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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오늘 처음 내가 점프하여 하늘을 날았다

[섬진강칼럼] 오늘 처음 내가 점프하여 하늘을 날았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1.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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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살아있는 오늘을 즐기며 만끽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 설명 : 가고 없는 지난여름 어느 날 섬진강 강변에서 마음에 담아둔 아름다운 메꽃이다.
사진 설명 : 가고 없는 지난여름 어느 날 섬진강 강변에서 마음에 담아둔 아름다운 메꽃이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21년 전 그러니까, 1999년 5월 8일 아침 농장에서 일을 서두르다 일어난 불행한 전복사고로, 다발성 골반 골절과 동시에 허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져버린 죽음에서 내가 다시 되살아났을 때, 긴 시간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의 소견은, 운이 좋으면 양쪽 목발을 짚고 산다 했었는데, 이 말은 사실상 걸을 수 없는 장애로 일생을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긴 시간의 수술로 인한 마취에서 깨어난 다음날, 회진을 하는 담당 의사의 비관적인 소견을 듣고, 그때 내가 내린 결단은 그렇게 비관적이라면, 그렇다고 한다면 내 스스로 자연주의로 돌아가서 치료하자는 의미로, 약이든 주사든 일체의 진통제를 거부하는 일이었다.

다발성 골반 골절과 허리가 골절되고 창자가 터져버린 중환자가 진통제를 거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처음 보는 일이고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놀라는 담당 간호사와 의사의 상담 끝에, 진통제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일 뿐, 상처의 오염을 막고 치유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연유로, 환자가 원하면 진통제 투약을 중지할 수 있으니 원대로 하라는 승인을 받았다.

진통제가 중지된 그 순간부터 온몸으로 느껴지는 통증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그 자체였다. 솔직히 고백하면 사고 당시 느꼈던 골반의 뼈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허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지는 고통보다 더 아팠고 참아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렇게 3일째를 보내던 날 밤 비몽사몽 중에 기이한 인연이 있었고, 다음날부터 하반신의 신경이 살아오는 느낌과 함께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하루 가운데 12시간은 달구어진 쇠로 몸을 지지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왔고, 12시간은 마치 온몸이 차가운 얼음에 짓눌리며 얼어붙는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이 왔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지만 정말 아주 기이하고 희한한 고통이었다.

하루 2번을 번갈아 오는 이상한 통증이 얼마나 지독하고 고통스러웠던지, 한번은 내가 중지시켰던 진통제 주사와 약을 동시에 처방받아 먹었는데도 통증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그렇다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진통제 투약을 중지하고 견디자며 끝까지 버텨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일주일 쯤 지난 어느 날 내 병상으로 엑스레이 결과를 가지고 온 담당 주치의 설명이, 치유 속도가 대단히 놀랍다며, 주말이나 다음 주 편한 대로 퇴원을 해도 좋다고 하였는데, 내가 보아도 조각나버린 내 몸속의 뼈들이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완벽하게 조립하듯, 놀랍도록 완벽하게 복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고통스러운 건 재활치료 과정과 정상적인 생활인으로 인생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사고 후 퇴원하여 집에서 걷는 훈련을 할 때를 생각하면, 방문 문턱을 넘는 일이 산 능선을 넘는 것 같았고, 그 흔한 라면 하나 끓이기 위해서, 싱크대 앞에 서는 일이 혹독한 벌을 서는 일이었고, 마루를 오르고 내리는 일들은, 험한 절벽을 오르고 내리는 일처럼,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하였었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특히 강으로 나온 지난 5년 동안 온전하지 못한 몸을 온전한 몸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가능한 날마다 걷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그렇게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내가 하지 못하는 몇 가지 동작 가운데 하나가, 동시에 두 발을 땅에서 띄우는 제자리 뛰기, 즉 높이가 얼마든 점프했다가 제자리에 착지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왜 제자리 뛰기를 시도하지 않았겠는가. 한마디로 별짓을 다했지만, 몸의 신경 자체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머리는 점프를 하라고 지시를 하여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는데, 오늘 오전 10시 50분 집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미쳤다고 하든 말든, 늘 하는 그대로 운동 겸 이런저런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다, 드디어 점프에 성공하였다.

그래봤자 한 자 30cm도 못되는 높이지만, 한번 뛰기 시작하니 공이 튀어오르듯 제자리 점프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뛸수록 높이도 조금씩 높아졌으며, 더하여 비록 넓지 않은 조금치의 폭이지만, 좌우 앞뒤로 점프하는 동작까지 가능하였다.

제자리 뛰기 점프를 21년 만에 성공시키고 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상적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점프 동작 하나가,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음을 새삼 다시 느꼈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히 할 수 없는 동작이라는 콧등이 시큰한 생각 끝에, 다시 점프를 하는 나에게 내가 감사를 하면서, 모처럼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목에 기분 좋은 힘이 들어갔다.

오래 전부터 복용하던 당뇨 약을 구례읍 이정회내과 원장님께서 중지해도 좋다하여 끊은 지도 벌써 2년이 되었고, 지난해 시행한 검진결과 염증 수치까지 모든 것들이 정상이었는데, 사고 후 어려울 수도 있었던 건강이 이만큼 좋아지는 이유가, 날마다 안팎으로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소화 소멸시켜버리면서, 하루 세 끼 밥으로 먹는 곡류를 정제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 먹는 탓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몸의 방어 기능을 완벽하게 작동시키는 통증을, 내 몸에서 일어나는 그대로를 온전하게 느끼며 활용한다는 자연주의 사상이다.

부연하면, 최근에 큰 수술을 했거나, 또는 큰 병을 앓고 있는 주변 몇 분들에게, 담당 의사와의 상담을 전제로, 가능하다면 진통제를 먹지 말고, 고통스럽겠지만 통증 자체를 몸의 면역력을 높이고 치료하는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차원으로, 즉 보약으로 즐기라고 한 이유가 이것이다.

조금만 아파도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살면서, 몸의 면역력을 높이겠다며 온갖 보약을 먹는 것보다,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은, 문제가 있으니 치료하여 달라는 방어 기능이 작동되는 것임으로, 돈 들여 진통제와 온갖 보약들을 먹으며 병을 악화시키는 것보다, 자연주의로 돌아가서 통증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빠른 치유 기술이며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끝으로 오늘 내가 그동안의 일들은 대략해서 쓴 것은, 지금 이 순간 아픈 이들이 참고하여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니, 이 글을 읽은 이들은 다만 참고하여 볼 뿐, 특별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특정할 수는 없지만, 주변의 아픈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다 보니, 주절주절 두서없는 사적인 사설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여하튼 2020년 1월 20일 오늘은 내가 21년 만에 점프하여 하늘을 날았으니 참 좋은 날이듯, 부디 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살아있는 오늘을 즐기며 만끽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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