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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밝은 달이 알아서 드나드는 지리산 천은사 행지문(行知門)

[섬진강칼럼] 밝은 달이 알아서 드나드는 지리산 천은사 행지문(行知門)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5.2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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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전남 구례군 광의면 지리산 천은사(泉隱寺) 법당인 극락보전 좌측 서편에 주지스님의 거처인 밝은 달이 깃드는 집이라는 명월요(明月寮)가 있고 드나드는 대문의 이름을 행지문(行知門)이라 하였는데, 과연 행지문(行知門)의 의미가 무엇일까?(사진 참조)

알기 쉽게 행지문(行知門)은 우리들이 흔히 아는 언행일치(言行一致) 지행합일(知行合一)과 같은 것으로, 지행문(知行門)이라 하면 충분한 것을, 굳이 뒤집어 행지문(行知門)이라 한 의미가 뭐냐는 것이다.

지난 봄날 찾아온 이를 안내하여 지리산 천은사를 방문했을 때, 행지문(行知門) 앞에서 농반진반(弄半眞半) 잡답을 하다, 만사는 물론 생사의 근원을 이미 다 꿰뚫어 알고 초탈한 도인이 머무는 집, 즉 모든 것을 다 알고 행하는 사람이 주인이니, 아무나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한마디로 너의 주제를 알고 알아서 드나들라는 사전 경고이며, 동시에 이 뜻을 아는 이만 알아서 드나들라는 뜻이라며 한바탕 웃었는데, 오늘 다시 행지문 사진을 보니, 행지문(行知門) 행지(行知)의 뜻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부연하면,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그때 알아서 드나드는 문인지, 아니면 수행하여 깨닫는 문인지, 들어가 보면 알 것이니 들어가 보라고, 그래서 만약 탐방객이 왜 함부로 들어왔느냐고, 주지스님의 거처인 명월요(明月寮)를 관리하는 시자(侍者)가 꾸짖으면, 알아서 드나드는 행지문(行知門)이라 하여, 알아서 들어왔다 하면 될 것이라며 웃은 일이 있었다.

행지문(行知門)을 본채인 건물의 이름, 밝은 달이 깃드는 명월요(明月寮)를 두고 생각해보면, 본뜻은 수행하여 깨달은 큰스님이 주석하는 곳으로 드는 문이라는 의미지만, 이걸 풍수로 감춘 것이 훤히 밝은 보름달이 스스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문, 즉 밝은 달이 스스로 알아서 드나드는 문이라는 것으로, 둘이 서로 짝을 이룬 것인데, 이 행지문(行知門)을 알음이라는 인간의 분별심(分別心)으로 보면 복잡해진다.

한마디로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수행을 통해 온전히 앎 즉 수행을 통해서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이 행지(行知)를 나누어, 행(行)과 지(知)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냐는 것, 즉 우선되어야 할 것이 뭐냐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본시 문(門)이라는 것은 상형문자인 한자 문(門)에서 보듯, 앞뒤는 물론 좌우가 같고 언제나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진실로 깨달아 아는 이는 스스로 행할 것이고, 스스로 행하는 이는 이미 깨달아 아는 것이라, 근원인 문(門)을 통해서 보듯, 행(行)과 지(知)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다만 스스로 드나들며 여닫는 지혜가 있을 뿐, 행이 먼저다 앎이 먼저라는 다툼은 불필요 한 것이고, 어리석은 분별일 뿐이다.

무릇 행동이든 지식이든, 진실로 안다는 앎 즉 진정한 깨달음은, 책과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는 것이므로, 마음 밖에서 구할 것은 없지만, 아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아는 만큼 행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인생이고, 모순이 되는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보면, 생각해 볼 것들이 많다.

진실로 안다하여, 그것으로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은 별개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알아서 행하는 것이나, 행하면서 깨닫는 것이나, 진실로 깨달았다는 뜻이니, 오늘 이후 혹 지리산 천은사를 방문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행지문(行知門) 앞에서, 자신의 행(行)과 지(知)를 천은사 맑은 숲을 지나오는 솔바람과,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비교하여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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