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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칼럼] 신의 뜻은 분명하다

[섬진강칼럼] 신의 뜻은 분명하다

  • 기자명 박혜범 논설위원
  • 입력 2020.01.1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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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초저녁 찻집에서 오산의 약사여래에게 마음으로 드린 향기로운 차다.
사진설명 : 초저녁 찻집에서 오산의 약사여래에게 마음으로 드린 향기로운 차다.

[서울시정일보 박혜범 논설위원] 간밤 성군(聖君)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는 봉산(鳳山)이, 천년을 기다리고 있는 임이 봉황을 타고 오는 꿈 이야기를 해주었고, 강 건너 오산(鰲山)의 약사여래(藥師如來)가 하는, 다시 또 천년을 돌아와 만나는 임의 이야기를 밤을 새며 듣고 보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예측된 일이었지만 어젯밤부터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일들이, 어쩌면 천 년 전 이 강에서 약사여래가 예언한 세상을 구하고 창생을 구하는 일의 시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약 그렇다 한다면 이대로 모르는 척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오전 10시 50분 강을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구례읍에 나가서, 그동안 봉산과 만나는 꿈을 꾸었던, 오거리 청자다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 후 이따금 혼자서 오산을 바라보며, 천년을 돌아와 만나는 약사여래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공간인 찻집을 찾아가서, 오산을 향하여 내 마음의 정성으로 바치는 황금빛 차 한 잔을 드릴 겸 갔었는데, 비어 있기를 바라며 갔던 자리에는 먼저 앉아버린 여인이 있었고, 아쉽지만 오늘은 인연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런데 웬걸 섣달 짧은 하루해가 저물어갈 무렵, 초저녁에 구례읍에서 보자는 강 건너 봉산 아래 사는 생과부의 반가운 전화를 받고, 옳다구나 하고 서둘러 나가다 지나가는 택시를 탔는데, 하필 생전처음 타보는 강 건너 오산택시였고, 오산 택시를 타고 보니 엇갈리며 하차해야 하는 곳이, 하필이면 낮에 헛걸음을 했던 찻집 앞이었다.

오산 택시와 찻집 그리고 생과부를 기다리는 1시간쯤 남은 시간 등, 아무리 생각해도 절묘한 타이밍과 맞물리는 일들이, 기어이 오늘 중으로 오산의 약사여래에게 감사의 차 한 잔을 드리라는 뜻인가 보다하고, 찻집에 들어가 비어있는 창가에 앉아서, 오산의 약사여래를 향하여, 감사의 차 한 잔을 드리면서 드는 생각은, 신의 뜻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찻집을 나와 약속 장소에서 생과부를 만나, 나도 모르는 나의 날을 위해서 정성껏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시라며 웃음 가득 전해준, 박스 하나를 들고 집에 와서 풀어보니, 상상하지 못했던 향기로운 술과 이것저것 진미가 가득하였다.

시장 끼도 있었지만, 우선은 향기로운 술 한 잔을 음미할 요량으로, 저녁을 때울 겸 간단한 몇 가지를 챙겨 먹다보니, 어제 초저녁부터 오늘 초저녁까지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모두 신의 뜻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는, 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야밤에 홀아비 혼자서 먹게 하는 그 생과부의 마음이었다.

섬진강은 안개를 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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