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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가을은 책을 읽어서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섬진강칼럼] 가을은 책을 읽어서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10.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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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단풍
지리산 단풍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사랑을 모르는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있다는 진실한 사랑을 알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인간 심리학” 그 가운데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인 사랑의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99명의 석학들이 쓴 논문을 다 읽는다하여, 사랑을 알고 사랑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온 세계를 통틀어서, 사랑의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세상에서 가장 박식하고 훌륭한 최고의 석학 99명이 모여서, 사랑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단 1명을 상대로 사랑이 뭔지를 교육하여, 그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사랑을 온전하게 깨달아 알 수 있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 저마다 각각인 마음으로 느끼고 갖는 사랑이란, 스스로 체득하고 체감하는 것일 뿐, 잔에 술을 따라 주고받듯, 말과 글자를 통해서 전할 수도 없고 전해 받을 수도 없는 것이기에, 99명의 석학이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99권의 책을 읽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불교의 경전에 전하는 저 유명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바른 깨달음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찾아다니다, 마지막 진리를 덕으로 실천하고 있는 보현보살을 만나서, 마침내 바라던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말씀은, 진리는 스스로 체득하여 체감하고 행하는 것이지, 말과 글로 가르치고 또는 책을 읽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누구나 사색(思索)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옛 사람들은 가을밤을 등불을 가까이 하여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 하였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을을 즐기기 위해서, 서점에 나가 유명한 사람들이 쓴 유명하다는 책들을 사거나, 이름난 시인들의 시집을 사서 읽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데, 사람들 저마다 느껴보고 싶은 가을은 다르지만, 가을은 책을 읽어서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저마다 느껴보고 싶은 가을이 어떤 바람이고 어떤 빛깔의 단풍이든, 저마다 느껴보고 싶은 그 가을은, 만 명의 사람들이 쓴 만 권의 책을 읽는다고,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만 명의 시인들이 저마다 찬미하며 읊어놓은 만 편의 시(詩)를 읽는다고 알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만 명이 쓴 만 권의 책도, 만 명의 시인이 읊어놓은 만 편의 시도, 이미 오래전에 가고 없는 그들이 보고 느낀 만 가지의 가을일 뿐, 자신이 보고 느낀 가을이 아니고, 지금 자신이 느끼고 싶은 가을은 더욱 아니다.

만 명이 쓴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명의 시인이 지은 만 편의 시를 읽어도, 가을을 알 수 없다는 촌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수확한 햅쌀로 지은 밥맛을 알려면, 자신이 직접 밥을 지어 먹어보면 되는 아주 손쉬운 일인데, 이 밥맛을 알기 위하여, 만 명의 사람들에게 만 번의 밥상을 차려주면서, 그들에게 밥맛이 어떠냐고 묻고 있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기에,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창문 밖 들국화 만발한 뜰에 보름달이 찾아드니 아름다운 신선의 뜰이 되었다.

저 달이 얼마나 밝은지를 알려면, 환하게 밝히고 있는 내 방의 불을 끄면, 방안에 앉아서도 쉽게 아는 일이고, 밤바람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알려면, 창문을 열어 직접 느껴보면, 곧 바로 알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일이라, 나는 내 마음대로 보고 느끼며 즐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 보이고 전하기는 불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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