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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춘설이 내린 오후 용두산 엘레지를 들으면서

[섬진강칼럼] 춘설이 내린 오후 용두산 엘레지를 들으면서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1.02.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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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부산과 사랑하는 여자는 팩트이고, 그리고 여자의 배신으로 탈영했으며, 그 후 행방을 모르다 인편으로 들은 소식은, 술에 찌들어 항구를 떠돈다는 소문이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전부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57년 전 1964년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고봉산 선생의 노래 “용두산 엘레지”를 내가 처음 들은 건, 사랑보다 깊어버린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청춘을 헤매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남자가 돼버린, 마을 형으로부터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른다. 당시 한마을에 살던 내가 대여섯 살 차이가 나는 그 형에 대하여 들은 건, 어른들이 말조심을 하며 쉬쉬하던 이야기들을 얼핏 들은 게 전부인데, 반백년의 세월에 바라져서 겨우 토막으로 남아있는 희미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라도 산골 남녀가 함께 그 먼 부산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었는지, 전라도 산골 사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서 부산으로 갔는지,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분명한 건 부산과 사랑하는 여자는 팩트이고, 그리고 여자의 배신으로 탈영했으며, 그 후 행방을 모르다 인편으로 들은 소식은, 술에 찌들어 항구를 떠돈다는 소문이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마당 그늘에 춘설이 쌓인 오후, 멀리서 정성으로 보내온 음식과 함께 반주로 들라며 보내온 곡주를 마시고, 얼근한 취기를 핑계로 창가에 앉아서, 요즈음 대유행을 하고 있는 트롯 열풍에서, 도전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명곡으로 부르고 있는 노래 “용두산 엘레지”를 듣고 있으려니,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형이 생각이 나고, 나도 모르게 노래를 음미하면서, 그때의 용두산 엘레지와 지금의 용두산 엘레지를 비교하게 된다.

TV조선 미스트롯2에 도전하고 있는 김의영이 열창한 “용두산 엘레지”는 아직 경험이 일천한 탓에, 잘 익은 곡주(穀酒) 같은 그런 맛은 덜하지만, 촌부의 귀에는 가버린 애틋한 사랑을 회상하듯 부르는 고봉산 선생과 그리고 오래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행방불명이 돼버린 그 형이 술에 취해서 부르던 노래 이후, 현존하는 가수들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다.

젊은 날 지리산 화엄사 도광선사(道光禪師)로부터 기서(奇書)와 함께 저잣거리에서 법을 전하라는 당부를 전해 받은 인연을 시작으로, 닭이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선계(仙界)를 찾아, 고서(古書)를 연구하고 전설을 찾아 헤매다, 섬진강 강변에 앉아 날마다 하루를 살고 있는 늙은이가 되어 옛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다시 또 절감하는 생각은 사람 사는 인생에 법과 법문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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