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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접산에서 개불알난을 만나다.

영월 접산에서 개불알난을 만나다.

  • 기자명 박용신
  • 입력 2017.06.0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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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사색 -꽃들에게 위로받다.

사색 -들에게 받다

멸종위기에 복주머니난, 일명 개불알난을 만났다.

#.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만난 얼레지 꽃, 잎에 얼룩이 있어 얼레지라는 유래이다. 1,200고지 산등성이를 자기들 안방인양 질펀하게 차지하고 찬바람 맞으며 도도하게 피어 있었다. 뿌리 잎, 줄기 모두 나물로 먹을 수 있어 춘궁기 산골 사람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먹거리였다.(4월20일 촬영)


찬바람 부는 동안거(冬安居) 겨울 한철, 보내고 나면 대지에는 훗훗한 바람이 불고 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여린 배냇 몸짓을 한다. 눈 덮인 대지를 비집고 연미색 저고리 수줍게 차려 입고 꽃을 피워 춘 3월, 이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복수초에서부터 5월, 계절의 여왕, 장미가 우리 곁으로 오기까지 그 지순한 꽃들을 만나러 가는 길, 잠시 삶의 일상을 내려 놓고 살같은 세월의 "쉼표"을 찍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 보자.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복수초와 처녀치마이다. 아직 산등성이에는 얼음이 녹지 않았는데 어떻게 동사하지 않고 피어 있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잎이 처녀치마를 닮아 처녀치마란다.(3월 12일 촬영)

이제 떠날 시간, 꽃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겨우내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안달하던 마음을 다독이며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숨겨 둔 그 곳, 강원도 영월 어디쯤에, 남들이 남녘으로 산수유, 벚꽃을 찾아 떠날 즈음, 나는 그 반대로 차를 달려 아직 잔설이 아버지의 새치처럼 듬성듬성 남아 있는 내가 숨겨 둔 그 산 육백마지기가 있는 청옥산(1,270m)과 접산(823m), 그리고 동강을 휘돌아 꽃과의 조우를 즐긴다.


#뗏목타고 장에 간 손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할머니의 애닮은 사연을 담고 있는 동강할미꽃, 동강을 내려다 보며 신기하게 암벽에 매달려 피어있다.(촬영:3월20일)

아직 동면에서 잠이 덜 깬 산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을 좋아 하지 않는다. 쉽게 품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해발이 높아 질 수록 싸락눈을 동반한 바람이 훼방을 놓는다. 얼굴이 좀 따갑지만, 뭉툭해진 바람 안에는 순함이 있다. 경건하게 노승이 사는 암자를 방문하듯,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조심조심 발길을 옮긴다. 깨어 났을까? 벌써 여러 해, 몰래 숨겨 두고 이맘때면 꼭 찾아와 애지 중지 하며 나만 만나던 복수초와 그 <노루귀>, 나는 식구가 많이 늘어 난 그 친구들과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감격해 하고 있었다

#소담하다는 말이 잘 어울이는 흰 "노루귀"이다.

#혼자서 보다는 여럿이가 더 어울린다. 사람도 그러하리. 3월에 1,200고지에서 찬바람 불어도 피는 자연의 조화,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3월21일 촬영)


4월 중순이 넘어가며 시리지 않은 바람이 불고 코끝으로 달콤한 봄날에 훈김이 돈다. 강가에는 버들잎들이 제법 연두 빛을 띄웠다. 가끔, 방랑의 벽으로 내자와 말다툼을 하기도 하지만, 꽃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일이 한, 두해도 아니니 이제는 그러러니로 무덤덤해졌다. 마음이 바빠진다


# 굽은 산길에 길잡이를 해주며 말없이 서 있는 낙엽송, 키큰 나무의 꽃이 별나게 이채롭다. 사소해서 무심했던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다시, 청옥산 육백마지기에 오른다. 이제 얼레지를 만날 차례이다. 천고지가 넘는 그 산에 지천으로 피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는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신비스러운 꽃, 누군가 보아주지도 않는데, 높은 산자락에 고고하게 피어 모델처럼 의젓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 호수를 유영하는 고니의 부리를 닮은 얼레지 꽃망울.

천상의 화원에서 천상에 꽃을 보고 있다. 빼어난 자태에 넋을 놓는다. (4월20일 육백마지기)

오월 중순에 들어서면 서서히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고, 산에서는 버찌가 까맣게 익고 찔레꽃이 핀다. 7,80년대 먹고 살기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절, 학교 갔다 와 책보를 봉당에 팽개치고 산에 올라 입술이 까맣도록 버찌, 찔레꽃을 따 먹고 곽란이 일어 고생했던 생각, 이즈음 삼순이네 돌담에는 담쟁이 넝쿨장미가 붉게 피어 시선을 사로잡고, 언제부터인가 도심에서는 장미축제와 꽃 박람회가 열려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렇게 복작대는 꽃 소식들이 나를 부를 때, 나는 다시 륙색을 챙겨 영월 접산으로 간다.

#처녀 원시림으로 보존된 접산, 짙푸른 청록에 압도되고 중압감으로 무서움이 감돈다. (촬영:5월31일)


원시림으로 남아 있는 접산에는 발묵의 청록 색감이 깊다. 짙푸른 아름들이 나무와 나무사이 작은 무덤을 이룬 덤불들에 하얀 꽃들이 올망졸망 달려 있다. 깊은 산에는 푸른 대비색으로 하얀 꽃들이 많이 핀단다. 벌들을 쉽게 유혹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색이 진화하였다나. 거기에서 나는 아주 격이 다른 꽃을 발견하곤 열심히 카메라 셧터를 누른다. 소담하고 복스럽게 아기 주먹만한 꽃송이가 하얗게 소복을 한 자태가 가히 구중 궁궐에 옹주 같이 콧대 높고 격이 높다. 산목련이다.


#꽃이 함박스러워 함박꽃이다. 일명 "산목련"이라고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목란"이라부르며 국화로 지정되었다. 품격이 느껴지는 이 꽃은 구중궁궐에 사는 옹주같다.


산목련과 조우하고 조심조심 발길을 옮겨, 희한한 이름을 갖고 있는 개불알난(복주머니난)을 만나러 간다. 멸종위기에 있는 이 난(蘭)을 보여줄까? 한 참을 망설이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음 마음이 강해 공개를 한다. 이즈음 햇볕이 잘 드는 산언저리 둔덕에 다섯 식구가 반기고 있었다. 3,4년전 겨우 한 송이가 피어 있었는데 기특하게도 다섯 송이가 피었다. 사실 야생화 사진하는 쟁이들이 제일 만나고 싶어 하는 꽃이 "복주머니난"과 "산작약"이다. 그 특권을 해마다 혼자 즐기고 있으니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산작약과 복주머니 난을 만나는 건 백천만겁난조우다.

#3년전 한 송이였던 것이 네송이가 되었다. 신의 은총을...


#<복주머니>가 어울릴까? <개불알>이 어울릴까? 보는 사람 각자에 몫.

꽃을 만나러 가는 산길 위에는 언제나 후덕한 인심이 있다. 서로가 가진 것 많지 안아도 김밥 하나라도 나누려는 인심과, 서로의 삶을 걱정하고 격려해주며 자리를 양보해 주는 배려가 있다. 그 것이 산에 사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참 모습이다. 나의 야생화 공부와 촬영에 길잡이가 되어준 영월 사는 백금자(54)씨 또한 나의 삶의 없어서는 안될 십년지기 소중한 인연의 사람이다. 그는 야생화 네비케이션이다. 그 넓은 강원도 영월 첩첩 산야에서 멸종위기에 개불알난이나, 산 작약 등 희귀한 야생화들이 어디에 어떻게 몇 그루가 사는지 다 꿰뚫고 도심, 사진쟁이나 나물꾼들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지킴이를 자처하고 보호한다.

(사진)백금자 씨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 길을 잃어 방황해 본 적, 있었다. 한치 앞도 나아갈 수 없는 비벽의 낭떠러지, 길이 안보여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여기저기 둘러 봐도 기댈 곳 없어 절망으로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속상한 날에 약현성당 오르며 돌 뿌리를 걷어차고 신세 타령하던 날, 시멘트 바닥을 비집고 아슬아슬 달빛 아래 피어 조신이 나를 바라보던 노랑 민들레, 너무 곱지만, 내 신세 같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시리던, 한 참을 바라보다 정신이 번쩍 들어 뚜벅뚜벅 집으로 다시 돌아 오던 날, 어쩜, 우리는 그 만큼 꽃들에게서 알게 모르게 위로 받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쓸쓸하고 외로우신가? 오늘 내가 보여 준 진귀한 꽃들에게서 마음에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나 내일로 가자. 어차피 그 산 너머에는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르고, 그 산, 언저리에는 또 다시 희망의 꽃들이 피어 날 테니까. 많이 사랑한다.


◆영월 1박 2일 야생화 여행 권역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1,270m)일명, 육백마지기. 지금은 산위에 풍력발전기 관리 도로가 생겨 오르기가 수월하다.

강원도 영월군 마차리 석탄박물관 앞에서부터 접산(823m)으로 비경에 자전거 트레킹 도로가 생겨 접산에 오르기가 수월해졌다.


◆먹을 곳, 맛집.

▷평창 재래시장 근처에 있는 백련초 바지락칼국수집(033-334-4200)과 경원이네 메밀부침집(033-333-6449) 그리고 영월 마차리에 김금녀 할머니가 운영하는 밤치식당(010-4728-2338)에서 한방 닭백숙을 추천한다. 그리고 영월역앞 성호식당(033-374-3215) 올갱이 해장국도 별미이다.

서울시정일보 논설위원

여행문학작가, 팸투어기자

백암 박용신의 "풀잎편지"

(Photo Healing Essay)

취재여행 2017.5.28~6.1

기사등재.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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