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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경자년 가을 삼추(三醜)에 추색(秋色)이 추하다

[섬진강칼럼] 경자년 가을 삼추(三醜)에 추색(秋色)이 추하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9.10 00:49
  • 수정 2020.09.1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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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이 필요 없는 여자, 마님놀이로 국정을 휘저으며, 감히 무엄하다는 둥 세치 혀로 국민들의 상식과 정의를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 여자의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경자년 가을 삼추(三醜)에 추색(秋色)이 추하다는 것이다. 추해도 더럽게 추하다는 것

사진 설명 : 하루해가 저물어 간 쓸쓸한 강변의 풍경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것은, 저 유명한 기산지절(箕山之節)에 나오는 은둔의 선비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의 고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허유는 성천자(聖天子)로 추앙받는 중국의 요(堯)임금이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그걸 들은 자신의 귀가 더럽혀졌다며, 영천(潁川)의 물에 귀를 씻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는데......

소를 몰아 강에 나온 소부(巢父)가 허유로부터 귀를 씻는 까닭을 듣고는, 더럽혀진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더 상류로 올라갔다는 고사전(高士傳)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며, 대대로 중국과 한국에서 은둔한 현자(賢者)의 상징으로 받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촌부가 앉아있는 여기 섬진강(옛 이름 압록강) 강변에서, 옛길을 따라 한나절을 걸어가면, 기산지절(箕山之節)과 같은 유형의 고사가 전해오는 동리산 태안사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울창하고 푸른 동리산(桐裏山)은 일찍이 옛 월(越)나라 동강(桐江)과 같은 곳이며, 서로에게 전한 은약(隱約)은 오랜 세월 나라를 밝게 비추었고, 언제나 욕심 없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신묘(神妙)한 법이다.” 하였는데......

태안사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 첫머리에 “일찍이 옛 월(越)나라 동강(桐江)과 같은 곳이다.”한 것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에 있는 강 이름으로,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광무제(光武帝)와 엄광(嚴光)의 사이에 얽힌 고사를 인용하여, 왕건과 태안사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서로에게 전한 은약(隱約)은 오랜 세월 나라를 밝게 비추었다.”한 것은, 혜철국사가 은밀하게 전한 도참(圖讖 흩어진 셋을 하나로 되돌리는 한 송이 회삼귀일의 연꽃)은 왕건이 삼한을 통일 고려를 창업하고, 오랜 세월 세상을 태평성대로 이끈 요결(要訣)이 되었고, 고려 창업의 역사가 태안사에서 일으킨 대업(大業)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고사가 나온 중국의 기산지절(箕山之節)과 여기 섬진강 강변에 자리한 동리산 태안사에 전해오는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와 엄광(嚴光 엄자릉)의 옛 역사의 핵심은 창업에 성공한 군주와 공신들의 관계 즉 오늘날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선거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측근들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 권력을 잡기까지 애써준 측근에게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대통령과 그것을 부질없다며 뿌리치고 은퇴하여 숨어버린 측근의 이야기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 연유로 후대의 사가들과 선비들은 보장된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숨어버린 이들을, 다만 천하의 민생들을 위해 때에 맞추어 몸을 일으켜 헌신할 뿐, 쓸데없이 권력을 탐하여 몸을 망치지 않은, 진실로 어진 성인(聖人)과 현자(賢者)로 받드는 것이다.

허유와 엄광 뿐이랴. 공자(孔子)도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하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부질없는 정쟁에 휘말려 생의 안락을 깨트리고 싶지 않은 현인(賢人)들이 깊고 깊은 산과 강으로 도망쳐 숨은 것인데, 만약 옛 현자들이 권력에 미쳐 환장을 한 부류들이 판을 치고 있는 21세기 지금 이 가을의 대한민국에서 산다면, 어디로 도망쳐 어떻게 숨었을지 궁금해진다.

조금 전 늦은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TV가 보기 싫은 얼굴과 듣기 싫은 소리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 저 꼴도 보기 싫은 추색(秋色)을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가. 이게 벌써 몇 날 며칠 몇 달째인가?

대한민국 헌법이 필요 없는 여자, 마님놀이로 국정을 휘저으며, 감히 무엄하다는 둥 세치 혀로 국민들의 상식과 정의를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린 여자의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경자년 가을 삼추(三醜)에 추색(秋色)이 추하다는 것이다. 추해도 더럽게 추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마라.
보면 볼수록
보는 사람의 눈만 추해진다.(더럽힌다.)

아무것도 듣지 마라.
들으면 들을수록
듣는 사람의 귀만 추해진다.(더럽힌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말을 하면 할수록
말하는 사람의 입만 추해진다.(더럽힌다.)

막상 옛 사람들이 말한, 더러운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더럽다” “추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절감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고 보니, 여기 섬진강 강변에 앉아서, 날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자판기를 두들기는 손가락까지, 이미 오래전에 더럽혀져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처음부터 촌부임을 고백하고 살아왔기 망정이지 어쩔 뻔했냐며, 내가 나에게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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