낸다.

 

# 역광장 문화가 바뀌고 있다. 코레일에서 주최한 문화 한마당,

 

#오후에 역광장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최선을 다하는 무희들로 인하여.

 

#사물과 상모가 어울어진 야단법석, 해가 기우는 줄도 몰랐다.

 

#30도를 오르내리는 광장에 열기 속에서 학처럼 춤을 추는 무희.

<마무리>
영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감과 포도이다. 실제로 시골마을을 걷다보면 감나무와 포도나무를 많이 만난다. 여행자들은 영동을 잘 알지 못한다. 영동에 대하여 물으면 들은 풍월로 아 거기, 하고 얼버무리기 십상이다. 위에 소개한 명소 이외에도 난계 국악체험촌, 송호국민관광단지, 물한계곡, 와인공장 등을 방문하는 것도 하루 만의 여행으론 벅차리라. 날 잡아 마음먹고 한천팔경을 섭렵할 예정이다.

 

◎어떻게 가나
-기차타고 영동역에 가면 여행지마다 연계 버스가 다닌다.

- 자동차타고 경부선 영동IC .

◎먹을 곳

우렁요리 잘하는 폭포가든(043-742-1777, 심천면), 영동읍의 뒷골집(043-744-0505)과 다슬기 해장국을 잘하는 일미식당(043-743-1811), 어죽으로 유명한 가선식당(043-743-8665, 양산면)등이 있다.

 

# 영동역 전경

서울시정일보/ 논설위원장

팸투어/여행문학가

백암 박용신의 "풀잎편지" (Photo Healing Essay)

 

기사등재. 2017.8.14

(박용신 기자 bagam@hanmail.net)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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