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칼럼] 촌부가 전하는 마음을 찾아 깨닫는 공부의 비법
[섬진강칼럼] 촌부가 전하는 마음을 찾아 깨닫는 공부의 비법
  • 박혜범 논설위원 <hmk0697@msnews.co.kr>
  • 승인 2021.02.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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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깜박 잊고 방안에 두고 나온 핸드폰을 마루에서 찾던 사람이, 그런 자신을 깨달고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찾아 손에 들고, 즐겁게 세상과 소통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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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며칠 전 “촌부가 해석하는 진리로 드는 문 수처작주(隨處作主)”의 글을 읽은 몇 사람들로부터 공감한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마음을 찾아 깨닫는 공부를 하는 방법에 대하여 특별한 비법이 있느냐는 질의가 있었는데, 이른바 법을 설한다는 사람들이 잘못된 해석으로, 멀쩡한 사람들을 경쟁으로 내몰아 사는 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수처작주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반면 잘못 왜곡된 해석이라는 반박의 전화도 있었는데, 날마다 피 터지는 삶의 현장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그 일들을 주관하는 주인이 되라는, 상투적이고 세속적인 처세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촌부가 해주고 싶은 조언은 혜능대사는 몰론 당사자인 임제선사는 대학을 졸업하거나 박사 논문을 작성한 사실이 없으며, TV방송에서 설법한 사실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흔히 유명한 승려라 하여 다 옳은 것은 아니며, 특히 유명세에 혹해서 이른바 그들의 호구가 돼버린 어리석은 자신들을 보라는 의미다.

다음의 내용은 오래전부터 촌부가 인연이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마음을 찾아 깨닫는 공부의 비법인데, 또 다른 시비가 되고 망신살이 뻗치는 일이 될까 걱정스럽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난번 글에서 말했듯이, 흔히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가 깨달았다 하는 것은, 금강경 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 나오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문구에서 가리키고 있는 그 마음이라는 심(心)의 실체를 알았다는 것이고, 임제선사가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 또한 같은 의미의 가르침이다. 

다음은 임제선사가 말한 수처작주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헤아려 볼 수 있고, 임제선사 역시 혜능대사가 깨달은 기심(其心) 즉 그 마음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는 원문이다.

『불법(佛法)은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아무 탈 없이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잠자면 그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 이와 같이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니, 경계를 맞이하여 회피하려 하지 말라.』 

위 임제선사가 던진 깨우침의 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옛 성인이 말씀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 이와 같이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니, 경계를 맞이하여 회피하려 하지 말라.”는 이 대목이다.

하찮은 강촌의 촌부가 수처작주가 무엇이라고 한들 믿을 사람들도 없겠지만, 촌부 또한 다만 눈 밝은 인연을 믿을 뿐, 나의 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나 촌부의 해석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임제선사가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라고 말했다는 옛사람(고인,古人)이 누구이며,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하였는데, 그럼 어디를 향해 공부를 하라는 것이며, 그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임제선사가 말한 옛사람은 혜능대사 이전 조사들과 달마대사일 수도 있고, 또는 금강경을 설한 석가모니부처님일 수도 있다 하겠으나, 여기서는 이른바 선객들을 위한 가르침이니, 혜능대사를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는 것은, 심외무법(心外無法)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의미한 것이니, 헛되이 마음 밖의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보라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다.

다시 말해서 임제선사가 옛사람을 인용하여,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는 것은, 이미 석가모니가 금강경에서 설했고 혜능대사가 깨달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문구에서 가리키고 있는 그 마음이라는 심(心)의 실체를 깨닫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고, 그것은 곧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의미한 것이며, 이 깨달음의 상태 즉 그대가 그 마음을 깨달았을 때 그대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참된 진리의 자리라는 가르침이다.

문제는 이른바 법을 전하는 옛사람들이 그랬듯이, 임제선사 역시 직시하고 있는 마음을 깨닫는 공부이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촌부가 주제 넘는 일이지만, 감히 옛사람들이 마음을 깨닫는 공부에 대하여 나름 안다고 하는 비법을 전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찾는 이른바 마음이라는 심(心)은 마음 안에 있고, 그것을 찾아 깨닫는 공부(工夫)는 마음 밖에서 하고 있음을 인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은 안에 있고 그것을 찾아 깨닫는 공부는 밖에서 하는 것임을 인정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마음을 찾아 깨닫는 공부를 함에 있어, 심산유곡 절간의 선방을 찾거나, 또는 어떤 특별하고 비밀한 주문(呪文)을 찾거나, 또는 유명하다는 법당을 찾아가 기도를 하는 등등 저마다 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을 찾아서 애를 쓰며 평생을 헤매기도 하는데.....

이것을 두고 자신의 안에 있는 마음을 찾는 공부를, 밖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는 순간, 지혜로운 이들은 이미 알고 한바탕 하하 웃으며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는 임제선사가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무엇을 말함이고 입처개진(立處皆眞)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바로 알 것이다.

어려울 것 없다. 마음을 찾아 깨닫는 공부를 집주인의 일로 비유를 한다면, 마음이라는 것은 방안에 있는 물건이고, 그것을 찾는 공부를 방문 밖 마루에서 하는 일이라 한다면, 그리고 그런 어리석은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 한바탕 하하 웃으며 방으로 들어갈 일이기 하는 말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깜박 잊고 방안에 두고 나온 핸드폰을 마루에서 찾던 사람이, 그런 자신을 깨달고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찾아 손에 들고, 즐겁게 세상과 소통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끝으로 일러둘 말은 게재한 사진 속 잡초 무성한 무덤을 보듯, 즉심시불(卽心是佛)도 살아서 깨닫는 일이고, 입처개진(立處皆眞)도 살아서 체감하는 일이지, 죽은 이가 무덤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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