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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길·역사의 향기…삶은 또다시 이어진다

[여행] 산·길·역사의 향기…삶은 또다시 이어진다

  • 기자명 이정우
  • 입력 2016.07.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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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둘레길] 전남 목포 유달산둘레길


              (서울시정일보//이정우기자) 유달산에서 본 목포 시내 전경. 노적봉과 삼학도가 한눈에 보인다.

  유달산은 사람들을 품었고 사람들에 의해 유달산은 더 깊어진다. 목포의 영혼이 깃든 유달산은 산에 안겨 끈질기게 견뎌온 사람들의 삶의 근기로 빛난다. 유달산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유달산둘레길 4.7km를 걷는다. 

  길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낸 길이 아니라 예부터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난 길을 정비한 것이다. 유달산의 품을 넉넉하게 돌아보는 유달산둘레길에는 오늘도 사람이 있다. 

아! 유달산


  신선이 춤을 추는 모습을 닮았다는 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깃드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심판을 받는데 심판의 장소가 유달산 일등바위다. 심판을 받은 영혼은 유달산 이등바위에서 머물다가 심판의 결과에 따라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극락으로 가는 영혼은 삼학도에 사는 세 마리의 학을 타고 가기도 하고 고하도 용머리에 사는 용을 타고 떠나기도 한다. 용궁으로 가게 되는 영혼은 유달산 거북바위에 사는 거북이를 타고 용궁으로 가게 된다.


  전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 가운데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으뜸이다. 이순신 장군은 유달산 노적봉에 이엉을 덮어 군량미로 가장하는 꾀를 냈다. 여기에 석회가루를 바다에 뿌려 쌀뜨물이 흘러내린 것처럼 위장해서 엄청나게 많은 군사들이 이곳에 있는 것처럼 적을 속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97년 선교사 유진 벨은 목포에 양동교회를 세우고 교인들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마땅한 건물이 없어서 처음에는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건물을 짓는 동안 교인들은 유달산에서 돌을 직접 나르기도 했다. 그렇게 지어진 양동교회가 등록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됐다. 등록문화재 제62호 목포 청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또한 목포의 석산에서 캔 석재로 지었다. 유달산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그 넉넉한 품에 사람을 살게 하고 그 속살을 파내 집을 짓게 했다.


  유달산에 공원을 만들면서 초가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려 588가구나 됐다. 사람들이 다 떠난 뒤 1979년에 사람들이 살던 집에서 나온 돌로 두 개의 탑을 쌓고 ‘유달산 철거민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그 탑을 볼 수 있다.


유달산둘레길 출발지점.


유달산둘레길에 남아 있는 삶의 흔적


  유달산둘레길은 유달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이기 때문에 들고 나는 곳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들머리는 유달산공영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도로로 올라가면 산 쪽에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도로를 건너 숲으로 들어간다.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유달산둘레길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 길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 목포시사다. 이곳은 1890년 여규향, 허석제, 박만취 등이 유산정이라는 건물을 짓고 시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907년 정만조가 세웠다. 요즘도 이곳에서 한시 백일장을 열고 있다. 한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1965년에 지은 한시가 숲길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을사신춘 유감’이라는 제목에 덕을 베풀어 사방 이웃에 골고루 따스한 향기를 나누어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유달산둘레길은 억지로 꾸미고 치장하지 않았다. 수수한 길에 있는 기념탑도 사람을 압도하거나 권위로 누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1919년 4월 8일 목포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3·1독립운동탑’이 유달산 기슭에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유달산둘레길.

천자총통 발포 체험장.


  길은 달성사로 이어진다. 1915년 노대련 선사가 세운 달성사에는 신비한 우물이 있다. 바위 굴 30척을 뚫어 만든 샘에서 100일 만에 샘물이 솟았다고 한다. 부정한 사람이 우물을 사용하면 우물물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달성사 마당에 서면 목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달성사를 나와 유달산 철거민탑을 본 뒤 자생식물원에 도착한다. 식물원 건물 앞에 또 다른 유달산 철거민탑이 있다. 자생식물원 유리온실 전시실과 야외전시장에 4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세운 정자에 올라서면 목포 시내와 양을산, 입암산, 삼학도 등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자생식물원에서 이어지는 조각공원에서 다양한 조각들을 구경하고 숲 오솔길로 접어든다. 호젓한 길에서 유달산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인 돌담을 볼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길


  북항 방향의 바다가 보인다. 지금의 북항 일대를 뒷개라고 했다. 뒷개는 뒤에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넓은 갯벌로 유명해서 ‘뻘바탕’이라고도 부른다. 뒷개 부근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걷다가 샘터를 만났다.


이난영 노래비.


  봉후샘터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 주변에는 20~30년 전까지 사람들이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샘에서 빨래도 하고 물을 길어가기도 했다. 유달산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의 생명수였던 것이다. 샘터에서 옛 추억이 살아난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마을 공동우물은 빨래터이기도 했다. 집 안에 있는 빨래를 이고 와서 방망이로 두드리며 빨래를 했다. 한겨울에도 그 찬물로 빨래하던 여인들이 우리들의 엄마였다.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잔걸음으로 돌아온 우리들의 엄마는 그 물로 밥을 하고 찌개를 끓여 밥상에 올렸다. 눈 녹아 질척거리는 동네 진흙탕 골목에서 놀다 돌아온 저녁, 동상 걸린 손을 씻어주시던 우리들의 엄마, 그 손이 지금은 왜 그렇게 작아졌는지!


  추억을 남기고 걷는 길 앞에 낙조대 정자가 있어 잠시 쉰다. 육지와 고하도를 잇는 목포대교가 바다에 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먼저 와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해 질 때 와야 제대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한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이다. 정자에 낙조대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란다.


유달산에서 본 목포 야경.


  유달산 자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유달산에서 살아왔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진다. 길어진 그림자를 끌고 걷는다. 유달산둘레길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인 아리랑고개를 넘는다. 고개라고 해봐야 해발 100m 정도다. 고개를 넘으면 옛날에 수원지였던 곳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수원지로 사용하던 곳인데 1985년까지 사용했다.


  길은 출발했던 곳으로 이어진다. 유달산둘레길은 원점 회귀형 코스다. 유달산휴게소를 지나 유달산공영주차장에 도착하면 끝이다. 하지만 유달산휴게소에서 길을 틀어 유달산으로 올라간다.


유달산에 오르다


  유달산둘레길의 남은 거리는 아주 짧다. 길을 온전하게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유달산휴게소에서 유달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한 것은 순전히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때문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로 시작하는 ‘목포의 눈물’ 가사를 새긴 노래비 앞에 선다. 흘러나오는 이난영의 목소리가 사공의 뱃노래가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 것처럼 유달산 자락에 스며들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계단을 올라 도착한 곳이 달선각이다. 달선각 위에는 천자총통 발포 체험장이 있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유선각이 나온다. 그 위에 마당바위가 있고 마당바위에서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가 보인다.


유달산 일등바위. 일제강점기에 새긴 불상이 보인다.


  유달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와 마당바위, 일등바위 등에서 보는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전망 포인트를 연결하는 길목에서도 전망이 시원하게 뚫린다.


  마당바위까지 올라 목포대교와 고하도를 한눈에 넣고 전망을 즐기는 사이 해가 진다.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사위가 캄캄해진다. 휴대전화 조명을 밝히며 어느 정도 내려오니 가로등 불빛이 시작된다.


  달선각과 대학루 사이 어디쯤에서 발길을 멈춘다. 대도시의 휘황한 야경과는 다른 분위기의  야경이 눈에 밟힌다. 유달산 기슭에 있는 마을, 죽교동이다. 빼곡하게 들어선 집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고 집과 집을 잇는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낮게 비친다. 


  일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밥상 앞에 모여 저녁을 먹겠지. 고단한 하루, 가족과 함께하는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둠이 짙어지면 불빛은 더 밝아지는데 죽교동 불빛은 어둠을 몰아내지 않고 어둠과 함께 빛난다. 불빛이 또렷하게 반짝이지도 않고 더 멀리 퍼지지도 않으며 마을 언저리에서 번진다.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죽교동 불빛에 내일 다시 일터로 나갈 사람들의 삶의 근기가 서린 듯하다.


네 가지 색으로 즐기는 목포의 야경


  목포의 야경은 네 가지 빛깔이다. 첫 번째는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산비탈 마을 죽교동의 은근한 불빛이다. 두 번째는 천자총통 발포 체험장에서 바라보는 유선각의 모습이다. 세 번째는 평화광장 앞 바다에서 펼쳐지는 바다분수쇼 야경이다. 네 번째는 고하도와 목포대교가 만들어내는 밤바다 풍경이다.


유달산 천자총통 발포 체험장에서 바라보는 유선각의 모습


  유달산의 야경은 두 가지다. 유달산에서 바라보는 야경과 유달산을 바라보는 야경이다. 유달산을 바라보는 야경 중 으뜸은 천자총통 발포 체험장에서 바라보는 유선각의 모습이다. ‘유선각’은 신선들이 노니는 정자라는 뜻으로 풀어쓸 수 있는데 불빛으로 빛나는 유선각 모습이 신선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노니는 것 같다.


목포대교에 해가 걸렸다.


죽교동의 은근한 불빛


  달선각에서 대학루로 내려가는 계단길 중간에 죽교동 야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그곳에 서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은근한 불빛의 야경을 볼 수 있다. 유달산 아랫마을인 죽교동 불빛은 어둠을 찌르는 불빛이 아니라 어둠과 함께 빛나는 불빛이다.


유달산 아랫마을 죽교동 야경.


평화광장 앞 바다분수쇼


  이른바 ‘춤추는 바다분수’를 볼 수 있다. 바다에 설치된 분수와 조명이 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감성적인 발라드, 신나는 댄스음악, 차분하고 그윽한 선율의 음악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춰 분수들이 춤을 추는 듯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목포의 밤바다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는다.


평화광장 앞 바다분수쇼.


목포대교 야경


  신안비치호텔 앞에서 고하도와 목포대교가 만들어내는 야경을 즐긴다. 섬과 다리에서 빛나는 불빛이 바다에 반영되는 세세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다에 비친 불빛 위에 작은 배라도 한 척 떠 있으면 운치가 더하다.


목포대교 야경.

목포를 목포답게 하는 음식

글 · 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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