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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하늘요새 임존성에 가다.

예산, 하늘요새 임존성에 가다.

  • 기자명 박용신
  • 입력 2017.06.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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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무념의 처, 푸른 허공이 가슴 가득...

예산 하늘요새 임존성에 가다. <서울시정일보=예산, 박용신 기자>

텅빈 무념의처, 푸른창공이 가슴가득...


산성은 천상에 요새로 하늘에 닿아 있었다. 부드럽게 구부러진 성곽길 뒤로 갈참나무, 벚나무 등, 유월 짙은 청록의 활엽수 군림이 싱그럽고, 나이든 뽕나무가 까만 오디를 달고 산새들을 유혹한다. 하늘 위로 황조롱이가 원을 그리며 비행을 하고, 나는 잘 정돈된 성곽길 위를 새소리 바람소리 동무 삼아 천천히 걷는다. 무념처(無念處), 허공(虛空)이 자리한 가슴으로 푸른 창공이 가득 찬다.


#물이 가득 차 있어야할 예당저수지는 바닦이 들어나 낚시좌대 방갈로들이 뭍에 올라와 있다. 좌대 임대로 영업을 하던 주변 상인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비는 언제 오려는지. 아랫도리가 물에 잠긴 버드나무 그림엽서 풍경을 기대했는데... 둘레길 걷기를 포기했다.


충남 예산, 봉수산(484m) 임존성에 올랐다. 예당저수지와 '슬로시티'로 선정된 광시면, 대흥면 일대, 평화로운 농경마을이 시야에 들어 온다. 산에 중턱, 어떻게 이 곳에 성을 쌓았을까? 축조 년대는 알 수 없었으나, 물론, 백제 융성기에 이 성은 축조 되었을 것이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필부(匹婦)의 많은 백성들이 부역에 동원되어 고역을 치루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힘없고 이름없는 민초들의 수고가 고맙고도 가슴 한 켠이 저미어 온다. 일대 산성 주변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성을 쌓을 만한 돌들은 없다. 어디서 저 많은 돌들을 어떻게 날라 올렸을까?



#봉수산 정상 위에 조성된 임존성도. 천상의 요새였다. 세월속에서 훼손된 성곽을 7~80% 복원하였다.

#슬픈 전설이 있는 <묘순이 바위>. 힘이 장사였던 두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장사 둘이는 같이 살수 없던 시절, 남매는 기구하게 살아 남기 위해 시합을 하게 되는데, 묘순이는 성을 쌓고, 남동생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는 '누가 먼저' 내기. 성이 완성되려는 찰나, 이를 본 어머니가 아들이 죽는 것이 두려워 묘순이가 좋아하는 '종콩밥'을 주어 시간을 지체 시키는데, 그 사이 남동생은 한양에서 돌아오고 이를 본 묘순이는 급히 마지막돌을 옮기다 돌에 깔려 죽었다는 슬픈 설화. 지금도 이 묘순이 바위를 돌로 때리면 '종콩밥이 웬수다'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성곽은 봉수산 팔부능선을 오르락내리락 약2.4km에 걸쳐 빙 둘러 축조되어 있다. 광시면 마시리 마을회관 앞에서 임존성 팻말을 따라 구불구불 1차선으로 포장된 시멘트 도로를 오르면 자동차 3,4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이 곳에 차를 세우고 잘 복원된 산성길 위에 서면 1km 남짓, 잔디를 깔아 놓아 맨발로 걷고 싶은 평탄한 트레킹 코스가 나온다. 예산군에서 '내포문화숲길'로 조성하여 잘 관리되고 있다. 모든 산성에 성곽길이 지루하고 밍밍하다는 공식을 지워도 좋을 만큼, 이 곳 성곽 길은 건강한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산소와 올망졸망 야트막하게 겹쳐진 부드러운 산들의 언저리, 파스텔화처럼 펼쳐진 농경지와 저수지의 경관이 산뜻하게 다가서 금세 머릿속이 맑아지고 두 눈이 반짝이게 된다.


#성곽길 위는 맨발로 걷고 싶게 잘 조성해 놓았다. 모나지 않은 부드러움의 구비구비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늘요새와 백제의 마지막 비하인드>

기실, 이 곳 임존성은 패망한 백제의 유민들이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게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목숨이 동백꽃잎처럼 떨어져 간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백제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사비성까지 내어 주고 항복한 뒤, 역사는 백제가 이제 끝났다고 말할 때, 흑치상지가 이끄는 충절의 일부 백성들은 '결코 끝이 아니야'를 외치며 백제의 부흥을 위해 3만여명의 유민들이 임존성으로 모여들어 3년을 항전하였다 한다. 산성 안에는 발굴 복원된 우물(3기)과 군데군데 밭을 경작했던 평평한 터들이 보인다. 쇠비름, 달개비 등, 밭 풀들이 실하게 자라고 있음은 항전군들이 농사를 지으며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지형적으로 천혜의 요새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임존성 안에는 농경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법 너른 터들이 있었다. 백제 '복국운동기념비'가 서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백제부흥'을 외치며 버티던 임존성이 무너진 것은 나당연합군 , 외부세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부 권력자들의 암투 때문이었다. 항전부흥군 내 주도 세력인 의자왕의 사촌 '풍'과 승려 '도침'이 권력 다툼 중 '풍'이 '도침'을 살해하며 분열이 일어났고, 그 와중 흑지상지가 당나라로 투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 흑지상지는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임존성에 쳐들어 왔다. 성에서 흑지상지와 싸워야 하는 유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었을까? 그를 따라 이 곳에 와 항전하던 유민들의 허탈과, 절망, 그리고 배신감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그 와중에 대장격인 '지수신'이 유민들을 독려하여 30여일 동안이나 결사 항전을 하다 마침내, '지수신' 마져 고구려로 망명하고, 그렇게 속절없이 백제의 끝, 비하인드는 막을 내렸다. 그것이 1,350여년 전에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는 언제나, 이긴 자의 것이라는 교훈을 배우고.


<대련사에서 지장보살을 부르다.>


#대련사에는 600년된 느티나무가 양옆으로 일주문과 사천왕처럼 서 있다. 천년고찰의 위용이 서려있다.


바람결에 목탁소리를 들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부르는 노승에 염불소리가 묻어왔다. 어디인가 갑자기 섬뜩한 느낌, 우연의 일치였을까? 애석하게 목숨을 다한 부흥군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안에서 진혼곡 같은 '지장보살!' 염불소리, 나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하산을 한다. '대련사 495m' 이정표 따라 당도한 곳엔 암자보다 제법 사찰의 규모를 갖춘 절이 하나 서 있었다. 두길 정도 축대를 쌓은 돌계단을 오르면 제법 너른 마당에 봉수산을 뒤로 대웅전을 세우고 양 옆으로 요사체와 보조 전각을 세웠다. 자세히 보니 대웅전 이라는 현판이 보이지 않고 특이하게 '극락전(極樂殿)이라 전각되어 있다. 혹, 백제 불행했던 '부흥군'들과 연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설마? 그렇게 믿어 보고 싶었다.


#대웅전터에 서 있는 극락전, 노승의 '지장보살 !' 염불, 정근이 이어지고 있다.

대련사는 656년 (의자왕16년) 의각, 도침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전형적 ㄷ자 가람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느티나무가 양 옆에 서서 일주문을 대신해 사천왕처럼 절 집을 지킨다. 대련사(大蓮寺)라 함은 위쪽 임존성에 연못(蓮塘)과 우물(蓮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원통보전,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1975년 건물 중수 중, 극락전 현판이 나와 극락전이 되었단다. 이 사찰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당연합군이 부흥군을 치기 위한 거점 본거지 역할을 했었으리라.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 어떤 망자의 49제가 처량하게 치루어지고 있다. 갑자기 슬퍼진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노승의 염불이 깊다. 천년고찰 대련사에는 아직도 저 강을 건너지 못한 원혼들이 우리들에게 할 얘기가 많은 것 같다.

예산에는 둘러 볼 곳이 많다.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수덕사와 뒷뜰 만공선사가 주석했던 정혜사, 김정희 선생의 추사고택, 그리고 덕산온천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이 곳들은 너무 알려져 호젓한 여행을 즐기려는 당신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서산 쪽으로 이동을 하면 주위에는 백제 불교문화가 산재해 있는 가야산이 있다. 백제의 미소가 있는 서산마애삼존불, 보원사지, 남연군묘, 개심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어떻게 가나?>
서해안 고속도로 달려 당진에서 당진-영덕 고속도로로 갈아 타고 예산·수덕사 톨게이트 나온다. 나들목 교차로에서 아산·예산 방면으로 왼쪽 길로 들어서면 면허시험장 사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우회전해 얼마 안가면 예당저수지이다.

◆<무엇을 먹을까?>
광시면에는 한우촌이 몰려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식당들은 정육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고기를 따로 사고 재료비와 자릿세를 내고 먹는다. 그러나, 예당저수지를 찾았으니 어죽 한 그릇도 낭만적인 먹거리이다. 예당가든(041-333-4473), 할머니어죽(041-331-2800)

◆<잠잘 곳>
시간이 된다면 덕산온천이 가까우니 하루 묵어 온천을 즐기고 오는 것도 좋겠다. 덕산온천관광호텔(041-338-5000), 가야관광호텔(041-337-0101), 저수지 부근에는 농촌 펜션도 더러 있다.

서울시정일보 논설위원

팸투어/여행문학작가

백암 박용신의 "풀잎편지"

(Photo Healing Essay)

취재여행 2017.6.9/ 기사등재. 201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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