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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가요무대에서 옛 노래 “미워하지 않으리.”를 듣고

[섬진강칼럼] 가요무대에서 옛 노래 “미워하지 않으리.”를 듣고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3.2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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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월요일 밤 10시에 방영하는 KBS 가요무대 스페셜을 시청하다, 1968년에 발표하여 전후에 태어난 청춘남녀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가슴을 저미는 노래이며, 내가 여기 섬진강에서 첫사랑과 이별하고 난 뒤, 강가에서 소주깨나 마시며 웅얼거렸던 노래, 정원이 부른 “미워하지 않으리.”를 듣다 보니, 젊은 날에 이별한 첫사랑의 기억에 별별 생각이 다 난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가 강물이 쉼 없이 흘러가는 강가에 사는 탓에, 내 사고와 감정이 강물을 닮아 습관이 돼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 또한 강물만큼이나, 쉼 없이 흐르고 흘러서 가버렸다는 생각이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강물처럼 세월처럼, 그렇게 가버린 내 인생은 물론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그 시절에 지나가버린 젊은 날의 내 청춘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데, 가끔 아주 가끔 오늘 같은 날은 나도 모를 옛 생각을 따라가서 꿈을 꾼다.

옛 생각을 따라간 그 꿈속은, 내가 살아서 기억하는 내 인생의 봄날이었고, 그런 잠시 옛 생각속의 꿈을 깨면, 나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숨을 쉬며 살고 있는 나머지 생의 한 조각을 뚝 잘라서, 그리운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래보지만, 그게 가당키나 하는 일이겠는가?

마음 같다면야, 단 한 번만이라도 첫사랑 그녀를 만났던, 그리운 그 시절 그 봄날의 강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서 잊지 못하는 첫사랑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아니 만날 수 없다하여도, 그날 물안개 속으로 강가를 걸어오는 그녀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 그 가슴 설레는 마음이라도 다시 느껴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꿈같은 상상을 해보지만, 현실은 옛 생각을 따라간 초라한 늙은이가 봄밤을 잠 못 들고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만나고 싶은 첫사랑은 이미 오래전 소식이 끊겨 생사를 모르고, 늙어버린 기억 속에 그 시절의 설렘만 희미하게 남아서, 지금 가뜩이나 심란한 세월에 잠 못 들고 있는 봄밤의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산기슭 골짜기에서 헤어진 냇물들은 강에서 만나고, 하늘의 구름들도 서로 엇갈리며 스치기라도 하는데, 젊은 날에 이별한 첫사랑 그녀는 바람결에 듣는 소식조차도 없다.

만약 내가 살아생전에 어찌 어찌해서라도, 또는 잠시 잠깐이라도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날 내 손으로 나룻배를 저어 강을 건네주며 이별하던 그 강물 위에서, 나보다 더 서러운 눈물을 뿌려대는 그녀를 위해서, 명색이 사내랍시고 차마 하지 못하고 삼켜버렸던 그 한마디, “이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나는 기다릴 것”이라는 그 말을 전하고, 그날 이후 지금껏 한 번도 강물이 마른 적이 없었고, 지금도 강물은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생각하면 부질없는 옛 기억의 첫사랑 여인의 이야기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 어디서든 그녀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으며 행복하기를 바랐을 뿐, 단 한 번도 그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야기 했듯이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우연히 그녀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참 많이도 아파하면서 한동안을 애꿎은 술병만 비우며 살았었는데, 이 염병할 코로나19가 지금 미국대륙을 휩쓸고 있다는 뉴스는,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비록 생사를 모르는 첫사랑이지만, 어디선가에서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기를 바라고, 살아 있다면 코로나19 광풍도 잘 견뎌, 여생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젊은 날 그녀와 이별 후 한동안 웅얼거리며 살았던 노래 정원이 부르는 “미워하지 않으리.”를 여기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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