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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소송

단풍과 소송

  • 기자명 황권선기자
  • 입력 2011.11.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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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샛노란 은행잎이 가엾이 진다 해도….’

오래된 대중가요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계절이다. 지금 과천에는 인도마다 샛노란 은행잎들로 뒤덮여 있다. 나도 황금빛 카펫길을 거닐며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본다.

불현듯 얼마 전에 있었던 한 방송사의 뉴스가 떠올랐다. 길에 쌓인 낙엽이 해당 지자체에는 골칫거리라는 것이다. 행인이 낙엽에 미끄러져 다치게 될 경우 피해배상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특히 비탈길에 쌓인 낙엽이나 비에 젖은 낙엽은 안전을 위해 빨리 치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에 떨어진 낙엽을 바로바로 치우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왠지 삭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알다시피 소송의 천국이다. 걸핏하면 재판을 건다. 실제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죄를 짓고 도망다니던 범죄자가 도피 중에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하게 되자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경찰이 자기를 빨리 붙잡지 않는 바람에 동상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송의 지나친 남발은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와 미덕을 파괴할 수 있다.

미국은 동네 놀이터에서 시소나 정글짐이 사라진다고 한다. 아이들이 놀다가 떨어져 다치면 놀이터 소유자나 관리인이 소송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집에 초대된 손님이 유리 의자가 주저앉아 엉덩이를 조금 다치자 손해배상 재판을 제기한 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영국의 타임스는 “더 이상 남을 초대할 수 없게 됐다”고 개탄했다.

재판은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양하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그때마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 일도양단식의 재판으로 풀려다 보면 더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소송이 무서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없어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소송이 무서워 손님 초대를 꺼려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소송이 무서워 이 가을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낙엽을 밟으며 멋진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아름다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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