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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김정남의 후원자 장성택은 누구인가?

(기획)김정남의 후원자 장성택은 누구인가?

  • 기자명 황문권
  • 입력 2017.02.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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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택 가운데


(서울시정일보 황문권 기자)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북한에서 보낸 특수요원으로부터 암살된것으로 추정되는 김정남의 최대 후원자는 지난 2013년 12월 숙청된 김정남의 고모부 장성택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은 1946년생으로 백두혈통인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정일의 매제가 된다. 김정일 정권부터 권력의 심장에 가까이 있던 장성택은 김정일 사후 운구차를 운송하는 장의의원에 포함되며 명실상부한 권력의 2인자이자 실세로 군림했다.


그러나 2013년 측근비리 혐의로 긴급체포되어 처조카인 김정은의 손에 숙청되었으며, 기관총총살설이 떠돌정도로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후 원인을 추측해보면 비리가 만연한 북한정권에서 비리보다는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과 가까웠으며 이에 따라 김정남을 후원하는 등 후계문제에 있어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주된 원인으로 추정된 것이 사실이다.


▲ 김정남



장성택은 소련군정 시기에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으로 집안이 그리 부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 최고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에 유학하는 등 북한 내 엘리트코스를 밟은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시절 운명의 여인 김경희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큰 키에 유창한 말솜씨로 인기가 많던 장성택에게 김경희가 먼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일성의 결혼 승락 뒤에도 놀기좋아한다는 이유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산경제대학으로 김일성이 강제전학을 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강제전학을 당한 뒤에도 김경희는 원산과 평양을 왕복하는 등 장성택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으며 원산경제대학 총장이 김일성의 지시로 두사람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자 총장실에 쳐들어가 "총장 동무가 뭔데 남의 연애사에 간섭이냐고" 호통친 일화도 유명하다.


이후 장성택은 김일성의 집중적인 미움을 받았으나 김경희의 끈질긴 부탁으로 김정일의 최측근이 되어 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일설에는 김정일 또한 장성택을 미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뿐인 여동생의 남편이라기에는 장성택의 출신성분이 너무 미약한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결국 1972년 결혼한 장성택은 1978년 김경희와의 부부관계가 악화되자 첫번째 숙청을 당한다. 약2년간 사상교육을 받은 후 김정일이 자신을 다시 부르자 눈물의 충성맹세를 했다고 전해진다


첫번째 숙청 이후 장성택은 1989년 조선노동당 청년 및 3대혁명 소조부 부장을 맡는 등 출세가도를 달린다.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그는 2002년에 남북경제실무접촉회담 당시 남한을 방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북한 정치인이 된다. 일설에는 남한에 와 놀기 좋아하는 성격을 보이며 가라오케를 즐겼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후 2004년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등을 이유로 보직에서 해임되는 등 2006년까지 동정이 소개되지 않는 등 부침이 심한 모습을 겪은 장성택은 2006년 김경희와의 외동딸 장금송이 프랑스 파리에서 자살하는 등 많은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0년 서열 2위인 국방우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고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명실상부한 북한정권의 2인자이자 최실세로 부각된다.


▲ 김정은



그러나 1차숙청과정에서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의 도움으로 복권되는 등 김정남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장성택은 자신의 2인자 자리를 공고히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정은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김정남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김정은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은 정권 초기 노련한 정치력을 가진 장성택의 도움이 필요했던 김정은은 장성택이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 리영호를 숙청하고 인민군 대장칭호를 받아 군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묵과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2013년 2월 이후 북한 내부 동정 발표에서 점차 사라지는 등 김정은의 견제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3년 12월 장성택의 핵심측근 두명이 전격처형 당하며 실각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장성택 체포모습


일설에는 김경희가 김정은을 찾아가 장성택의 실각만큼은 막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김정은이 강행했다는 보도 또한 있었다. 결국 장성택은 설정촬영으로 알려진 12월 8일 조선노동당 회의에서 인민보안원 2인에게 강제체포되어 종파적 행위 및 자원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등 많은 부정부패 및 파당행위를 이유로 12월 13일 사형판결 후 그 즉시 사형이 집행되며 수십년 간에 걸친 북한 내 권력가의 인생을 마치게 된다.


장성택의 전격적 처형 이후 김정은은 대미, 대남 외교에서 일방적인 강경노선을 겪고 있으며 체제 내부강화를 위해 숨낳은 인사를 잔인하게 숙청하는 등 세계를 놀라게하는 공포정치를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결국 자신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하는데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김정은은 김정남과 그 후원자인 장성택을 모두 죽음으로써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모두 숙청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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