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엊그제 그러니까 23일 새벽이었다. 안타깝게도 꿈속에서만 만나는 기이한 인연이지만, 가끔 내가 심하게 아프거나, 신상에 위험이 닥치면 꼭 찾아와서 일러주거나, 이른바 액막이를 해주고 가는 우렁각시가 있는데, 그녀가 와서 위험하다며 나를 깨웠다.
꿈을 깬 뒤 혹 강물이 범람하는 홍수라도 났나싶어,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누전되어 전선이 타는 것 같은, 매캐한 냄새와 함께 어른거리는 흐릿한 연기가 주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혹 가전제품에 이상이 있어 불이 났나싶어, 그 새벽에 주방은 물론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을 일일이 확인 몇 번을 점검하여 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여 간혹 인근 주민들이, 야밤에 태우는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왔나보다 생각하고 들어와 잠을 자는데, 다시 꿈속에서 보는 그녀가 참 태평한 사람이라고 투덜거리며, 혼자 주방에서 부산을 떨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사실은 보름 전쯤 싱크대 위 찬장이 폭삭 내려앉아서, 그릇들이 박살이 났을 때, 그때도 꿈속에서 우렁각시가 들고 있던 그릇 하나만 온전했었는데, 그 악몽의 스트레스쯤으로 치부하고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간밤 그러니까 오늘 새벽, 그 우렁각시가 찾아와서 주방을 청소하는 꿈이, 하도 생생하여 일어나 주방으로 가보니, 고장 난 냉장고에서 흘러내린 물들로 바닥이 엉망이었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녹아 흘러내린 냉장고 음식물들을 치워놓고, 오랜 지인인 구례읍 삼성전자 강사장님께 긴급 도움을 청해 냉장고를 점검해보니, 엊그제 새벽 전선이 타는 것 같은 그 매캐한 냄새와 집안에 어른거렸던 흐릿한 연기의 원인이 밝혀졌는데........
게재한 사진에서 보듯, 냉장고 부품에서 문제가 발생 불이 났었지만, 천행으로 부품만 조금 타는 정도로 끝났는데,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 했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우렁각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평상시 사람이 볼 수가 없고, 이번처럼 문제가 발생해도,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상황, 즉 냉장고 위에 저런 부품이 달려있고, 거기서 누전이 발생 불이 날 줄을 누가 알 것인가?
꿈이라 한들, 생시라 한들, 꿈이 생시고 생시가 한바탕 꿈속인 인생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우매한 일이지만, 전생을 돌아와 금생에서 다시 만나는 인연이 깊었다는 생각에, 수호신처럼 때마다 찾아와 나를 도와주는, 꿈속에서 만나는 안타까운 인연인, 우렁각시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