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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석의 유머칼럼]...김형곤과 임종석---2부

[서인석의 유머칼럼]...김형곤과 임종석---2부

  • 기자명 서인석
  • 입력 2017.05.27 12:43
  • 수정 2017.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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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곤은 김종필, 이인재의원의후광을 받아 자민련 소속으로 성동구에 출마했다

▲ kbs유머일번지 정치풍자코미디 `꽃피는 봄이오면` 서인석과 고 김형곤


[서인석 유머칼럼]...김형곤과 임종석 ---2부


코미디클럽에서 사용되는 레퍼토리의 대부분을 만든 나의 그 당시 내 별명은 개그맨을 웃기는 개그맨, 밤의 대학교수 ,성인개그 일인자 ,성인 스탠드 업 코미디의 대가 등의 과분한 닉네임이 붙여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분한 닉네임은 날 아꼈던 지금은 저 하늘에 별, 스타가 되신 김형곤 선배의 배려였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코미디클럽은 약~ 18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년 동안에 정말 많은 분들이 웃고 가셨다.


하필이면 18, 이놈의 18년은 지난 정권 내내 나온 단어이다.


박근혜의 “18년 정치인생”, “18년간 집권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18대 대통령이 됐었고, 18년 만에 정치인생 마감 그리고 지금 수형번호 503을 풀면 5+0+3= 18.


어찌됐던 코미디클럽은 19899월경에 세워져서 2007년 봄 약 18년 만에 문을 닫고 전설이 되고 만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주된 이유는 설립자이신 김형곤의 원대한 국회의원 출마선언으로 문을 닫게 된 거다.


당시 김형곤은 김종필, 이인재의원의후광을 받아 자민련 소속으로 성동구에 출마하려했으나 김종필은 그 지역에 임종석의 대항마로 4선의원을 내보내며 공천이 무산되자 무소속으로 단기필마 출마를 선언하며 자전거선거를 벌인다.


그리고 그 당시 전대협 회장 출신인 39살 새천년민주당 임종석을 상대로 맞아 분투했으나 그만 삼등으로 떨어졌다.


당시 김형곤 선배의 말에 의하면 득표율 1위를 차지한 임종석에게 몰표가 갔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만 표 씩이나 얻었다고 기뻐하며 자전거타고 선거 운동하는 바람에 돈은 일 억 정도 밖에 안 깨졌으나 살은 20 키로나 빠졌으니 이익 본거라며 껄껄껄 웃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그 임종석이 지금 문재인 정권의 비서실장 임종석이다.


김형곤은 그 후 국회의원도 떨어지고 이혼도 하고 사업도 전부 도산해서 그 많던 재산도 다 잃고 ,그 많던 살도 다 잃었다.

돌아가시기 3일 전에 갑자기 보자고 연락이 와 자양동 사무실로 그를 찾아가자, 돈 액수와는 상관없이 명예로운 사람만 설 수 있다는 미국카네기홀에 한국인 코미디언으로써는 최초로 서게 됐다며, 나에게 그 무대에 같이 서자고, 그리고 전 세계를 웃기러 다니자고 하시시며 좋아하셨는데 ,그만 김형곤은 코미디언답게 화장실에서 힘주다 돌아가셨다.


사인은 뇌출혈...


2006311일 오전 8시 경 당시 그의 나이 45 ,


너무도 아까운 나이였다.


천재는 요절하는 것 인가? 우리는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큰 별을 잃고 만 것이다.


고 김형곤은 나에게는 형 같기도 하고 사부 같은 선배였다. 만약 김형곤 선배가 그때 천국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정치인이 되어 대한민국을 좀 더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천국에서 김형곤의 코미디가 필요하셨나보다.


지금은 천국에서 코미디 하고 계실 이주일 선배와 김형곤 선배, 그리고 내 친구 양종철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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